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어떻게 권력과 화합할 수 있나요
상태바
그리스도가 어떻게 권력과 화합할 수 있나요
  • 최태선
  • 승인 2023.01.09 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사진출처=경향신문
사진출처=경향신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러시아 정교회 성탄절을 맞이해 '36시간 일시 휴전'을 명령했습니다. 러시아정교회 대주교 키릴의 요구에 응한 것입니다. 얼마 전 키릴은 “전쟁에서 죽은 러시아 군인들의 죄는 없어질 것이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푸틴의 징집을 거부하려는 사람들과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푸틴을 도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정교회와 러시아 정권의 결탁을 볼 수 있습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로마 정부와 협력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과 로마 정부는 협력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와 제국주의의 협력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사실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임과 동시에 대안의 제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공산주의 혁명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알아듣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것은 신앙의 자유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때 정교분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말하는 정교분리란 정부와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독립성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니 복음은 정교분리가 아니라 정교반목을 이야기합니다.

“불신자들과는 상종하지 마십시오. 의로움과 불법이 어떻게 짝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빛이 어떻게 어둠과 사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벨리아르와 화합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자와 불신자가 어떻게 한몫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떻게 뜻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르신 그대로입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2코린 6,14-16)

복음이 말하는 정부는 권세로서 마귀의 손 안에 있습니다.

위 말씀에서 말하는 벨리아르는 악마의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벨리아르가 화합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를 정부와 그리스도교가 화합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공산주의 정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포함한 모든 정치체제의 정부를 포함합니다.

여기서 다시 밀라노 칙령과 신앙의 자유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역사를 아는 이라면 이것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달라진 것이 무엇이며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변질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교는 다시 로마 시대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반목해야 합니다. 다시 박해의 시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이미 신앙의 자유가 주는 달콤함에 본질을 망각했습니다. 키릴 대주교만 정부와의 밀월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열렸던 국가조찬기도회의 실상을 아는 이들은 개신교의 실상 역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분들은 구역질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구역질 정도가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선언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벨리아르가 화합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구역질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목사 정도 되는 사람들이나 개혁을 외치는 일부 사람들뿐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오히려 정상으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어울리고 있는 목사들을 큰 목사 정도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나가는 교회의 목사라면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미 오래 전에 국가와 교회가 혼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가와 교회의 밀월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이익이 일치하기 때문이지만 그 대가로 사라진 것은 하느님 나라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누리교회에서 신년예배 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며 감격에 젖는 교인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얼마 전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가 국회의원이 된 최재형 장로 같이 집안 행사에서도 애국가를 부르는 교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얼마나 참람한 일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와 벨리아르가 화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그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사실 수 없고, 다니실 수 없으며 그들의 하느님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세태입니다. 세습이 대세가 되고 헌금유용과 성범죄가 만연하는 것은 그러므로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김장환 목사님과 김삼환 목사님과 오정현 목사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극소수를 제외한 그리스도교 전체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물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에서는 전적으로 반목할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지지하고 때로는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걸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정부와 정부의 정책을 판단하고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키릴은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 정부가 주는 단물을 빨아먹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개신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톨릭을 대표하는 몇몇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벨리아르와 화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키릴을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일반적으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정교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애착 역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그를 한 번 보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전쟁을 합리화할 수 있습니까. 백번 양보해도 어떻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성전이 될 수 있습니까.(저의 입장은 ‘聖戰(성전)은 없다’입니다)

하느님은 억지로 그리스도인의 주인이 되시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의 전제조건인 자발적인 동의의 과정을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 되시게 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으로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감당하셔야 할 오직 유일한 무능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벨리아르와 화합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자와 불신자가 어떻게 한몫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떻게 뜻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그리스도인이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Ta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