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튀르키예에선 유명무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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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튀르키예에선 유명무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3.13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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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튀르키예 여행기-6
본당 앞에 놓인 촛대에 기원을 담아 불을 놓고 있는 이들. 뒤로 그리스정교회 사제의 모습이 보인다.(이하 사진=한상봉)
본당 앞에 놓인 촛대에 기원을 담아 불을 놓고 있는 이들. 뒤로 그리스정교회 사제의 모습이 보인다.(이하 사진=한상봉)

최근 콘스탄티노플의 바로톨로메오 1세 일치 총대주교가 “인종차별, 대량학살, 인종청소, 반유대주의, 경배 장소의 파괴 등은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비난받아야 할 야만적인 행위”라며, 이러한 행위에 “종교의 가면의 가면을 덧씌우는 행위는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나이지리아와 수단 등지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고,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반정부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2011년 이후 2만여 명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분쟁 해소의 방법으로 ‘대화’를 강조하며 “대화는 상호 이해와 서로에 대한 차이에 대한 관용일뿐 아니라, 화해와 변화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그리스의 임브로스 섬에서 태어나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세계총대주교청 비서실장, 소아시아 필라델피아 고대주교청 대주교 등을 거쳐 1991년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겸 세계총대주교로 서임되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지금도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부른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의 수도가 있던 도시이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정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세계총대주교를 맡는다. 동방정교회는 그리스, 러시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예루살렘정교회 등 14개의 자립교회가 ‘동등한 형제교회’로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의 일치 총대주교의 위치는 가톨릭교회의 ‘교황’과 달리 상징적인 명예직으로 남아 있다. 각 정교회들은 동일한 비잔틴 전례를 통해 일치를 도모하면서도 각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동로마와 러시아의 황실가문 문장이기도 한 쌍독수리 문장. 교권과 세속권력을 양손에 쥐고 있는 형상이다.
동로마와 러시아의 황실가문 문장이기도 한 쌍독수리 문장. 교권과 세속권력을 양손에 쥐고 있는 형상이다.
본당 안에는 수많은 성화가 금박장식 틀 속에 도열하고 있다. 제국의 종교를 보여주는 듯 하다.
본당 안에는 수많은 성화가 금박장식 틀 속에 도열하고 있다. 제국의 종교를 보여주는 듯 하다.
제대를 장식한 쌍독수리 십자가. 이 문장을 통해 정교회는 자신이 로마제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통교회(Orthodoxy Church)임을 과시하고 있다.
제대를 장식한 쌍독수리 십자가. 이 문장을 통해 정교회는 자신이 로마제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통교회(Orthodoxy Church)임을 과시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그리스정교회 총대교구좌: 하기오스 게오르기오스 성당

동방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이면서 동시에 그리스정교회의 수장이 머무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는 현재 이스탄불에 있다. 그러나 1923년 스위스 로잔느에서 튀르키예와 그리스가 맺은 조약으로 튀르키예에 남아 있던 그리스정교회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모두 그리스로 이주하면서 무주공산(無主空山)에 떠 있는 섬처럼 총대주교좌만 튀르키예에 남아 있다. 튀르키예에 남아 있는 신자가 거의 없다는 뜻인데, 튀르키예 정교회 상황을 보여주는 듯이 총대주교좌와 대성당은 주택가 골목을 한참 들어가야 만날 수 있으며, 명성과 달리 서울시내의 일개 본당 차원의 규모에 불과했다. 이번 튀르키예 여행단을 인솔한 정양모 신부는 “총대주교를 만나려면 한국정교회의 암브로시오스-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 대주교(한국교구장)의 추천서가 효험이 있다. 총대주교는 방문객에게 30분 정도 말씀과 강복을 베푼 뒤에 초콜릿을 준다”고 전했다.

1054년 이후 동방정교회의 총본산은 소피아 성당이었다. 그러나 1453년 메흐메트 술탄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자 사흘만에 소피아 성당은 모스크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은 세간의 오해처럼 ‘한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말처럼 강압적으로 종교탄압을 행하지 않았으며, 세금을 내는 한 타 종교를 허용했기 때문에 정교회의 존속이 가능했다. 그후 정교회의 총본산은 성 사도교회로 옮겼다가 이듬 해인 1454년에 수녀원이던 판마카리스토스(행복한 성모) 교회로 옮겨져 132년 동안 총대주교좌로 있었다.

그러나 판마카리스토스 교회가 1591년 무라드 2세의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 전승을 기념하여 페트히에(승리의) 모스크로 바뀌면서, 1586년 총주교좌는 다시 하기오스 데미토리우스 카나피스 성당으로 옮겨졌다. 그후 1603년에 하기오스 게오르기오스 성당으로 다시 옮겨져 지금까지 세계총대주교좌로 남아 있다.

성당 내부가 온통 금박으로 덮히고, 이콘으로 장식된 성당 정면에는 독수리 형상의 정교회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 문장에 새겨진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는 오른발에는 교권을 상징하는 십자가, 왼발에는 세속 권력을 뜻하는 황금구를 들고 있다. 이는 동방정교회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황제권력과 동맹관계에 있던 동방정교회는 그동안 자신을 정치질서와 동일시해 왔으며, 그 결과 사회적 발언을 극히 자제하면서 신자들의 개별적 신앙을 돌보고 제국의 신성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이는 가톨릭교회(서방교회)가 로마 제국이 멸망 이후에 서유럽에서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하면서 교황이 그리스도교 국가의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권위로 공식화된 것과 결을 달리 하고 있다.

이제 그 제국이 멸망한 상태에서 동맹관계를 맺고 있던 동방정교회가 자력갱생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도 엄격한 비잔틴전례를 통해서만 종교적 일치를 희구하는 듯이 보이고, ‘동로마 제국’의 문장으로 사용되던 이 문장을 안타깝게 붙잡고 ‘옛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편 오스만제국의 등장으로 무력화된 그리스정교회 대신에 세력을 확장한 것이 ‘제3의 로마’를 주장하던 러시아의 정교회다.

 

본당 안의 샹들리에.
본당 안의 샹들리에.
그리스정교회는 성화들을 금박 또는 은박 틀 속에 안치해 놓기를 즐겼다.
그리스정교회는 성화들을 금박 또는 은박 틀 속에 안치해 놓기를 즐겼다.
정교회는 성모신심이 유별나다. 다만 가톨릭교회의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교리나 '성모 승천'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교회는 성모신심이 유별나다. 다만 가톨릭교회의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교리나 '성모 승천'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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