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끔은 개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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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은 개가 되고 싶다
  • 김선주
  • 승인 2023.01.3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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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사진=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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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직장은 글 쓰는 일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자본도 없이 결기 하나로 모인 80년대 학번들이 만든 월간지에서 정치기사와 사회기사를 쓰는 것이 내 생애 첫 직업이었습니다. 월급을 받지 못할 때도 참 즐겁고 신나게 일했습니다. 그 일이 내게 너무 잘 맞았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달려가 사건을 파헤쳐 고구마 줄기처럼 엮인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 진실을 찾아내 그것을 기사로 풀어내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 일로 다양한 정치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내가 경험한 정치 세계는 이분법적이었습니다. 그 이분법으로 정치인들을 단순하게 구분하면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습니다. 그 때도 야당과 여당이었지요. 그런데 진보와 보수 정치인들의 세계관과 사고 패턴은 마치 고양이와 개처럼 확연하게 구분됐습니다. 진보 정치인들이 개성이 강하고 까칠하며 냉철한 고양이과라면 보수 정치인들은 주인의 품에 안겨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떠는 개과였습니다.

진보정당 소속의 지자체장을 만날 때면 늘 불편했습니다. 기자와 거리를 두고 계산하며 논리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수정당 소속 지자체장을 만나러 가면 부속실에서 돈 봉투부터 불쑥 날아듭니다. 물론 저는 한 번도 그 봉투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늘 친근하게 웃으며 살갑게 꼬리를 흔듭니다. 기자에게 보수정치인들처럼 편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 불순한 동기와 욕망이 비수처럼 숨겨 있어 잘못하면 그것이 불쑥 튀어나와 강도처럼 찌르려 들 때가 있습니다. 자기 이익에 반하는 진실과 마주치거나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공격 모드로 돌변하는 게 보수정치인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집단 사이에 가장 큰 간극은 철학의 문제였습니다. 진보적인 야당 정치인은 늘 빈곤에 허덕이면서도 자존심과 결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논리와 정치 철학이 분명했습니다. 내가 왜 정치를 하는지 분명한 동기가 있었고 소신과 철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여당 정치인들은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을 기초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명예와 권력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 있는 사람에게 줄을 섰습니다.

그래서 보수정당의 실권자들에게 지역의 졸부들은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돈은 있는데 학벌이나 명예가 없는 사람들을 자극해서 막대한 헌금을 대가로 공천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평생 어렵게 쌓아놓은 자기 부를 허물어 그 정당의 실권자에게 줄을 서며 재산을 탕진합니다. 그렇게 평생 일구어 온 기업을 탕진하고 몰락한 지역의 토호 몇 사람을 난 지금도 기억합니다.

내가 목사가 되어 보니 교인들에게서도 그러한 신앙 패턴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 믿고 복 받아 잘 살고 천국에 가기 위해 종교적 열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의 양태는 비슷하지만 그 동기가 분명하게 다릅니다. 기독교가 인간과 세계를 위한 종교에서 자기 이익을 위한 종교로 변질된 것입니다.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는 따름의 대상보다 초월적 믿음의 대상이고, 개인의 발복을 위한 무속적 의미를 띠게 됩니다. 또한 십자가는 사탄을 퇴치하는 부적이 되고 성서는 자기를 보호하는 주술이 됩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간혹 개가 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주인이 던져주는 밥을 먹고 꼬리 흔들며 속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향기 같은 은혜를 얘기하고 무한한 사랑과 초월적 신비를 말하며 구원의 확신에 도취되어 현실에 눈감고 평안하게 살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도 가끔은 지치거든요.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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