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빠지지 않는 삶, 모데나 대성당의 북쪽 면, “어(魚)시장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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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빠지지 않는 삶, 모데나 대성당의 북쪽 면, “어(魚)시장의 문”
  • 김혜경
  • 승인 2023.02.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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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의 명화 속 사유와 현실-7

2월, 사순절이 있는 시기가 다가왔다.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가장 짧은데다 기온도 겨울과 봄 중간에 걸쳐 있어 존재감이 적어 보이지만, 계절의 경계에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의미가 있는 달이기도 하다. 겨울에 발을 딛고 있지만, 시선은 봄을 향해 서 있는 달, 사순절의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부활을 바라보는 달, 그것이 2월이 갖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시작된 교회답게, 교회는 일찌감치 말과 글의 중요성을 가르쳤으나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북방의 이민족들이 유입되면서 제국시대의 언어도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다. 제국시대의 언어였던 라틴어는 각 지역의 방언으로 자리를 잡고, 특정 계층의 언어로 맥을 이어가면서 백성들의 문맹률은 높아지고, 교회는 그런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11~12세기, 교회는 사순절 시기에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어떻게 백성을 가르쳤을까? 이번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하겠다. 이탈리아 북부지방 모데나의 주교좌 성당 겸 대성당(Duomo di Modena)의 북쪽 옆면(윗 사진), 안쪽에 있는 “어시장의 문”을 소개한다. ‘어시장’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이 문 바로 앞에 어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은 양쪽에 쌍둥이 기둥이 있고, 그것들을 대들보로 연결한 뒤, 그 위에 아치형의 둥근 대리석 창문 형태로 만들었다. 문은 다른 지역의 대성당들에 비해 그리 화려하거나 장엄한 것은 아니다. 장식도 원래 이 대성당의 장식을 맡은 걸로 유명한 빌리젤모(Wiligelmo)의 기법과 다른 ‘보르고뉴 방식’의 ‘아서의 장인(Maestro di Artù)’이라는 사람이 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아서왕 이야기’도 장식했기 때문이다.

양쪽에서 쌍둥이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텔라몬(telamoni)은 고단한 인간 삶의 표상이다. 쌍둥이 기둥에 새겨진 각종 식물과 동물 중에는 괴물 같은 것도 있고, 상상의 동물 같은 것도 있어 모두 현세를 대변한다. 잘 들여다보면, 그리스도교의 도상학적 가르침 외에도 고대의 유산으로 남은 전설이나 중세기 동물 우화들이 많은데, 역시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려는 의도였다.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설파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치와 대들보에 새겨진 가르침들이다. 아치에는 “아서왕 이야기”가 있다. 성(城)에 갇힌 지네브라를 구하기 위해 원탁의 기사들이 양쪽에서 진격하는 장식이 아치 위에 새겨져 있다. 여기서 지네브라는 교회를 상징한다. 이것은 현세에서의 선과 악의 싸움을 의미한다.

그 아래 대들보에는 몇 가지 우화가 새겨져 있다. 왼쪽부터 “트리톤을 타고 있는 네레이드”, “여우의 장례식”, “복잡한 시스템 속에 박힌 십자가”, “두루미와 뱀”, “늑대와 학”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우의 장례식”: 여우 한 마리가 닭 두 마리를 잡아먹기 위해 죽은 척했다. 닭들이 여우의 장례식을 치른다고 끌고 가던 중에 죽은 척했던 여우가 일어나 자기를 끌고 가던 닭들을 모두 잡아먹었다. 신앙을 거스르는 것들은 여우와 같이 간교하므로, 결코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루미와 뱀”: 두루미와 뱀의 싸움으로, 두루미 그룹이 늪에서 잠을 잘 때, 종종 뱀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 두루미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고 뱀은 악을 대변한다. 두루미 그룹이 잠을 잘 때, 한 마리가 망을 보는데, 알다시피 두루미는 한쪽 다리를 접고 잠을 잔다. 당시 사람들은 접고 있는 다리에 돌멩이를 들고 있어, 뱀의 공격을 받으면 돌멩이가 떨어져 균형을 잃게 되고, 그 소리에 망을 보던 두루미와 전체 두루미 그룹이 깨어난다고 생각했다. 항상 깨어 있어야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말함이다.

맨 오른쪽 끝에 있는 “늑대와 오리” 이야기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우화다. 입 안에 가시가 박혔다며 오리에게 빼 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늑대가 자기를 도와주기 위해 입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자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멍청하면 그것을 이용하려는 악이 늘 존재한다는 걸 가르쳐준다.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알고 믿어야 하는 이유다.

옛날 성현들의 가르침을 듣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올 사순절을 맞이하면 어떨까.

 

김혜경 세레나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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