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그리스도, 가난한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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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그리스도, 가난한 교황
  • 한상봉
  • 승인 2016.08.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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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세속화 시대, 성직자 권위주의에 대한 유감-2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이 누구에게나 복음인 것은 아니다. 가난한 자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福音)’인 것이 때로 부자들에게는 ‘불길하고 나쁜 소식(凶音)’이 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교황즉위로 인해 좌불안석할만한 고위성직자들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안이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던 사제들에게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 자체로 사제 생활에 대한 도전이 된다.

“좋은 저녁입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고서,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10만 명의 신자들에게 처음으로 전한 발언이다. 교종은 자신의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로 정했으며,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그동안 세계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2014년 8월에는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종교지도자에 대한 신선한 감흥을 전해 주고, 교회개혁에 대한 희망을 안겨 주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즉위하면서 자신의 문장에 ‘miserando atque eligendo, 자비로이 부르시니’라고 적었는데, 그분이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한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기억한 말은 브라질 상파울루 명예주교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입을 맞추며 했던 한마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

파파 프란치스코는 우리의 행복한 저녁을 늘 기원해 왔다.

가난한 교황, 프란치스코 교종

교종은 가난한 자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로 살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청빈한 삶은 그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세상의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 즉위 이후 맞이한 첫 성 목요일에는 로마 근교의 청소년 교정시설인 카살 델 마르모 소년원을 찾아가 세족례를 행했다. 교종은 이 자리에서 가련한 소년뿐 아니라, 소녀와 무슬림에게도 세족례를 행했다. 과거 교황들은 도심의 대성당에서 남성들의 발을 씻어 주었으며, 그 대부분이 사제였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행보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아예 교황관저에서 지내기를 거부하고, 콘클라베 기간부터 묵고 있던 바티칸의 카사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교종이 다른 사제들과 ‘공동으로’ 지내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수도회 출신인 교종에게 사제들의 공동체 생활은 낯설지 않다.

이러한 교종의 모습은 기존 가톨릭교회의 고위성직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교종조차 이처럼 청빈을 선택하건만, 지역교회 주교나 고위성직자들이 호사를 누리기는 매우 껄끄럽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주님으로 고백해 왔던 예수처럼 적빈(赤貧)으로 살기는 어렵다고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검소하고 단순한 삶이란 누구나 가능하지만 그동안 주교와 고위성직자들이 짐짓 회피해 왔던 성덕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전환 이후로 지난 2천년 동안 ‘신앙’은 가톨릭교회의 고위성직자들 안에서 수식어에 지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Pope’를 우리말로 적절하게도 ‘교황’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예수의 제자직은 어떤 이유에서도 황제권력과 비등한 것이 될 수 없다. 교황을 중국에서는 ‘교종’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법왕’이라고 부르다가, 천황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의미로 지금은 ‘교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교황’이라 부른다. 교회용어사전에는 ‘교종’이란 호칭도 허용하고 있으나, 상용되지 않는다. 교황은 봉건군주제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교계제도와 교회법에 비추어 보면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교황직이 권력이기 보다 ‘봉사’직무로 해석되면서, 분도출판사에서 출간된 일부 서적에서 번역가 정한교 등이 1970년대부터 줄곧 ‘교종’이란 표현을 일부러 써 왔다. 그러나 최근 20여 년간 다시 교황이란 호칭이 일반화되었다.

교회직무가 권력이 될 때,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가난한 이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교회직무는 봉사이며, 당연히 이 봉사의 대상으로 ‘가난한 이들’이 우선적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사실상 가난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복음선포의 본질적 측면이다.

 

 

 

 

 

 

 

 

가난한 그리스도, 우리의 친구이며 연인이 된 하느님

그래서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몇 차례의 총회를 거치면서 연거푸 ‘신비와 예언’의 통합을 결의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정부교구에서 새로운 10년의 좌표를 제시한 이기헌 주교가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과 방한을 통해 한국교회와 사회에 복음의 기쁨을 사는 삶,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선포 등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셨다.”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 백성은 이 세 가지 핵심을 삶의 방향으로 삼아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실상 신앙과 실천은 둘이 아니며, 참된 신앙은 참된 실천을 낳기 마련이다. 믿지 않고서야 행할 수 없으며, 행하지 않고서야 믿음일 수 없다. 그러나 이 믿음은 사적 개인 안에서만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며, 교회 안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이 신앙의 근거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굳이 ‘혁명가’라고 부를 필요도 없고, 시대 조류에 맞춰 ‘현자’라고 부를 필요도 없다. 사실상 그분은 ‘민중적 지혜를 통해 혁명으로 나아간 사람’이다. 여기서 혁명이란 관습적 가치를 거슬러 세상과 다른 가치를 사회구조와 일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맘몬(돈)이라는 우상에 맞서는 영적 투쟁이겠다.

그분이 그저 단순히 현자로만 남았다면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또한 그분을 혁명가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분에게서 어떤 권력을 향한 의지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가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였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유대종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사제는 본인의 의식과 상관없이 신분상 ‘권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간의 마음을 매만졌으며, 그를 만난 사람은 그 눈길만으로도 치유되었음을 나는 ‘믿는다’. 양은 제 목자의 음성을 기억하는 법이라고 한 그분의 말씀이 옳다. 그분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들은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 기억이 훗날 그리스도교 신앙을 낳았다. 그러나 예수는 치유자에 머물지 않고 상처의 본질로 전진했으며, 그 본질의 중심에 ‘하느님 없는 권력의 무자비함’이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고행의 길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했으며, 거기서 무력함으로 무력한 자들을 섬기는 최고의 형식,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사랑하는 '친구' 평신도 여러분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4년 8월 14일 방한 첫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 한국 주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6일 꽃동네 영성원에서 열린 평신도사도직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는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주교들을 ‘형제’라고 부른 이유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주교직무를 수행하는 자임을 확인하려는 것이고, 이 주교직무의 핵심은 복음서의 표현대로 “(평신도인)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임을 한국교회 주교들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점에서 과연 주교들과 주교의 사목대리인인 사제들이 신자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성직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목숨을 바쳐 자기 백성을 섬겨야 하는 자리다. 결국 이런 형식으로 형제인 주교와 사제들은 ‘유사(類似) 주님’의 자리에서 백성들의 친구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영성은 ‘주님에 대한 사랑’일뿐 아니라 ‘벗에 대한 사랑’이다. 사실상 벗에 대한 사랑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영성이다. 예수는 가난한 백성들의 약점을 잡고 ‘주님’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분은 그저 섬약하고 슬픈 눈동자를 가진 이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들의 친구로 죽었다. 여기서 우정이 발생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친구일 뿐 아니라 연인이기를 자청하신다면, 그래서 연인의 눈높이에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셨다면, 가장 남루한 모습으로 그처럼 남루한 인간에게 말을 건네고 아파하시고 상처를 매만져 주셨다면, 마침내 연인을 위해 목숨을 내주셨다면 그 사랑의 깊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그 한가운데서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전달하시는 매체가 예수였음을 발견한다. 그러니, 예수 안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도리가 없다. 그런데 예수가 가난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으니, 가난한 이들 속에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도 하느님을 만나 볼 도리가 없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행동하는 사랑>, 한상봉, 리북,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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