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번데기 10원어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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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번데기 10원어치 같은
  • 김선주
  • 승인 2023.02.1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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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우리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뻔디기라고. 겨울 길거리 간식 중에 붕어빵 같은 밀가루 음식이 넘보지 못할 고단백 영양 간식이 번데기였습니다. 길거리 리어카에서 유난히 김이 많이 나는 곳이 있으면 그건 십중팔구 번데기 장수였습니다. 번데기는 연탄불에 오래오래 삶아지고 졸아서 번데기 육수가 잘박해질 때 가장 맛있습니다. 짭조름한 국물 맛과 오래 고아서 부드러워진 번데기의 식감, 그리고 고소한 풍미는 겨울의 미학을 구성하는 오브제였습니다.

번데기 10원어치를 사면 아저씨는 군고구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신문지를 찢어 만든 종이고깔을 뒤집어 소복하게 담아줍니다. 그것을 받아 든 손이 얼마나 흐뭇한지 나는 얼굴이 수국처럼 벙글어집니다. 보석 반지를 끼듯 번데기를 한 알씩 입에 넣을 때마다 그 겨울의 풍미는 내 어린 영혼에 깊은 향기를 새겨놓았습니다. 겨울은 번데기가 있어서 겨울이었습니다. 길거리에 번데기 장수가 없는 겨울은 겨울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작년 11월에 인터넷에 인공지능 채팅 로봇(Chat GPT)이 등장했습니다. 이 챗봇은 불과 3개월 만에 구글의 생태계를 위협할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AI 채팅 로봇을 몇 번 사용하고 전율이 일었습니다. 처음엔 데이터를 단순 편집하여 기계적인 답변만 제공하던 것이 이젠 사용자가 직접 입력하지 않은 내용까지 맥락을 유추하여 답변할 정도로 알고리즘이 빠르게 진화해버렸습니다. 2,30여 년 남은 나의 여생 안에 AI가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상상을 하니 두려웠습니다.

우리는 신기술을 쉽고 편리하게 받아들여 사용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사유와 선택의 범주를 침해하게 될 때 인간은 인간으로서 의미와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사피엔스)이 지구를 정복하고 우세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추상적인 사고와 이야기의 그물망을 만들어내는 정신 능력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스토리텔링)의 알고리즘을 AI가 지배하여 의미의 그물망을 만들게 될 때, 인간은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신성한 존재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느낀 두려움의 이유입니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자기모순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으로 자기 완전성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수학적 계산으로 완전한 답을 찾으려 하고 기계적 논리로 자기 완전성을 주장합니다. 자기의 모자란 부분을 감추는 것으로 완전해 보이려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특별히 교회는 불완전한 존재들이 함께 모여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하느님 앞에 엎드려 제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불완전한 존재들이 자기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며 서로 감싸고 치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컴퓨터나 로봇이 만들어내는 기계적 정확성이 아니라 모자란 인간들이 서로를 감싸고 치유하며 성숙해져가는 영적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 10원어치 번데기를 손에 쥐었을 때의 그 흐뭇하고 따뜻한 느낌이 교회의 느낌이었습니다. 신문지로 만든 종이고깔의 꼭지점으로 흐르는 번데기 육수를 핥아먹던, 빈곤한 모습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함께 모여 위로받고 치유되는 알고리즘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10원어치 번데기 육수가 잘박하게 흐르는 인간의 맛, 그 맛을 교회에서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교회 공동체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인들에게 나의 모자란 모습을 감추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서로에게 털털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서로에게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병드는 것은 완전해지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완전해지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이 신앙의 목표입니다. 모자라니까 사람이고, 모자라니까 서로에게 기대며, 모자라니까 구원이 필요한 겁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서로에게 10원어치 번데기일 때 우리는 구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10원어치 번데기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10원어치 드릴까요?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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