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상황에 직면하면… 성화 속, 성 요셉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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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상황에 직면하면… 성화 속, 성 요셉을 보자
  • 김혜경
  • 승인 2023.03.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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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의 명화 속 사유와 현실-8

3월은 성 요셉 성월이다.
연중 마리아의 달이 5월과 10월 두 달이고, 마리아의 축일은 굵직하고, 1월 1일 천주의 모친 대축일부터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까지 여러 번 있는 것과는 달리, 성 요셉은 마치 공경을 덜 받는 것처럼,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미술의 역사에서 요셉을 어떻게 표현해 왔는지, 몇 개 사례를 통해 매년 사순절 속에서 맞이하는 성 요셉 성월을 생각하며, 우리 삶에서 직면하게 되는 황당한 상황들에서, 그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중세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1400년대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도상학에서 ‘성 가족’을 표현할 때, 요셉은 종종 폭삭 늙은 할아버지로 묘사되곤 했다.

 

위에 소개하는 작품은 플랑드르의 화가 후고 반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의 <포르티나리 삼부작(Trittico Portinari) 제단화>로, 1477~78년 목판에 유화(우피치 소장) 그림이다. 에그-템페라 기법을 주로 사용하던 피렌체에 유입된 유화라는 것 외에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중년의 목자들을 통해 당시 피렌체에 적지 않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에만 집중해 보면, 부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마리아와 요셉의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 보인다. 차라리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라고 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성탄’이라는 주제에 맞게 마리아는 아기 앞에서 경배하고 있다. 아기와 마리아를 둘러선 주변의 인물들과 화병에 꽂힌 꽃들은 모두 이 모자(母子)를 중심으로 하고, 두 분을 상징하고 있다. 요셉은 왼쪽 끝에, 어쩌면 목자들보다도 멀리 떨어져 이곳이 거룩한 땅이라는 걸 의미하듯 신발을 벗고 자신을 낮추고 있다. 대천사와 하위 천사들처럼 이 공간의 수문장처럼 한쪽으로 물러나 있다.

 

다음은 1520년경 파르마 사람으로, 베네치아 학파에 속하는 코레조(Correggio)의 작품인데 역시 우피치에 있다.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있는 이집트 피난길에서 쉬고 있는 성 가족>이다. 의뢰인이 프란체스코 무나리였기 때문에, 의뢰인의 주보 성인을 넣은 걸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도 요셉은 여전히 마리아와 비교해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로 묘사했다. 그래도 여기선 앞의 반 데르 후스에 비해 마리아를 보다 성숙한 여성으로 표현하여 두 사람의 간격을 줄였다.

이렇게 요셉을 나이 많은 할아버지로 묘사한 것은, 당시의 문화적인 배경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요셉은 하루아침에 미혼부가 된 것도 모자라, 심하게 늙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모두 아들 예수와 마리아를 위해서. 르네상스 이전의 도상학에서 젊고 아름다운 요셉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라고 하겠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이런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포스트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매너리즘 작가들은 이런 구태의연하고 답답한, 어딘가 눈치를 보는 듯한 기존의 틀이나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사실적으로 요셉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굳이 노인으로 만들기보다는 젊고 아름다운, 남성적인 면을 오히려 강조한 요셉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피렌체, 성 로렌조 대성당 내, 지노리 경당의 제단화로 있는 로쏘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의 1523년 작, <동정녀의 결혼>은 그런 점에서 베네치아 학파의 코레조보다 신랑 요셉을 참으로 멋지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거의 같은 시대에 등장한 작품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기서 요셉은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다. 발그스름한 피부에 금발의 곱슬머리를 한 씩씩하고 건강한 청년 요셉이 남성미가 드러나는 신발을 신고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1541년부터는 브론지노(Agnolo Bronzino)의 그림에서 보듯이 요셉의 모습이 자상한 젊은 남편이자 인자한 아버지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판차티키의 성 가정>(우피치 소장)은 요셉이 잠든 아들 예수와 그에게 입을 맞추려는 사촌 세례자 요한을 마리아와 함께 그윽하게 바라보는 젊은 아버지로 등장한다. 마리아와도 잘 어울리는 이런 부부의 모습도 이후 시대에 이르러 ‘고전주의’를 표방하면서 오히려 후퇴하는 듯하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요셉의 역할과 인품, 덕행은 한 번도 노화되어 표현되지 않았다.

 

김혜경 세레나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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