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이라며? -심온재 일 년을 돌아보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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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이라며? -심온재 일 년을 돌아보며-2
  • 문지온
  • 승인 2023.03.19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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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재 이야기
사진=문지온
사진=문지온

속한 한 날 J는 오지 않았어요. 이유는 주변 정리, 그러니까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운영 중인 가게를 정리하느라 바쁘기 때문이었어요. J와 다음으로 약속을 미루고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했어요.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자기가 아직 쓸모 있는 존재이고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 터, J의 상태가 불안정하긴 해도 지금 당장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지는 않겠구나. 살아갈 이유를 찾는 거겠지. 다행이다......!

그때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꾸준히 J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예고한 대로 실행할 작정인지.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돌아온 답변은 같았어요. 주변 정리에 바쁘고 살아가는 일에 지쳤다는 것. 저 역시도 고단한 삶을 견뎠기 때문일까요? J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어요. 죽을 마음으로 강하게 살아보라거나 길모퉁이 지나면 희망이 보일 테니 힘을 내라거나 하는 식으로요. 한 발짝도 걸을 힘이 없는 사람에게 두세 발짝 더 걸으라고 요구하는 건 또 한 번 상처 주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면 항상 이렇게 말했지요.

“J야, 너에게 심온재 문(門)은 항상 열려있다는 것 알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눈 맞으면서 이 여정을 너랑 ‘함께’ 걷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그것만 기억하고, 마음이 요동칠 때나 쉴 곳이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한다고 약속해라.”

J는 그러겠다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어요. 간간이, 하지만 꾸준히 전화를 걸어왔어요. 주로 밤 시간에 술에 취한 목소리로요. J와 통화를 할 때면 저는 마당에 나갔어요. J의 이야기는 대개 너무 무겁고 아픈 데다 때론 분노에 차 있어서 듣고 있는 저까지도 힘들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마당을 서성이면서 하늘의 별빛을 보거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알았거든요.

“누나는 사후(死後)에 삶이 있다고 생각해? 천주교에서는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잖아. 사는 게 힘들어 사는 걸 포기했는데 그런 사람을 영원히 지옥 불에서 고통받게 한다면 그게 하느님이야? 누나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이라며? 자기 생명을 바쳐 인간을 사랑한 신이라며?”

J가 도발적으로 말했던 것은 개구리 소리 요란한 여름날이었어요. 저는 J의 그 말을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난이나 천주교 교리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자살을 앞둔 사람들도 사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J가 지금 그런 단계를 지나고 있나보다 짐작했지요. 사실, J에겐 그리스도교에 대한 상처와 혐오가 있어요. 한때 개신교에 관심이 있었던 J는 앞에서는 ‘하느님 사랑’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이기적이고 온갖 추잡한 짓을 일삼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만나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J의 그런 사정을 감안해서 담담하게 대답했어요.

“J야.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주제가 ‘사후의 삶’이라는 거 알고 있어. 그래서 네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난 교리를 충실히 믿는 신앙인이 아닌데다 죽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교리와 상관없이 내가 그리는 하느님은 우리가 이 세상 삶을 끝내고 갔을 때 커다란 사랑으로 품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 “얘야, 험한 세상 살아내느라 애썼다. 이제 내 품, 내 사랑 안에서 편히 쉬거라!” 그리고 J야, 너를 동반하는 지금 내 관심은 사후의 삶이 아니라, 지금 당장 네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가야. 네가 정 사후의 일이 궁금하다면 믿을만한 성직자를 소개할 테니 그분하고 이야기해봐.”

그 말 끝에 J에게 물었어요. 너는 사후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J는 자기가 끌리는 것은 불교의 ‘윤회(輪回)’ 사상인데, 그럼에도 자기는 다음 생에 어떤 생명으로든 환생(還生)하기 싫다더군요. 특히 인간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던 ‘힘들고 고단했던 삶’을 처음부터 다시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했어요. 그런 이야기 끝에 J는 제가 몇 개월 동안 기다려왔던 말을 했어요.

“그래서 누나, 나는 못 죽겠어! 이 끔찍한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잖아?! 차라리 살아있는 동안 죽을힘을 다해 깨달음을 얻는 게 낫지. 깨달은 사람에겐 다음 생이 없다니까.”

하하,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했어요. 논리적으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 마음을 바꾸어주어 고맙다고요. 그리고 그동안 J를 위해 지속적으로 미사와 기도를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며 “네가 혼자라고 느꼈던 그 순간에도 너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잊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말했어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J는 조금 놀라는 것 같았고, 그분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요. 다음에 좋은 일을 갖고 심온재를 방문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고요.

J를 포함,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을 동반하면서 이따금 친구들에게 듣는 말이 있어요. 감정은 전염되는 법인데 원래도 우울한 성향을 가진 제가 자꾸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삶이 더 무겁고 힘들어지는데 왜 굳이 그런 일을 계속하냐는 거예요. 심온재에 깃들기 전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어요. 사춘기 무렵 아버지의 자살로 제가 혼란과 고통에 빠졌을 때 누군가로부터 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던 것을 저보다 늦게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분들에게 주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요. 심온재에 깃든지 일 년이 되는 지금은 그 말끝에 이렇게 덧붙이게 되네요.

“걱정마! 여긴 자연이 좋아서 힘들다가도 금방 마음이 회복돼. 그래서, 그러라고 하느님께서 내게 이 공간을 허락하신 것 같아!”

 

문지온 아가다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을 통해 따뜻함에 이른다"는 뜻으로 필명을 문지온으로 정했다. <남은 자들을 위한 800km>(ekfrma, 2016)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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