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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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 김선주
  • 승인 2023.02.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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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난 성지순례란 용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간으로써의 성지 개념과 그곳을 순례하는 것을 종교적 신성성과 결부시키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지순례란 말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가진 신학적 이해와 신념으로 오래된 관습과 그것을 좇는 사람들의 언어의 표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성지순례라는 말을 해도 난 그들의 관습과 이해 안으로 들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상대에 대해 존중을 표합니다.

10여 년 전에 그 성지순례라 이름하는 여행객 무리에 끼어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나는 성지라는 의미보다 그곳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되는 문화와 역사적 사건, 그리고 사람들의 정황을 살피는 데 거의 모든 관심을 쏟았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찬찬히 내가 밟았던 곳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이 더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인들을 데리고 올해 추석 연휴에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스라엘의 문화와 상황을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 맞추어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물론 나는 성서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대해 강조하는 설교를 주로 하였지만 오랫동안 보수적인 신앙에 길들여진 교인들의 사고 패턴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치지역에 강제 격리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우울하고 쓸쓸한 낯빛을.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슬픔과 아픔을 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관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이 성서에서 비롯된 시오니즘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밟았을 때 근본주의적 시각으로 그곳을 성지로만 이해하고 위선적인 은혜의 포로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사전교육을 하려 하지만 생각과 인식의 차이, 세계관과 신앙관의 차이가 있는 교인들을 하나의 시선으로 묶어내는 일은 아직도 조심스럽습니다. 아무리 옳은 생각일지라도 상대방의 신념과 가치관을 즉각적으로 파괴하면서까지 내 생각을 강요하지 말자는 게 내 소신입니다. 늦더라도 기다리며 천천히 가면서 스며드는 게 목회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 참 반가운 기사가 찾아왔습니다. <기독교사상> 2월호에서 성지순례를 특집으로 다루었는데, 고양시 YMCA 사무총장인 이윤희 씨가 쓴 ‘평화로 만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대안 성지순례의 시작’이 그것입니다. 단순히 이스라엘 땅을 성지라는 개념으로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숙식을 하며 그들의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그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교제를 함께 나누자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것을 <대안 성지순례>라고 합니다.

성서를 잘못 읽고 잘못 가르치면 폭력적인 그리스도인을 만들게 됩니다. 전쟁을 말하는 대통령을 지지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악마로 규정하며 거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한국 개신교회의 주류 교단의 교인들입니다. 난 우리 교인들이 그런 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성지순례를 통해 성서의 땅을 보는 것과 동시에 성서 밖의 성서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를 소망합니다. 성지순례를 넘어 팔레스타인으로의 순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적은 비용이라도 고통받는 자들의 땅에 씨앗처럼 뿌리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또 다른 의미의 헌금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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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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