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병원에 안 가고 단식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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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병원에 안 가고 단식을 하는가?
  • 장진희
  • 승인 2023.02.2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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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 진도에서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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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에서 음식을 안 받는다. 누룽지 한 그릇은커녕 물조차 넘어오는 게 싫단다. 탈이 난 것이다. 아픈 것이다. 하는 수 없다. 어거지로 넘길 수는 없는 일. 그럼 음식을 넘기지 말아야지. 다 토하고 나서 살살 달래니 그래도 물은 받아준다. 그렇다면 죽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위장병’이라고 한다.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위궤양’이라고 입원치료를 받았고, 두 번째는 ‘위염’이라고 한두 달 동안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또 재발한 것이다.

또 사람들은 음식을 안 먹는 걸 ‘단식’이라고 표현한다. 내 경우 이번에는 먹을 수 있는데도 안 먹는 게 아니라 먹을 수 없어 못 먹는 것이다.

옆에서들 왜 병원에 안 가느냐고 난리다. 일단은, 위장병이 자꾸 재발하니까 완치해보려고 단식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도 자꾸 문제를 삼으니까 속에서 부글부글 대답이 끓어오른다.

내가 왜 병원에 안 가고 단식을 하는가?

일단은 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병이 났을 때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우선 위장병을 낫게 하는 게 급선무였다. 지금은 몸이 하라는 대로 해도 될 시간이 있다.

단식을 하는 동안 나는 내 위장을 아프게 한 많은 이유를 깨달았다. 병원에 가서 병을 치료한다면 위장은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위장을 아프게 한 이유를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단지 몸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도 병이 들었다는 것이고, 생활습관이나 정신, 모든 게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원래 밥을 많이 먹지는 않지만 그 동안 나는 배고프기 전에도 뜻 없이 밥을 먹었고, 사실은 위장이 싫어하는 음식도(단식을 하면서 알게 된다. 내 위장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단식 하면서 뭐가 가장 먹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위장하고 소통을 좀 해보니까 알 것 같다.) 생각 없이 삼켜 넣었다. 몸은 싫다는데도 당기는 대로 담배를 피웠고, 위장이 싫어하는데도 술을 부어 넣었다.

그리고 또... 그 동안 형편없이 나약해져 있었다. 춥다고 있는 대로 껴입고 겨울을 났고, 찬바람이 무서워 벌벌 떨었다. 풍욕과 냉온욕을 해보니 알겠다.

풍욕할 때, 새벽 찬바람을 알몸으로 맞으면 사실은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돋는 걸, 그걸 잊고 살았던 것이다.

냉온욕할 때 온탕의 뜨끈함에 몸이 노골노골 좋아서 한없이 앉아 있고 싶은데... 사실은 온탕에 오래 있을수록 밖에 나오면 어질어질하다. 늘어지는 몸에 찬물을 끼얹으면 몸이 도로 확 살아나면서 기운이 난다.

따뜻함, 편안함... 이런 건 사실 삶이 늘 요구하는 추위와 긴장을 견디기 위한 잠깐의 시간 동안이면 족한 것이다.

그리고 또 내가 왜 병원에 가지 않았는가?

병원도 없고 의사도 귀했던 옛날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그 방식에 세상의 희망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현대 의학의 위대한 성과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옛날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의학을 만났다면 하느님을 만난 듯 경외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그 힘이 위대해서, 본래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을 부정하고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가만 보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이겨내거나 고칠 수 있는 것도, 걸핏하면 쪼르르 병원이나 의사에게 달려가 목을 매고, 그 전에 산과 들에서 얻어 얼마든지 고쳤던 치유방식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렸다. 사람들은 점점 나약해지고 의존적이고 자기 자신과 자연의 힘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의학을 포함한 모든 현대 문명의 위대함에는 그런 식의 독소,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정말 급할 때 고맙게 쓰는 문명은, 옛 사람들이 스스로 애써 찾아냈던 방식을 중심에 놓고 지키면서 도움 받는 식이 아니면 그 독소가 오히려 우리를 해칠 것이다.

그리고 또 병원에 가지 않고 단식을 하는 이유는......

오늘은 열흘 단식 후 첫 미음을 먹은 날이다. 다섯 가지 잡곡을 푹 끓여 밥물만 반 공기 정도 입에 넣었다. 위장에 보내보았다. 괜찮다. 위장이 받아준 것이다.

와아! 고맙다, 위장아! 그 동안 너무 고생시켜서 정말 미안하다. 이제는 괴롭히지 않도록 노력할게!

위장이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어린 생명 같다. 정말 안쓰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 회복식 동안도 단식 기간만큼 힘들다. 많은 절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거나 더 나빠질 수 있다. 죽다 살아난 아기를 보살피듯 위장과 대화를 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것만 살살 넘겨주어야 한다.

된장 국물 한 숟갈이 그립고, 감자 한 알이 귀하다. 그 작은 것 하나라도 천하를 얻은 듯 기쁠 것이다.

몸만 맑아진 게 아니라 마음도, 정신도 맑아진다. 사람에게 기본인 식욕이 가장 큰 문제가 된 시간 동안, 다른 모든 문제는 별 게 아니다. 세상이 말개진다. 일상의 많은 것들이 귀하고 고맙다. 새롭다.

그런 새로움, 그런 가난한 마음이 나는 좋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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