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자는 모두가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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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자는 모두가 성인이다
  • 최태선
  • 승인 2022.12.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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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따라서 가톨릭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톨릭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물론 내가 가톨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면 가톨릭 역시 다른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오늘도 그런 말을 하나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가톨릭의 성인제도는 하루 빨리 폐지해야 할 비복음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성도가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면 삶이 달라져야 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일도, 새 사람을 입는 일도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인은 성인이 되어야 한다.

사실 성인이나 성물숭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이다. 그것이 교묘한 언변으로 교리화 되고 어느 순간 그것은 마치 겸손한 인간의 신앙이해처럼 되었다.

그 시작 역시 신앙의 자유와 그리스도교의 국교화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게 되자 제자도가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엄격했다. 오늘날처럼 교리교육을 받아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 그것이 그리스도인 지원자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했고, 반사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행동으로 그 진위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하고 판단하였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지만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생명을 담보로 하고 혈연은 물론 생계의 수단이 되는 모든 관계의 단절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 지원자가 될 수 없었고, 그리스도인 지원자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인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체화해야 했다.

이런 엄격한 과정을 거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달리 성인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성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해야 했던 것은 이런 과정이 없이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은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 성서가 말하는 예수의 제자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는 그 간극을 없애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하지만 권력이 된 그리스도교는 자신들의 그러한 약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를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과 현실의 그리스도인 사이의 간극을 인간적인 사유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제도가 바로 성인제도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나는 시성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아무리 객관적인 자료와 심사를 거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인간의 사고와 판단으로 성인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기도를 거친다고 말할 수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하느님과 달리 중심을 볼 수 없다!!

“교회는, 우리가 경배하는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 안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문화를 역행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았다. 우리의 삶과 증거는 반드시 문화적 행태를 취한다.”(알렌 크라이더, <평화교회> 고영목 김경중 옮김, 대장간, p.55)

이 말은 매우 유의미하다. 교회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증거가 문화적 행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문화가 되어야 하는가.

“<호교론> 초반에서 유스티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방식을 로마 제국의 비그리스도인 거주자들의 그것에 맞서는 일종의 반문화적인 아비투스로 제시한다. 유스티누스는 로마인들의 삶을 다른 네 개의 주된 분야에서 나타나는 중독성 관습이라는 특징을 지닌 '비자유(unfreedom)의 아비투스'로 여긴다. 간음에 의해 훼손된 성적 윤리, 마술의 덫에 걸린 사교, 경쟁적인 물욕에 의해 왜곡된 부와 소유, 다른 관습에 대한 증오와 다른 종족에 대한 살해로 가득 찬 폭력과 혐오, 유스티아누스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중요한 분야들에서 분투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들 모두가 유혹적이며 강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열심히 그런 버릇을 버리려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그것들이, 유스티아누스가 보기에는 마귀의 능력과 조작에 대한 표현들이기 때문이었다.”(앨런 크라이더,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 감광남 옮김, Ivp, p.241-242)

“그러나 유스티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아비투스 곧 새로운 정상 상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낡은 아비투스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주장한다. ‘설득당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낡은 아비투스를 포기하고 그 네 개의 분야 각각에서 대안적이고 생명을 제공하는 아비투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대안적 아비투스는 성적 절제, 마술이 아닌 하느님을 향한 헌신, 부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공동의 기금 안에 넣고 곤경에 처한 모든 이들과 나누는 것’ 폭력과 혐오가 아니라 ‘우리의 적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를 부당하게 미워하는 자들을 설득하려 노력하는 것’ 등이었다. 유스티누스는 이 새로운 아비투스가 ‘그분의 말씀이 곧 능력이었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위의 책, p.242)

위 내용에서 대조되고 있는 '비자유(unfreedom)의 아비투스'와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아비투스를 비교해보라. 그리스도교가 창출하는 문화는 세상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출, 즉 대안적인 문화이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을 해보라. 성인제도는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가. 나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성서에서 말하지 않는 성인, 다시 말해 세상이 말하는 성인의 개념을 차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성서의 그리스도인과 현실의 그리스도인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성인의 개념을 세상으로부터 차용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간극이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성인제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허문다. 하나님 나라에는 그 어떤 영웅도 위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매와 형제로서 동등하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명실상부하게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성인제도는 권력이 낳은 그리스도교의 사생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는 예수의 제자 됨을 되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발데시안이나 얀 후스의 후예들이나 아나뱁티스트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도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건설한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달리 성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성도일 뿐 아니라 새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다. 성인제도는 바로 이 두 누룩에 해당한다. 성인제도는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이지 겸손한 신앙 이해가 아니다.

예수의 제자는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예수의 제자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빠졌던 ‘자기 의’에 빠질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인 쓸모없는 종이 되어 헤롯의 누룩에도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는 모두가 성인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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