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며… 페라라 대성당에 장식된 월별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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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며… 페라라 대성당에 장식된 월별 조각상
  • 김혜경
  • 승인 2023.01.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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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의 명화 속 사유와 현실-6

인간은 ‘문화적 동물’이다.

인간만이 문화를 경작하고 문명을 개척한다. 그런 면에서 하느님의 ‘창조하는 능력’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의 모상으로 태어난 존재이기에 그분을 닮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 연구는 그가 속한 문화를 빼고는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중세시대 자유 상공업이 이탈리아의 여러 공국(公國)을 지배할 때, 다양한 직업이 등장했고, 그 덕분에 공국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대성당 장식에서 월(月)과 그에 해당하는 직업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은 오랜 서양 문화의 산물이기도 한 ‘황도대 별자리’와 연관하여 그것들을 더 잘 이해하는 것으로 삼았다.

서양의 점성술은 바빌로니아에서 비롯되어 그 체계가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주었고, 기원전 2세기 후반 이집트의 점성술과 혼합, 로마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수메르나 메소포타미아 전통과 다른 것은, 개인의 출생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황도(黃道)에 떠오르는 별자리를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2세기, 점성술에 관한 지식을 모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점성사서>(占星四書, Tetrabiblos)』에 그대로 담겼다. 책은 유럽과 중동지역 전역으로 점성술이 보급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우리의 주제로 돌아와서, 중세시대에 지은 대성당 정면에 있는 여러 개의 문이나 기둥에 성경 이야기와 함께 열두 달을 조각으로 장식한 곳은,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작품은 이탈리아 북부 페라라 지방의 대성당, ‘순례자들의 문’에 조각된 1월이다. 작가는 “달의 장인(Maestro dei Mesi)”으로, 이탈리아 북부 코모지방 출신인데 파르마에 다수의 명작을 남긴 중세시대 거장, 안텔라미(Benedetto Antelami, 1150-1230)의 제자 혹은 그의 공방에서 완성한 작품으로 추정한다.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고 하는데, 로마의 신 야누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신상은 문이나 다리 앞에 주로 세우고, 모든 형태의 통행과 변화에 관여한다. 야누스 신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문이건 다리건 들어가면 나가는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월을 이 신의 이름으로 쓰는 것은 한 해의 문을 닫는 동시에 새 문을 여는 달이기 때문이다.

야누스는 여러 얼굴로 등장하지만, 대개는 똑같은 두 개의 얼굴인데, 오늘 소개하는 작품에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젊은이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은 미래를 보는 얼굴과 과거를 보는 얼굴이다. 지난해를 바라보고, 다가올 새해를 소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손에 들고 있는 물병은 1월이 황도대의 물병자리에 속하기 때문이고, 몸은 전체적으로 미래를 향해 있다. 젊은이의 얼굴에는 힘이 있고, 몸도 미래를 향해 있다. 우리의 몸과 발이 향해야 할 곳이 미래임을 암시한다. 손에 들고 있는 물병의 주둥이도 미래를 향해 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리라. 과거를 기억하되, 그것도 미래를 향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과거만 보고, “나도 한때는 잘 나갔어!”를 구호처럼 외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보다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꿈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문 입구에 적힌 문장에 주목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희망이 없는 곳, 아무것도 희망할 것이 없는 것, 그것이 곧 ‘지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하느님을 부르며, 그분을 향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민간의 문화를 빌려서라도 본질적인 가르침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나의 모든 부족함과 허물을 맡기고, 이제 다시 공책을 펴서 새해 계획을 꼼꼼하게 적어보면 어떨까.

 

김혜경 세레나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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