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전마을, 하늘에서 꽃비가 내립니다
상태바
장전마을, 하늘에서 꽃비가 내립니다
  • 장진희
  • 승인 2023.01.09 1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난이 살려낸 것들 - 진도에서: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할매 할배 들만 남은 섬에서 그분들 보살피며 보건진료소장으로 십수 년 세월 청춘을 보낸 친구 하나가 자꾸 한반도를 뜨겠다고 합니다. 나이 사십 중반이 넘어 늦둥이 하나 키우는데 대한민국에서 그 아이 키워내기 참으로 암담 한심하답니다. 또 이땅에서 공무원 하는 일, 도저히 못 해먹겠답니다.

정작 한반도에서 내보내야 할 사람들은 높고 힘센 자리 거머쥐고 앉아 한반도를 작살내고 있는데, 이렇게 아까운 친구는 잃어야 한다니 도저히 잠이 안 옵니다.

마침 친구도 이런저런 일이 자꾸 꼬여 '한반도 탈출'의 발길이 묶여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친구를 꼬드깁니다. 한반도에서 아직 살 만한 데, 살 수 있는 데 찾아보자고. 어떻게든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벗어날 궁리를 해보자고.

백두대간. 한반도 허리께 등줄기 줄기따라 인연 찾아, 마음 끌리는 데 찾아 나섭니다. 집과 땅은 인연이랬습니다.

다행히 요즈음 몇 년 사이에 도시에서 젊은이들이 많이들 내려와 백두대간에도 줄거리 줄거리마다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고향이 그곳인 젊은이들보다도 생판 낯선 타지에 마음의 고향을 찾아 고향을 만들기 위해 내려온 것입니다. 아기 울음소리 끊긴 지 오래, 상노인들만 남은 산골마을에 젊은이들이 살러 와 주니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영감할멈 살거나 할머니 혼자 살거나, 그나마 아이 소리 들리는 집은 도시에서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게 된 자식들이 고향집에 맡기고 간 손주가 있는 집입니다.

혼자 남은 할머니들은 낮에는 그럭저럭 일도 하고 마을회관에 모여 외로움을 나누기도 하지만 기나긴 겨울밤이면 쓸쓸하고 썰렁하기 짝이 없습니다.

"할머니이! 혼자 지내시기 적적하시지요?"
하고 물으면

"그려어! 울 영감탱이는 진즉 저 시상으로 가부렀어. 밤이면 텔레비전이 영감이제."
하고들 대꾸하십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는 밤이면 이야기책이라도 찾고, 수도 놓고, 새끼 꽈서 맷방석이라도 만들었을 터인데, 텔레비전이 생기는 바람에 손들을 놓고 발라당 되바라진 도싯것들 그악스럽게 지지고 볶는 연속극 구경하게 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쓸쓸, 적적하기 짝이 없는 산골에 젊은이들이 들어온 마을은 함께 마을 일도 의논하고 당신들이 평생 살아온 지혜를 써먹을 수 있게 되어 여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인심을 나눌 젊은 사람들이 생겨 살 맛이 납니다. 마을에 아이들 울음 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간간 들려오니 사람 사는 것 같습니다.

정여립의 혁명세상 꿈이 서린 천반산을 마주보고 있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장전 마을에 오릅니다.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에 빈 집이 반 이상입니다. 집은 사람이 사는 한 백년이 되든 이백년이 되든 버티는데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져 갑니다. 집도 사람 기운으로 버티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마을 한가운데 이렇듯 마당에 풀대 무성하고 문짝 날라가고 지붕 무너져 가는 집들이 버려져 있으니 보는 사람 마음도 심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을 이장님을 찾아가 뵙습니다. 일흔 한 살 노인이신데 이장을 맡고 계십니다. 눈에 총기가 총총하십니다.

"연세가 그렇게나 되시는데 아직 이장직을 맡고 계셔요?"
"아, 할 사람이 있어야제. 젊은이라고는 말 못하는 사람 한 사람뿐이고 내가 제일 젊은 축이여."
"예?!!! 이장님이 제일 젊으시다고요?..."
"늙으나 마나 인자 마을 사람이라고는 스물세 명이 전부구만. 옛날에는 작은 마을이 아니었는디....."
"마을에 빈 집이 많네요. 요즘은 도시에서 시골 내려와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던데 고쳐 살 수 있는 집들 좀 빌려주면 안 되나요?"

"아, 집주인이 마을 사람만 되면야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와서 살아주기만 해도 고마운디..."
"그럼......"
"아, 다 도시 사람한테 넘어갔어...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빈 집 주인들 열 사람한테 편지를 썼었구만. 내려와서 좀 어떻게 부수고 정리를 하든가 집 짓고 살 사람한테 팔든가 하라고... 근디 단 한 사람한테도 답장이 없어!...끄응! 누가 좀 살라고 물어봤더니 세상에, 평당 이십만 원을 달라드래, 미친...!"

병풍 같은 천반산과 그 아래 휘돌아가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도시 투기꾼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모양입니다. 잘해야 몇 만원에 샀을 텐데......

이장님께 봄이 오는 산골 마을을 안내 받아 밖으로 나옵니다. 정여립 때 붙여진 이름인지 본래 마을 이름이 장진(將陣) 마을이었다는데, 그 이름 겁이 났는지 나랏님이 버리라 해서 입말만 비슷하게 엉뚱한 장전(長田) 마을이 되었답니다. 이장님은 오랜만에 낯선 젊은이들한테 마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이 나신 모양입니다.

"저기 저 안쪽 골짝 보이제? 저가 아조 명당이라는구만. 옛날부터 저기다 터를 잡으면 조옿다는 얘기가 전해져 왔는디, 근디 자손 중에 하나를 호랑이한테 바쳐야 쓴디야. 그래서 저 땅을 아무도 못 건드리고 있었제... "

멀리서 봐도 그쪽 골짝이 편안하고도 기운차게 느껴집니다.

"우리 할배 때 얘기니까... 아마 백년 가차이 되제? 증조할배가 잘못 해서 저 땅 귀퉁이를 살짝 건드렸디여. 그란디 어느 날 작은할배가 사냥을 나섰다가 가까이서 호랑이를 만났다제. 총을 겨누고 막 쏘려고 하는데 발 아래 돌이 미끄러지면서 그만 기우뚱 해서 총알이 호랑이 발에 맞았디여."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할배가 달려가 보니까 이미 호랑이가 덮쳐 작은할배 양 어깨를 누르고 있드려. 그래 우리 할배가 총을 쏘지는 못하고 총대로 호랑이를 패면서 떼어내려고 용을 썼는데 그만 총대가 두 동강이가 나버렸다지. 동생을 살릴라고 맨손으로 호랑이 허리를 잡고 구르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겨우겨우 동생을 업고 집에 왔는디 그 메칠 뒤로 그만 작은할배는 돌아가시고 말았디여. 내가 그 부러진 총을 지금도 우리 집에 보관하고 있구만......."

돈이나 권력이나 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원혼이 구천을 떠돌아 세상에 원한이 쌓입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힘이나 천지만물의 기운으로 사람이 죽었다면 원한은 없습니다. 전설이 남을 뿐이지요.

이장님이 마을 뒷산을 가리키며 이야기합니다.

"저 봉우리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여. 원래 용은 물이 있어야 사는디... 저짝 죽도 위에 물 합쳐지는 자리 있제?"
"아, 예. 국회의원 유 모시깽이가 폭파시켰다는 산 아래 말씀이지요?"
"그려. 원래 물줄기는 그 산을 한바퀴 휘휘 돌고 나서 장수 쪽에서부터 내려온 물하고 만나게 돼 있거든. 거기 산줄기가 얄팍하니 일자로 돼 있잖어? 그래 이짝에서 보믄 물이 담긴 형상인 거라. 근디 그만 거기를 터놓은께 용이 기운을 잃어버린 것이여."
"어쩌자고 생짜로 산 등허리를 폭파시켰어요? 돌아가는 물줄기를 바로 뚫어서 무슨 다른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글씨 말이여. 뭔 돈 자랑할 일이 있었나 권력 자랑, 힘 자랑할 일이 있었나...... 하여간 그때부터 우리 마을이 기울기 시작했어. 사람이 없어. 사람이...... 근디 인자 용담댐이 큰 호수가 되야서 물을 담고 있는께 인자는 괜찮할 것이락 하든만... 하이고, 우선 사람이 와야제. 사람이......"

아직 비싸지 않은 땅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십니다. 두 사람 공동명의로 된 땅인데 한 사람은 팔고 싶어 하는데 다른 한 사람이 연락이 닿지 않아서 아직 못 팔고 있는 땅이랍니다. 이장님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보니, 처음 이 마을 들어서서 친구와 함께 섰던 자리, 꽃비를 맞았던 자리입니다.

마주 보는 천반산 등줄기에 마치 마애불이 서 있는듯 바위벽 산이 열 줄기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친구가 '십승지라.....'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건너편 흙빛 병풍 같은 천반산에 산벚나무가 군데군데 꽃무늬를 수놓고 있습니다. 벚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조금 있으면 산이 통째로 꽃밭이 될 판입니다. 서 있는 자리는 개간해 놓은 '하늘 아래 첫 밭뙈기'라 꽃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꽃비가 내립니다. 마른 하늘에 비가 내리면 호랑이가 장가 간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소리도 들었어도, 가까이에 꽃피우는 나무 한 그루 아직 없는데 꽃비가 내린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고전문학 작품에서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는 말은 들어보았습니다만 21세기에 마른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다니......

아무래도 이 친구 한반도를 떠나지 말라고 하늘도 꼬시고 있는 모양입니다. 장진 마을이 이제 젊은 사람들 일하는 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넘쳐날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