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돼지라도 독감에 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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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돼지라도 독감에 걸리겠다
  • 장진희
  • 승인 2023.01.3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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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 진도에서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시골집 마당. 사람들은 집안으로 마당으로 들로 바쁘게 움직이는데 마당 한가운데 누렁이는 팔자 좋게 늘어져 낮잠을 잡니다. 그야말로 '개팔자가 상팔자'입니다.

꼬꼬닭들이 꼬꼬꼬꼬 꼬꼬꼬......마당을 돌아다니다 한 마리가 늘어진 누렁이의 다리 위에 올라섭니다. 눈만 껌벅거리던 누렁이는 모르쇠하고 도로 눈을 감습니다. 꼬꼬닭들이 다리고 뱃구리고 머리고 개 무서운 줄 모르고 '잠 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립니다.

누렁이가 왕! 하고 짖으며 순식간에 몸을 일으킵니다. '아이고, 간 떨어지겠네.' 꼬꼬닭들이 꼬꼬데엑! 꼬꼬데엑! 비명을 지르며 도망갑니다. 누렁이가 쫓아갑니다. 풀어놓고 키우는 꼬꼬닭은 새의 날개를 잃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꼬꼬닭들이 그런 대로 멋지게 날아올라 야트막한 지붕에 푸드득 날아앉습니다.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되었습니다.

마사토 잘 다져진 흙마당이라 달구똥이 찍찍 갈겨져 있거나 방울방울 떨어져 있어도 금새 흙하고 하나 되어 냄새 날 것도 없습니다. 개는 절대로 마당에는 똥오줌을 안 쌉니다. 흙과 잘 섞여 땅으로 돌아갈 만한 데 찾아가서 싸고 나옵니다.

마당 한켠 돼지막에는 닭과 개가 벌이는 한바탕 난리굿에도 무심하게 돼지가 꿀꿀 거리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배가 고픈 돼지, 주는 대로 뭐든 잘 먹습니다. 되다 만 농작물이든 고구마줄거리든 서리 맞은 호박이든 가마솥에 팍팍 끓여주면 꾸울꿀 꾸울꿀꿀 꿀꿀꿀 반갑다고 꿀꿀소리 요란합니다. 가난할 때는 사람도 죽쒀먹던 등겨(쌀겨), 보리겨 한 바가지와 쌀뜨물, 기영물에 푸성귀 깡탱이 둥둥 떠 있는 구정물통 정재에서 내다 구유에 부어주면 저렇게도 맛있을까 보는 사람 침이 꼴깍 넘어갈 지경입니다.

'돈'이 판치지 않을 때, 가축이 '상품'이 되어 돈벌이로 키우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의 가축들은 닭은 닭답게, 개는 개답게, 돼지는 돼지답게 살다 죽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원없이 살다, 피와 살을 나눠준 쥔네가 '니캉 나캉 한몸 되자' 하면 기꺼이 한몸 되어주었습니다.

닭은 알 낳는 데까지 낳습니다. 모이가 시원찮으면 알을 덜 낳으면 되고, 모이 실컷 쪼아먹고 다니면 알 퐁퐁 낳아 어차피 다 품지 못할 달걀들은 쥔네 귀한 손주 입에 넘겨줍니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 굽은 손으로 알통가리에서 조심스레 알을 꺼내 김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생달걀 하나 톡 깨뜨리는 살생을 하여 간장에 비벼주기도 하고 그릇에 잘 풀어 가마솥에 밥 뜸들일 때 솥단지 안에 넣어두었다가 밥상에 올려주기도 합니다. 병아리 한 마리 몫이라 피가 되고 살이 될, 비린내 하나 없이 노오랗고 꼬숩고 진한 맛입니다.

닭이 이제 더 이상 달걀을 낳을 기운을 잃으면 한여름 더위에 지쳐 기력 떨어진 쥔네 식구들 그 질긴 살 폭폭 고아 쫄깃쫄깃 맛나는 백숙에 닭죽을 쒀먹습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개를 키운다는 말 대신 개를 먹인다고 말합니다. 당신 배도 주리던 시절에 할머니는 밥때가 되면 말씀하십니다.

"아이고, 말 못하는 짐승... 저라고 배가 안 고플까?"

하고 당신 밥을 남겨 개를 먹였습니다. 밥을 나눈다는 것은 목숨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개는 개대로 밥값 하느라 낯선 사람 나타나면 왕왕 짖어대 쫓아내기도 하고, 쥔네 가는 산길에 배암이 똬리 틀고 있을 새라, 행여 고얀 짐승 나타날 새라 정찰을 하느라 앞서 달려갑니다. 개는 쥔네가 시키는 일이라면 죽음도 달게 받습니다. 그러다 쥔네가 병들어 쓰러지게 생겼을 때 이 한몸 주인 몸보양 시키는 데 다 바치고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합니다. 소도 돼지도 잡을 수 없는 가난한 집에서 몸 아픈 사람이 쓸 수 있는 최후의 회복약이 바로 보신탕이었습니다.

'개고기를 즐겨 먹는 한국 사람 타도!'라구요? 그 말은 그저 한끼 탐욕스런 식욕의 희생양이 되기 위해 개 몸뚱이 두세 배 넓이도 안 되는 개막에 평생을 갇혀 사료와 약물로 사육당하다 개 노릇 한번 못 해보고 죽음을 맞는 지금의 개에는 합당한 말일 것입니다.

요즘 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흙샤워' 한번 못해보고, 두 발로 흙을 열심히 파제껴 뒤로 흙을 뿌리며 흙 속에 든 온갖 벌레며 지렁이며 지네, 그 맛나는 식사 한 번 못 해보고, 마당이고 대숲이고 뒤안 돌담 밑이고 산책 한 번 못 해보고 평생 몸 한번 꿈틀할 공간도 없이 딱 한 몸뚱이 크기의 철창에 갇혀 성장촉진제가 팍팍 들어간 사료를 먹고 몸뚱이만 얼른얼른 키워 그램 수가 되면 실려갑니다. 가축이 아니라 무슨 배양 식물처럼 키워지는 것입니다.

돼지는 또 어떻습니까?

누군가 '웃는 돼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전에는 제를 올리거나 고사를 지낼 때 쓰는 돼지머리가 웃고 있지 않으면 상에 올리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산 목숨을 잡는 일은 하늘에 고할 때 허락받은 일이었고 그 제에 올릴 돼지를 잡을 때는 돼지에게 합의를 구했습니다. 산 목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그런 절차 없이 강제로 때려잡아 공포 속에서 돼지를 죽게 하면 돼지머리가 웃는 얼굴일 수가 없고 그런 돼지머리는 절대로 젯상에 올릴 수 없다 했습니다. 물론 웃는 돼지머리 고기는 젯상에서 내려지면 맛나게 나누어 먹었지요.

평생 먹이라고는 성장촉진제 들어간 사료가 전부이니 항생제가 아니면 온갖 병 때문에 키울 수조차 없는 약골 돼지... 아무런 예고도 양해도 합의도 없이 '나도 목숨 붙어 있는 생명이요오' 외칠 겨를도 없이 느닷없이 때려잡아 돈 만드는 고기 이외는 어떤 존재로도 인정해주지 않는 도살...

내가 닭이라도, 내가 개라도, 내가 돼지라도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나는 닭답게 살다 죽고 싶다아!"
"나 돼지도 그렇다아!"
"나도 개답게 살다 죽고 싶다아!"

조류독감이든 광우병이든 돼지독감이든 닭과 소와 돼지들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항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짐승이라 하여도 어찌 원한이 쌓이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도 수많은 원한이 쌓여 어느 날 갑자기 지구 이쪽 저쪽에서 한꺼번에 그 독이 퍼져 나오지 않을 수 있겠냐고요.

신문과 방송에서는 닭과 소와 돼지가 괴질에 걸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합니다. 너무나도 빤한 이유를 '원인불명'이라 하니 사람들이 전부 바보가 된 것이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정말로 알 수 없는 건 괴질의 이유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입니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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