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해 정리하고, 오는 해 마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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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해 정리하고, 오는 해 마중하며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1.02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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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목동동성당 구역반장 피정에서 (사진=한상봉)
목동동성당 구역반장 피정 프로그램 (사진=한상봉)

본당에서 관리장 겸 교육담당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벌써 반 년이 다 되어 갑니다. 애초부터 계획에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정급여가 필요해서 일자리를 찾으면서 가스충전소를 알아보기도 하고, 물류회사 배달도 타진해 보았는데 여의치 않더군요. 성당에서 일하게 된 것은 저보다 저를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배려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 방에는 시몬 베유와 도로시 데이 두 분의 목판프린트 초상이 다미아노의 십자가와 더불어 걸려 있습니다. 그중에 시몬 베유는 아주 특별히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가톨릭 신비주의자의 반열에 올라와 있지만, 세례를 받지 않은 채 교회의 ‘문지방’에 앉아 있기를 고집하신 분입니다. 열렬히 하느님을 사모하지만, 하느님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기 위해 교회 문턱을 넘어 들어가지 않은 분입니다. 중력의 법칙에 지배받는 사람들에게 은총의 가능성을 보려고 했던 분입니다.

하지만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하느님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매일같이 하느님을 입에 올리지만,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하느님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당 강의를 하면서 마음먹은 게 하나 있습니다. ‘강의를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을 신자들이 낯설게 보도록 하자’입니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책 가운데 조셉 돈더즈의 <예수 그 낯선 분>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분은 가방끈도 짧고 유학한 적도 없고 적빈(赤貧)의 가정에서 태어나 노숙풍찬의 세월을 거쳐 반도(叛徒)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고,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운명을 공유한다는 뜻일 텐데, 이런 분을 따라 살아갈 생각이 있는지 묻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유야 확인할 수 없지만, 강의가 거듭될 수록 수강신청도 줄어들고 신자들의 반응이 처음과 많이 달라진 것을 체감합니다. 낯선 불청객을 경계하듯이, 신앙과 교회에 대한 낯선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래도 자꾸 듣다보면, 언젠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 싶습니다. 몇몇 신자들이 깊은 관심을 보여주시니, 그 마음에 의지해 갈 길을 차분히 걷고 있습니다.
 

강화 동검도 채플 (사진=한상봉)
강화 동검도 채플 (사진=한상봉)

한편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창립한 ‘가톨릭일꾼운동’(Catholic-worker-Movement) 차원에서 웹진과 종이신문을 발행하면서 많이 배우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가장 익숙한 배를 타고 원하던 항구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항해에 어려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요. 때로는 좌표가 흔들리고, 항해술도 서툴고, 필요한 자재를 구하지 못해 안달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은 역시 사람관계일 텐데, 때로 나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쑤시고 아프기도 했던 거지요. 사랑이란 사랑하면서 알게 되는 소중한 감정이고, 복음이 전하는 참 사랑은 이런 감정마저 접고 넘어가는 사랑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속 좁은 내 사랑을 압도할 때만 주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동안 코로나(COVID-19)의 충격으로 동무/동지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못해 매년 해 오던 세미나와 월례미사 등을 쉬었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그리움이 쌓이는 것은 나만의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그리우면 만나고, 만나서 더 깊은 차원에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2023년에는 오랫만에 가톨릭일꾼세미나를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강화도 동검도 채플에서 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례미사를 부활하는 방법도 생각해 봅니다. 미사를 통해 마음에 품고 존경하던 영적 스승들을 기억하고 통공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2023년부터는 어떤 형식으로든 ‘가톨릭일꾼의 집’을 마련하는 데 마음을 쓰려고 합니다.

 

빈곤철폐의 날 행사에서 (사=한상봉)
빈곤철폐의 날 행사에서 (사진=한상봉)

지난 가을에는 아랫마을 홈리스행동에서 하는 야학에서 교사로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주거권, 건강권, 존엄사를 주제로 한 ‘권리와 토론’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홈리스들과 청년 활동가들의 삶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말만 교사이고, 90퍼센트는 학생처럼 많은 걸 배웠습니다. 특히 젊은 활동가들이 일하는 방식이 너무 신선해서, 내맘대로 “아나키스트적인데...”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유쾌하지만 적절한 거리 유지, 그리고 사심 없는 투신을 보면서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세실 앤드류스, 한빛 비즈, 2013)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공동체에서 ‘잘난 척’은 금물입니다.

“대화를 하려면 자신의 우월성과 총명함을 대놓고 드러내는 곳보다 상대를 화나게 만드는 일은 없다. 그 순간 사람들은 겉으로는 즐거워 보이지만 그들의 시기심은 말하는 이의 심장에 저주를 내린다.”

홈리스 야학에서 ‘교사는 늘 가르치는 사람들이고,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교사들은 홈리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사실상 교사와 학생이 늘 역전되는 곳이 홈리스 야학입니다. 수업시간엔 그들이 하는 말 한 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모두 그 자리에서 노트북으로 받아 적습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한 곳,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들의 운동을 진화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유튜브’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주로 동영상 강의를 위해서 유튜브를 활용해 왔습니다. 요즘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젊은 세대는 인스타그램, 중장년층은 페이스북을 주로 활용한다고 해요. 유튜브의 경우에는 세대를 가릴 것 없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 많은 정보 제공과 뉴스, 놀이와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상봉TV-가톨릭일꾼> 채널을 통해 유튜브 동영상 강의를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강의를 넘어서는 의사소통 창구로 유튜브 활용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한 해 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새해에는 하느님 축복 가운데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2년 겨울호에 실린 글을 조금 다듬은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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