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기록에서 빠진 ‘마리아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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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기록에서 빠진 ‘마리아 막달레나’
  • 김유철
  • 승인 2016.08.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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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교종의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지정, 신의 한수"
Guido Reni - The Penitent Magdalene

[김유철의 Heaven's door] "교종의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지정, 신의 한수"

마리아 막달레나

성인과 창녀를 오가는 그 분에 대한 ‘애매한’ 인식에서 오늘의 글을 전개한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분명한 뜻’에 따라 2016년 6월 3일 예수성심대축일에 새로운 교령을 발표했고, 한국천주교회는 지난 7월 11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 해설과 축일의 감사송을 소개했다. 이제 성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미사는 교회 전례상 ‘기념일’에서 ‘축일’로 등급이 승격되었다. 무엇보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Apostolorum Apostola)로 거듭 선포했다. 과연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구인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래전 사람으로 예수와 동시대인이다. 11세기 이후 성인으로 인정받은 마리아는 유대인이고 갈릴래아 지방의 막달라(Magadala) 마을과 연관이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가톨릭 경전인 <성경>에는 이 여인의 이름이 12번 언급된다. 물론 4복음서-마태오 3회, 마르코 4회, 루카 2회, 요한 3회-를 다 합친 숫자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어 있는 면이 있다.

부활이후 누구도 이 여인을 기록하지 않았다

서방 교회는 6세기 대(大) 그레고리오 교종(540~604)의 해석이후 마리아 막달레나를 예수께서 ‘친구’(요한 11,11)라고 부르셨던 라자로의 누이동생 마리아와 동일한 인물로 봤다. 그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요한 11,2)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해석을 바탕으로 복음서를 다시 살펴보면 요한복음에는 17회, 루카복음에는 2회 그의 행적이 더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앞의 것들과 합하면 모두 31회다. 그러나 예수 부활 이후를 기록한 사도들의 서한인 사도행전 외 스물여섯편의 기록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해서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삶이나 어느 고장 출신인지, 누구의 동생인지를 뛰어넘어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엇보다 ‘부활’의 첫 증인이었다. 사도들은 왜 이 여인을 기록하지 않은 것인가?

2015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리히텐슈타인박물관 명품전-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이 열렸다. 그 때 한 작품이 있었다. 화가 귀도 레니(1575~1642)의 작품인 ‘성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그림이 걸렸다. 미술평론가들은 바로크시대의 화려함과 복잡함을 절제된 표현으로 묘사한 귀도 레니를 평가했고 그의 작품이 느슨하면서도 대범하며, 마리아 막달레나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고 전시작품 중 으뜸으로 손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마리아 막달레나는 늘 글이나 그림, 때로는 교리로 표현하기 어려운 성인은 아니었을까?

2003년 소설가 댄 브라운이 출간하여 세상을 요란하게 했던 <다빈치코드>란 추리소설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 속에 숨겨진 코드(Cord)를 찾아서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 시온수도회와 오푸스데이가 얽힌 내용이었다. 당시 이 소설은 44개의 언어로 번역출간되어 6000만부 이상 팔렸다. 톰 행크스가 출연한 영화로도 나왔다. 물론 완벽한 픽션이었다. 한기총을 비롯한 일부 개신교측은 배포 및 상영금지소송을 일으킬 정도로 반응을 보였지만 한국천주교회는 그저 점잖았다. 아니 못 본 척, 못 들은 척 했다.

Rogier van der Weyden, ‘The Deposition (The Descent from the Cross)’, c. 1435

a sinful woman, Mary Magdala

어쩌면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런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저 루카 가 이름 없이 소개 했던 한 여인,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a sinful woman)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7-38)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서울 집창촌이 몰려 있던 용산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쉼터를 30여 년 전 평신도와 수도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마련했다. 그동안 공동체를 향한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매매 경험 여성들을 위한 그룹홈, 의료, 직업훈련 지원 등을 계속 이어나가는 대표적 단체이다.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도 깊은 관심을 주었던 공동체이다. 공동체의 이름에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들어있겠지만, ‘막달레나 공동체’라는 이름을 대할 때마다 교회와 신앙인들이 어떤 눈으로 마리아 막달레나 성인을 접근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더군다나 ‘막달레나’는 사람이름이 아니고 마을이름일 뿐이다.

왜 유독 한국천주교회에서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누명에 가까운 선입견으로 대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가톨릭대사전>에서 찾아본 마리아 막달레나의 도입부다. “성녀. 축일 7월 22일. 갈릴래아 출신의 여자이며 고향 이름이 ‘막달라’이므로 마리아 막달레나 혹은 막달라의 여자 마리아라 불려진다. 매춘부였다는 전설이 있는 이 여자는...”

여기서 하나 묻자, 언제부터 교회가 ‘전설’까지 사전에서 전했는가. 교회가 공신력(?) 있는 성전과 성경과 성령의 감도 외에 다른 루트의 것을 취합하여 신자들에게 공개한 적이 있었던가. 교회가 전설까지 말하자면 우리는 좀 심각해진다. 주일학교 교리부터 교회노인대학까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것을 재검토해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할 시점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축일 승격과 더불어 해야 할 일이다.

사랑하였고, 바라보았으며, 찾았고, 경배하였다

우리는 다시 막달라의 여인 마리아를 찾아야 한다. 십자가 길 끝까지 예수를 따라간 한 여인,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무덤까지 따라간 한 여인, 주간 첫 날 부활한 예수를 만난 첫 여인, 그가 마리아 막달레나다. 이미 1988년 8월 15일 마리아의 해에 즈음하여 당시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여인의 존엄과 소명에 관한 <여성의 존엄> 16항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현 교종 프란치스코가 자비의 특별희년의 맥락에서 이번 ‘사도들의 사도’ 호칭과 ‘축일’ 승격을 결정한 것이라고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밝히고, 동시에 <로마미사경본> 7월 22일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 고유 감사송을 삽입했다.

경신성사성이 밝힌 새 감사송 해설의 일부다. “감사송 본문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행위에 주목하게 합니다. 곧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심과 ……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심”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송이 말하는 것은 ……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당신 자신을 마리아에게 분명하게 밝혀 주셨으며, 현재의 체험에 비추어 과거를 기억하도록 그를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하였고(dilexerat), 바라보았으며(viderat), 찾았고(quaesierat), 경배하였다(adoraverat)’라는 네 동사로 요약됩니다.” 한 마디로 장엄하고 명쾌한 해설이다.

교종 프란치스코은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 중의 사도’라고 밝히는 교령을 발표했고, 여성 부제(副祭) 연구위원회를 설립하고, 교황청 부대변인에 평신도 여성을 임명하고, 무슬림 여성을 세족례에 참여시켰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예수 부활을 목격한 첫 여인 이후 2000여년 만에 인류 변방의 역사가 새로 시작되는 ‘신의 한 수’에 전율을 느낀다.


김유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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