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
상태바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
  • 진용주
  • 승인 2023.03.28 1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용주의 사진..그리고 적막함

오늘 책이 나왔다. 두 달 여 편집에 매달렸던 책이다.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제목을 뭍의 말로 옮기면, 산딸나무에 진실꽃 피었습니다, 가 된다.

산딸나무는 한반도 중부 이남에 많이 자라고 특히 제주에 많다. 제주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산딸나무 열매를 많이 먹으며 자란다. 4·3 당시 산으로 피신 간 사람들도 허기를 덜기 위해 산딸나무 열매를 먹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려 죽은 십자가도 산딸나무로 만들었다. 꽃받침이 지고 남은 열매는 꼭 심장 같기도 하다. 이수진, 박진우, 이하진 세 작가는 4·3의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데 산딸나무 곧 ‘틀낭’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의 꽃이 핀다면 그건 산딸나무의 꽃처럼 보일 것이다.

추천사에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은 아래와 같은 말을 적어놓았다. 이제껏 받았던 추천의 말 중에 가장 쓸쓸하고 가장 고즈넉한 말이었다. 선생의 말은 왜 쓸쓸하고 고즈넉한가.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비극이 75년을 맞는 가운데, 이제 슬픔이 서서히 희미해진다. 그러면서 관조와 체념의 경계도 흐릿해진다. 그러니 그 슬픔을 누군가는 대신 기억해얄 텐데. 대신 기억하는 사람들, 그게 예술가고 작가들인 게 아닐까. 세 작가가 만든 그림과 글을 매만지며 슬픔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4·3 당시, 군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에 의해 중산간 지역을 비롯해 137개의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었다. 그 중 일부는 지금도 재건되지 않은 채 폐허로 남아 있는데, 우리는 그 곳을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부른다. 거기에 가면 올레 길과 돌담, 집터, 몰방애터 등 당시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유적들은 불타고 학살당해 사라져버린 인간들과 마을들의 존재를 증언한다.

이수진의 보리아트 작품은 그렇게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마을의 존재를 증언하기 위한 것이다. 작품의 소재가 ‘잃어버린 마을’의 집터에서 자란 보리줄기(보릿대 혹은 보리짚)들이라는 것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라진 인간들의 혼이 그 보리줄기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작가는 그 작품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보리는 사라진 그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던 식량이었다. 그 사람들은 4·3 이전에는 강제 보리공출에 시달렸고, 4·3 당시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를 뒤로 하고 산에 올라가야 했다. 이삭을 털어낸 보리줄기는 땔감으로 요긴하게 쓰였고, 그걸로 패랭이를 엮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치를 키우는 케이지를 엮고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그러나 그때 그 인간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케이지를 엮고 보리피리를 만들던 아이들도 사라지고 없다. 그러므로 이수진의 4·3 보리아트는 지금은 사라진 그 사람들, 그 아이들을 오늘에 불러내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용주 
<우리교육> 기자, 디자인하우스 단행본 편집장 등 오랫동안 기획, 편집, 교정교열, 디자인, 고스트라이팅 등 여러 방법으로 잡지와 단행본을 만들며 살았다. 책을 만드는 것만큼 글을 쓰는 일도 오래 붙잡고 지냈다. 장만옥에 대한 글을 쓰며 남에게 보이는 글의 고난을 처음 실감했다. 덴마크 루이지애나미술관에 대한 글을 쓰며 미술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지 않을 때 여행을 했다.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