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온재 일 년을 돌아보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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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재 일 년을 돌아보며-1
  • 문지온
  • 승인 2023.02.20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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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재 이야기
사진=문지온
사진=문지온

산책을 하려 집을 나서는데 심온재 키 작은 대문 앞에 꽃이 피어 있었어요. 별 모양의 작고 앙증맞은 연보라색 꽃. 봄까치꽃이라고도 하고 개불알꽃이라고도 부르는 야생화였어요. 뉴스에서는 연일 혹한(酷寒)에 고생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우리 마을 길섶에도 누렇게 시든 풀들이 얼어붙은 눈덩이를 덮고 있는데 이 작고 연약해보이는 생명체는 꽃을 피우다니! 작은 탄성이 흘러나오더군요.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꽃을 바라보면서 생각했어요. 심온재에 깃든 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가는구나, 하구요. 작년 이맘때 친구와 함께 박스 몇 개가 전부인 이삿짐을 갖고 심온재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만난 것이 봄까치꽃이었거든요. 길에서 벗어나 심온재로 통하는 짧고 가파른 오르막 초입에 피어 있던. 그때 받았던 위로가 떠올랐어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작은 마을에 혼자 뚝 떨어진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면서 ‘여긴 겨울 속의 봄이구나! 이런 곳이라면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손가락 끝으로 보드라운 꽃잎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꽃이 있는 자리로 보아 그때 내가 만났던 그 꽃은 아니겠지만 그때 네 동무가 있어 겨울 속에서도 봄을 느낄 수 있어 좋고 고마웠다구요. 꽃을 볼 수 있는 건 우리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라지요? 꽃이 그 말을 받아 천진한 얼굴로 살짝 어깨를 으쓱이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았어요. “뭐 그런 걸 갖고 그러세요? 난 그냥 때가 되어 내가 피울 수 있는 꽃을 피운 것뿐인 걸요!” 빙긋, 웃었어요. 심리적인 여정에서 제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추구해온 과제가 그 말속에 있었거든요. 다른 사람이 아닌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제 안에 심어놓으신 고유한 꽃을 삶 속에서 피워내는 것. 지금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자문했어요.

바람은 시려도 햇살은 따사로왔어요. 걷기에 좋은 날씨인데 길에는 사람 하나 없었어요. 스무 가구 남짓 되는 작은 집성촌에서 낮 시간 마을을 지키는 분들은 대부분 칠팔 순의 어르신들, 산책보다는 마을회관에서 방바닥 따뜻하게 데우고 작은 먹거리를 나누면서 한담을 나누는 것이 편하고 좋으시겠지요.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뒷짐 지고 천천히 걸으면서 제가 물었어요. “아가다, 지난 일 년 낯선 곳에서 많이 고생하고 힘들었는데 어떤 힘으로 이겨냈니? 그리고 봄까치꽃도 저렇게 고운 꽃을 피워냈는데 넌 네 일상을 통해 어떤 꽃을 피워냈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어요. 지난 일 년 저를 지탱해온 힘은 바로 자연, 남도의 햇빛과 바람과 자연이었어요! 특히 한 겨울 정오의 햇빛과 햇볕은 제게 큰 힘과 위로를 주었지요. 간밤의 추위에 차고 딱딱해진 고무 슬리퍼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녹여주었거든요. 그래서 저 나름의 정화의식(淨化儀式)을 만들었어요. 바로 차갑고 딱딱한 슬리퍼를 신고 햇빛 좋은 마루에 서서 따사로운 햇볕에 슬리퍼가 보들보들해질 때까지 서 있는 것이예요. 그러면 발밑이 따뜻해지면서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제가 모르는, 더 크고 아름답고 따뜻한 힘이 저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늘을 바라보게 되거든요. 한 번도 저를 떠난 적이 없는 하늘, 세상 어디에 있든 제가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드넓은 하늘에서 느끼게 되는 하느님의 존재와 따뜻한 품을 느끼면서요!

바로 이 정화의식 때문에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과 정서적-문화적 환경이 다른 데서 오는 지역 사람들의 턱없는 험담과 소문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편견엔 편견으로, 비방엔 비방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마음의 아픔들을 짐작하면서 침묵으로 말이예요.

두 번째 질문, 그러니까 제가 심온재에 깃들어 사는 동안 어떤 꽃을 피웠는지에 대한 답변을 찾는 것도 어렵진 않았어요. 바로 무명의 아티스트인 J의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SNS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 동안 힘들고 어려울 때면 술에 취해 전화를 해오던 J가 자살할 날까지 정해놓고 연락을 해왔을 때 정말 곤혹스러웠어요. 비아 프란치제나 도보순례를 다녀온 후 칠 년가량 자살 유가족이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을 동반해왔지만 한 번도 J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날짜까지 예고해온 사람은 없었거든요. 대개가 그런 충동이 올라올 때나 자살을 시도하려다 두려움이 커서 멈춘 후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말하곤 했지요. 평소와 다르게 술에 취한 목소리가 아니라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J가 자신의 계획을 말했을 때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구나, 정말 실행할 계획이구나, 하고. 그래서 진심으로, 평상시에 해왔던 대로 말했어요.

“J야, 잘 들어. 난 네가 얼마나 고되게 살아왔고 지금도 힘든지 알아. 아티스트가 자기 작업을 포기한다는 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그것도 어렸을 때 자기를 버린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그러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래서 이해할 것 같아. 삶이 너무 고단하고 허무해서 죽으려 한다는 거. 그리고 난, 알아. 정말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거. 특히 넌, 한다면 하는 녀석이니까 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가고 싶으면 갈 거야. 그런데 죽기 전에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 심온재로 와! 여기 손님방 있는 거, 너도 알잖아. 거기서 머물면서 따뜻하게 자고, 내가 해주는 밥 따뜻하게 먹으면서 한 며칠 쉬어. 그래야 너 떠나도 내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너도 네 춥고 고단했던 삶에 따뜻했던 기억 하나 정도는 갖고 가는 게 좋고.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줘. 그러라고 여기, 심온재가 있는 거거든.”

간곡한 부탁에 J는 그러마, 했어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제가 느낄 슬픔과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제가 아는 J는 그런 녀석이었어요. 겉으로는 거칠고 강한 척하지만 속마음은 여리고 아픈). J와 심온재를 방문할 날짜를 잡고 통화를 끝냈어요. 그리고 친구 신부님과 몇몇 믿을만한 분들에게 전화를 돌려 J를 위한 미사와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했어요. 그동안 J가 얼마나 고되게 살았고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갈망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죽음의 계획을 갖고 있는지도. 만약의 경우, 예컨대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경우를 대비해 J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살예방 관련 기관들을 검색해서 핸드폰에 저장을 해 놓고는 J가 심온재로 오겠다고 약속한 날을 기다렸요.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다음에 계속)

 

문지온 아가다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을 통해 따뜻함에 이른다"는 뜻으로 필명을 문지온으로 정했다. <남은 자들을 위한 800km>(ekfrma, 2016)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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