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키우는 숲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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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키우는 숲이 될까 두렵다
  • 박병상
  • 승인 2023.03.1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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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칼럼

남도에 가뭄이 심하다는 보도가 나온다. 50년 만의 최악이라는데, 500년 만에 헝거스톤을 만났던 유럽이 혹독한 가뭄에 시달린다고 한다. 겨울철 내린 눈이 녹아 강물이 불어나는 유럽의 가뭄은 겨울부터 다시 이어지는데, 우리는 괜찮을까? 겨울 모르던 캘리포니아 남부에 폭설이 덮쳐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우리 일기예보는 건조주의보를 연일 발령하지만, 시민 대부분은 무심하기만 하다. 작년과 재작년과 같은 산불이 번지지 않는 까닭일까?

기상청은 이맘때 강원도와 동해안 숲의 산불과 강풍을 예고한다. 기후변화 이후 심해졌는데, 해마다 반복될 것으로 예견하는 전문가는 해외의 기상이변이 우리나라에 당장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싹 마른 산림에 화재가 끊이지 않아도 소방헬기를 신속 동원해 확대되기 전에 진압해 다행이지만, 기상이변이 심해지면 달라질 수 있다는 건데, 대책은 소방헬기 확충이 아니다. 가뭄에도 산불이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

서울 면적 이상 커지는 산불이 반복되는 미 캘리포니아는 개발 이전, 수십 미터 높이의 메타세쿼이아로 울창했다. 건조한 바람이 넘어오면서 산불이 잦아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제가 수탈하기 전까지 양양 간성 사이에 거대한 활엽수가 울창했다. 강풍에 이은 산불이 일상이라면 예로부터 넓은 숲이 형성될 리 없는데. 무슨 까닭일까? 예전에 없던 불이 빈발하는 이유는 생태를 거스르는 인공림과 무관하지 않다고 산림학자는 단정한다.

 

사진출처=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60플러스기후행동 공동상임대표
사진출처=pixabay.com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은 목재용 나무 연구로 명성을 쌓았다. 대학과 가까운 슈바르츠발트, 번역하면 ‘검은 숲’에 가문비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고, 목재를 생산, 가공하는 인재를 키워왔는데, 독일 당국은 한가지 나무를 심던 예전 방식을 포기했다. 대기오염에 이은 자연재해를 경험한 이후 바꿨다. 독일은 슈바르츠발트 한가운데 특별한 장소를 보전한다. 1999년 폭풍으로 쓰러진 20여만 가문비나무를 교육용으로 보전하는 현장이다.

높이 수km에 달하던 빙하가 녹으며 깎은 유럽은 거의 편평하고 숲에 자라는 나무 종류가 단순하다. 목재 생산의 효율을 위해 가문비나무만 심은 독일은 그 피해가 혹독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토양 산성화로 뿌리가 약해진 상태에서 태풍에 몰아치자 가문비나무가 일제히 쓰러진 것이다. 황폐해진 검은 숲에 산책로를 만들어 교육에 활용하는 독일 정부는 자연재해 이후 낙엽활엽수를 섞어 심는다고 한다. 생물다양성을 무시한 산림정책이 재해의 원인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빙하가 뒤덮지 않은 우리나라 숲은 다채로운 나무들로 오랜 세월 어우러졌다. 비가 여름에 집중되는 까닭에 봄이면 낙엽이 바싹 마르지만, 생태계가 건강해 산불이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다양한 나무가 뒤섞이며 습기를 보전할 뿐 아니라 쌓인 낙엽과 쓰러진 나무는 빗물을 붙잡아 여기저기 물웅덩이를 만든다. 바닥의 두툼한 이끼가 습기를 머금으니 산불은 확장되기 어려웠는데, 요즘 달라졌다. 산불이 잦다.

안정된 숲은 키 큰 나무만 울창하지 않다. 키 큰 나무 주변에 여러 종류의 중간 높이 나무가 수십 그루 자라고, 바닥에 올라오려는 낮은 나무의 종류와 수는 훨씬 많다. 초식동물에게 뜯기는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는 나무는 수만 그루에 달할 거로 추정하는데, 그렇듯 나무가 뿌리 내리는 겉흙에 무궁무진한 씨앗이 숨어 있다. 기회를 기다리다 새싹 틔우며 생태계를 풍요롭게 열어줄 것이다.

식물 생태계에서 겉흙은 대단히 중요하다. 온갖 뿌리가 안착한 흙은 헤아릴 수 없는 미생물과 버섯, 다양한 거미와 곤충의 터전일 뿐이 아니다. 많은 동물이 먹이를 찾으며 배설물을 내려놓았다. 숲이 단조로워진 양양과 간성 사이가 얼마 전까지 그랬는데, 2018년 7일 동안의 동계올림픽 스키 활강을 위해 기슭을 내준 가리왕산이 현재 그랬다. 하지만 ‘생물권 보전 숲’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의 스키장 부지는 망가졌다. 겉흙을 잃고 방치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는 생태계를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겉흙을 반드시 보관한 뒤 복원할 때 활용한다. 그 자리에 심는 나무가 건강하게 뿌리 내리도록 돕기 때문인데, 가리왕산은 무슨 속셈이었는지, 약속과 달리 겉흙을 보관하지 않았다. 복원을 약속하며 스키장을 개발한 것이지만, 방치했고, 현재 스키장 부지는 비바람에 휩쓸리고 말았다. 겉흙과 생태계를 잃은 가리왕산 스키장 부지는 복원하기 어려워지고 말았다.

‘소나무 에이즈’라 칭하는 재선충병이 제주도를 휩쓸더니 지리산 남쪽의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재선충은 1mm 크기에 불과한 기생충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선충으로, 주로 솔수염하늘소가 퍼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철 소나무 새순을 갉아 먹는 솔수염하늘소의 몸에서 빠져나간 재선충이 다른 소나무로 빠르게 퍼진다는 것이다. 다르게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유전자가 거의 같은 품종의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은 결과 재선충 전파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여러 활엽수를 섞었다면 재선충 감염뿐 아니라 화재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산림에 인공림이 많고, 인공림에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편이다. 동해안을 바라보는 강원도가 특히 그런데. 불쏘시개 되기 쉬운 소나무를 많이 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겨울철 산불이 잦은 지역에 심은 소나무는 대개 목재용이 아니다. 경북 울진과 청송 지역의 춘양목처럼 곧게 자라지 않는다. 소나무 심기를 고집하는 지역은 대개 값비싼 송이버섯 채취로 유명하고, 송이버섯은 소나무 숲에서 자란다.

강원도는 복원을 위해 묘목 250그루를 준비했다고 생색낸 적 있다. 겉흙 잃은 산림 생태계를 묘목 250그루로 복원한다고? 터무니없는데, 망가진 마당이니 스키장으로 재활용하자고 뻔뻔하게 제안한다. 설악산을 비롯해 전국의 국립공원은 케이블카로 망가질 위기에 처했다. 케이블카가 등산로 인파를 줄이므로 생태계가 보전된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위기와 감염병 대안으로 생태계 회복탄력성의 확보를 권고하는데, 우리는 역행한다. 산불 키우려는 숲이 목적인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60플러스기후행동 공동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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