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겨울이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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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겨울이 사무친다
  • 진용주
  • 승인 2023.03.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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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주의 사진..그리고 적막함

오늘 점심은 봄이었다. 일요일 낮에 신경주역 앞에 나뭇가지 끝자락이 몰캉몰캉한 것이 수상쩍더니 일은 마침내 그리 되었다. 이제 며칠간은 하루에 두 계절이 실갱이를 할 것이다. 겨울아 이겨라 봄아 이겨라. 응원하는 사람은 없어도 스스로에게 그리 토닥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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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겨울이 사무친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꼭 겨울 몽골에 다시 가리라 생각한다. 겨울이 시작되는 지점은 알타이산맥 어디쯤이라고, 혼자서 X 표시를 해놓았다. 그곳에서 꽁꽁 언 채로 살다가 와도 좋겠다. 봄은 너희가 다 가지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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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중 큰이는 십대 후반쯤이었다. 남자 소년이 수테차를 내주는 경우는 드문데, 다른 가족이 없자 형이 슬그머니 준비해 차를 내주었다. 말수 적은 기사는 특별히 소년들에게 묻는 것 없이 차를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낮의 바깥은 영하 십몇도고 바람이 약해서 따듯하게 느껴졌지만, 김을 보면 안다. 여기는 겨울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곳. 연무煙霧처럼 찻그릇 위로 부드럽고 반투명한 곡선들이 겹쳤다. 소년이 내준 수테차로 몸이 더워지고, 전날 마신 술이 상기됐다. 보드카와 수테차는 좋은 궁합이야. 하나가 있어 하나가 필요해지는.

차를 마셨으니 이제 어디로 갈 건가. 가자. 가자.

 

진용주 
우리교육 기자, 디자인하우스 단행본 편집장 등 오랫동안 기획, 편집, 교정교열, 디자인, 고스트라이팅 등 여러 방법으로 잡지와 단행본을 만들며 살았다. 책을 만드는 것만큼 글을 쓰는 일도 오래 붙잡고 지냈다. 장만옥에 대한 글을 쓰며 남에게 보이는 글의 고난을 처음 실감했다. 덴마크 루이지애나미술관에 대한 글을 쓰며 미술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지 않을 때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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