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세상에 노크하는 알라의 소리, 블루 모스크와 카리예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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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세상에 노크하는 알라의 소리, 블루 모스크와 카리예 박물관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3.07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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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튀르키예 여행기-5]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사원'은 중앙 돔을 중심으로 네 개의 작은 돔이 받치고 있는데, 천정의 선과 무늬가 연출하는 디자인은 경탄할만 하다. 천정을 바라보는 순간 여행자의 입이 쩍 벌어져 다물기 어렵다. 하느님께서 사람 안에서 활동하시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아름다움이다.(이하 사진 한상봉)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사원'은 중앙 돔을 중심으로 네 개의 작은 돔이 받치고 있는데, 천정의 선과 무늬가 연출하는 디자인은 경탄할만 하다. 천정을 바라보는 순간 여행자의 입이 쩍 벌어져 다물기 어렵다. 하느님께서 사람 안에서 활동하시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아름다움이다.(이하 사진 한상봉)

 

"신은 위대하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고, 그분 이외에 그 누구도 없도다.
무함마드는 그가 보낸 사도이시다.
예배 보러 올지라. 성공의 길로 올지라.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

이스탄불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도시의 사방 곳곳에 자리잡은 모스크에서 독경사인 '무아진'이 부르는 '아잔' 소리다. 역사상 최초의 무아진은 에티오피아 노예 출신의 개종자 빌랄(Bilal)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이스탄불의 호텔 방에서 들을 수 있는 이잔 소리는 대부분 '확성기'를 통해서 들려오지만, 본래 모스크마다 있는 높고 뾰족한 첨탑인 '미나레트'에서 무아진이 직접 육성으로 외치던 소리였다.

이 소리를 듣고 모스크를 찾는 무슬림들은 모스크 정원 안뜰에서 손과 발을 씻고 검은 실과 흰 실을 식별할 정도로 날이 밝은 새벽, 한낮, 오후, 해질 무렵,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드린다. 이 예배는 무슬림이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며, 하느님 앞에 하루 삶을 낱낱이 아뢰고, 용서를 빌고, 바르게 살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다. 이는 가톨릭교회에서 아침·저녁 기도와 오전 6시, 정오, 오후 6시에 드리는 삼종기도 등 다섯 번 기도하는 것과 유사하다. 확인하지 못했지만 기도 내용도 엇비슷할 것이다.

모스크는 무슬림에게 이런 예배의 장소이지만, 한편으로는 '나그네를 위한 쉼터'이기도 하다. 이희수 교수가 쓴 <이슬람>(청아출판사, 2011)에서는 "여행자들은 멀리 모스크의 불빛만 발견하면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적었다. 모스크 주변에는 목욕탕과 여관, 식당과 병원, 시장 등이 있으며,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과 경비가 떨어져 오갈 데 없는 나그네들을 위한 숙소와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그네들은 다른 무슬림과 더불어 예배를 보고, 낮 시간에는 카펫이 깔린 폭신한 모스크 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모스크 바깥에 있는 수도에서 항상 흐르는 깨끗한 물로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슬람 사회에서 모스크는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예배 전후에 무슬림은 삼삼오오 모여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나누곤 한다. 아마도 중세 유럽에서 성당을 중심으로 광장이 있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곳곳에서 정치토론과 자선이 행해지던 풍경을 떠올리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블루 모스크 내부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그 아래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블루 모스크 내부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그 아래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블루 모스크 내부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그 아래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블루 모스크 중앙 돔 아래 공간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가득차서 시장 바닥과 다름없다. 그들은 연신 사진을 찍고 기념촬영을 한다. 이른바 세속도시라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셔터를 눌러 대는 한 켠에는 무슬림이 고요히 앉아서 예배 드리는 공간이 있다. 이들은 기도처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관광객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상에 잠긴다.블루 모스크 내부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그 아래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성직자 없는 이슬람의 예배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처음 예배를 본 곳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평범한 토담집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가 아랍 세계 밖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비잔틴 문화와 만나면서 둥근 돔과 첨탑을 갖춘 모스크가 만들어졌다. 완만한 경사를 지닌 둥근 돔은 '우주의 평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카라반(대상)들이 타고 다니던 단봉 낙타의 혹을 닮았다. 그 돔의 끝에는 보통 초승달과 별이 얹혀 있다. 이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의 상징이며 '진리의 시작'을 뜻한다. 초승달과 별이 빛나는 밤에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모스크의 3대 구성 요소 중 하나로 모스크 내부나 입구마다 문 위쪽으로 벽면을 움푹 파서 만든 '미흐랍'이 있는데, 이는 성지 메카의 방향을 표시한다. 무슬림은 예배시 메카를 향해 절한다. 또한 모스크에는 설교를 위한 계단식 연단인 '민바르'가 있다. 무슬림들이 금요일 낮에 행하는 합동예배에서 예배를 주관하는 '이맘'이 민바르에서 설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스크에는 무아진이 예배 시각을 알리는 첨탑인 '미나레트'가 반드시 있다.

또한 모스크 안에는 카펫이 횡렬로 나란히 줄을 맞추어 깔려 있다. 모든 인간은 알라(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기 때문에 신분이나 출신에 관계없이 예배에 오는 순서대로 앞줄부터 채우며 모든 신자가 한 줄로 예배를 본다. 앞줄이 채워지지 않는 한 누구도 두 번째 줄에 서면 안 된다. 이를 두고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왕과 거지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예배를 보는 성스러운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슬람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어떤 영적 중개자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직자'가 없다. 이슬람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직접 대화와 소통을 강조한다. 무슬림은 자신들이 하느님과 직접 소통한다고 믿기 때문에 종교적 자긍심을 지니고 오직 하느님께만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복잡한 종교의례나 불필요한 절차를 과감히 생략할 수 있었으며, 하루 다섯 번 행하는 예배와 단식조차도 자율에 맡겨져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미사 전례를 주관하는 사제가 있듯이, 이슬람에도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이 있지만, 그는 성직자가 아니며, 직업과 신분에 상관없이 가장 나이가 많거나 학식이 높은 자가 맡는다. 그래서 이맘의 자격을 얻기 위한 성직과정도, 특별한 서품식 같은 것도 없다. 이슬람신학대학을 나와야 이맘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맘의 경우에 이슬람 수니파(Sunni Islam)와 시아파(Shiah Islam) 사이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수니파에 속한 이맘은 고유한 자기 직업을 지니고 있으며, 예배가 끝나면 다시 생업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시아파의 경우에는 이맘을 '오류를 범하지 않는 신의 대리자'로 여겨서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킨다.  

 

술탄 아흐메드 사원
술탄 아흐메드 사원

 

블루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는 한 사람씩 들어가야 할 만큼 아주 좁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인간은 홀로 알라(하느님)를 만나야 한다. 내 죄업도 내 공로도 그분과 셈해야 한다. 그만큼 인생은 하느님 앞에서 장엄하고 또한 초라하다.
블루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는 한 사람씩 들어가야 할 만큼 아주 좁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인간은 홀로 알라(하느님)를 만나야 한다. 내 죄업도 내 공로도 그분과 셈해야 한다. 그만큼 인생은 하느님 앞에서 장엄하고 또한 초라하다.
젊은 터키 여성이 블루 모스크 주변을 돌고 있다. 무언가를 적고 살피고 상념에 빠진다. 그들에게 모스크는 영적인 자리이면서 쉼의 자리이고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다. 이슬람 사원은 모든 곳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누구나 출입할 수 있으며, 누구나 그곳에서 안식을 청할 수 있다. 카펫 위에 앉아 한없이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알라를 만날 수 있다.
젊은 터키 여성이 블루 모스크 주변을 돌고 있다. 무언가를 적고 살피고 상념에 빠진다. 그들에게 모스크는 영적인 자리이면서 쉼의 자리이고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다. 이슬람 사원은 모든 곳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누구나 출입할 수 있으며, 누구나 그곳에서 안식을 청할 수 있다. 카펫 위에 앉아 한없이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알라를 만날 수 있다.
모스크에 들어갈 때는 누구나 신발을 벗어야 한다.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던 모세의 하느님이 생각난다. 맨발인 채로, 맨 마음으로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가 충분히 겸손하지 않을 때 그분은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게서 고개를 돌리신다.
모스크에 들어갈 때는 누구나 신발을 벗어야 한다.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던 모세의 하느님이 생각난다. 맨발인 채로, 맨 마음으로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가 충분히 겸손하지 않을 때 그분은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게서 고개를 돌리신다.


 "성 소피아 성당을 모방하라" 술탄 아흐메드 사원

이스탄불에 있는 모스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술탄 아흐메드 사원'이다. 인근의 모자이크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비잔틴 제국의 궁전터에 지은 이 모스크는 유리창과 벽면이 온통 푸른 빛을 띠고 있다고 해서 '블루 모스크'(Blue Mosque)라고 부른다. 종교와 예술을 사랑했다는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인 아흐메드 1세가 건축가 메흐메드 아아를 시켜 1609년부터 짓기 시작해 7년 만인 1616년에 완공한 모스크다.

아흐메드 1세가 성 소피아 성당 맞은 편에 더 화려하게 지은 블루 모스크는 돔 형식이어서 외관상 성 소피아 성당과 유사하다. 내부 공간과 돔의 크기는 성 소피아 성당과 차이가 있는데, 성 소피아 성당이 75m×70m인데 블루 모스크는 51m×53m로 약간 작다. 중앙 돔의 직경과 높이도 성 소피아 성당이 32.5m, 56.6m인데 블루 모스크는 23.5m, 43m다. 또한 중앙 돔은 네 개의 작은 돔이 받치고 있으며, 260개의 광창을 통해 내부를 밝히고 있다. 블루 모스크 아래쪽 벽은 이즈닉에서 생산된 1000개의 중국풍 청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으며, 백합과 카네이션, 튤립과 장미 등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희수 교수에 따르면 "술탄은 톱카프 궁전에서 나와 흰카르 카스트(황실, 현재 카펫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음)를 거쳐 사원 안에 있는 왕좌에서 예배를 보았다"고 한다. 이슬람이 평등한 예배를 강조하지만, 당시에는 술탄의 특별한 위치가 강조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슬람에는 사제와 같은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사원 안에 제단이나 성역이 따로 없다. 예배할 때 춤이나 음악은 금지되었고, 모든 형상을 우상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조각상이나 그림이 없다. 다만, 코란 경전의 문구를 따온 아랍어 성구를 적어 놓았으며, 영원한 하느님(알라)을 상징하듯이 수없이 반복되는 기하학적 문양을 새겨 놓았다.  
 

무슬림은 무한히 반복되는 무늬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표현한다. 비록 성상을 만들 수도, 성화를 그릴 수도 없지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생각과 염원을 담아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무슬림은 무한히 반복되는 무늬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표현한다. 비록 성상을 만들 수도, 성화를 그릴 수도 없지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생각과 염원을 담아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코라 성당이 카리예 박물관으로

이스탄불에는 비잔틴 제국의 성당들이 대부분 오스만 제국 이후 파괴되지 않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활용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인 카리예 박물관 역시 비잔틴 시대에는 '코라'에 있는 '구세주 성당'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성 밖에 있다고 해서 '성문 밖'이라는 뜻의 '코라'에 세워진 구세주 성당은 '코라 성당'이라고도 부른다.

최초의 코라 성당은 4세기경 세워졌으나 557년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성상파괴운동이 끝난 1077년부터 1081년까지 알렉시우스 1세와 콤네누스의 장모인 마리아 두카이나가 재건했다. 13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다시 파괴된 성당은 14세기에 안드로니쿠스 2세가 재건했으며, 당시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들은 당대 최고의 거장인 테오도레 메토키데스의 작품이다.

메토키데스는 황제 안드로니쿠스 2세의 조카딸과 결혼해 왕가의 가족이 되었으나, 황제의 손자가 제위를 찬탈하자 직위와 재산을 박탈 당하고 유배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수도자 신분으로 코라 성당에 돌아와 1331년 3월 이승을 떠났다. 관례적으로 성당을 지은 이는 그 성당에 묻힐 권리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코라 성당은 16세기까지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되다가 1765년에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면서 성 소피아 성당과 마찬가지로 성당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회칠로 덮혀졌다. '카리예 박물관'이 된 이 성당의 성화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 아기 예수의 소년 시절, 예수의 기적 등을 담고 있는데, 1948년에 와서야 미국 보스턴의 비잔틴학 연구소가 회칠을 벗겨 내는 작업을 해서 성화가 복원되었다.  

카리예 박물관 정원. 코라 성당 앞마당은 장미가 만발했다. 코라 성당은 성 소피아 성당이나 블루 모스크와 같은 장엄함 대신에 소박한 정원에 둘러싸인 채 아늑했고, 내부에는 벽이란 벽, 기둥과 천장 모두가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로 뒤덮여 있었다.
카리예 박물관 정원. 코라 성당 앞마당은 장미가 만발했다. 코라 성당은 성 소피아 성당이나 블루 모스크와 같은 장엄함 대신에 소박한 정원에 둘러싸인 채 아늑했고, 내부에는 벽이란 벽, 기둥과 천장 모두가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로 뒤덮여 있었다.
박물관 내부에 있는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는 대부분 공관 복음서와 야고보서 등 외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보통 불교 사찰에 가면 금당 벽을 부처님 이야기로 그려 놓아 불경을 읽을 수 없는 이들을 그림으로 교화시켰다. 마찬가지로 일부 지식인들만이 알아보던 복음서를 신자들이 쉽게 알아듣게 복음서 내용을 그림으로 펼쳐 놓았다.
박물관 내부에 있는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는 대부분 공관 복음서와 야고보서 등 외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보통 불교 사찰에 가면 금당 벽을 부처님 이야기로 그려 놓아 불경을 읽을 수 없는 이들을 그림으로 교화시켰다. 마찬가지로 일부 지식인들만이 알아보던 복음서를 신자들이 쉽게 알아듣게 복음서 내용을 그림으로 펼쳐 놓았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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