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 아니 복음을 살아야
상태바
교회개혁, 아니 복음을 살아야
  • 최태선
  • 승인 2022.12.05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그리스도인들을 식별할 때 그들이 속한 나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그들이 속해 있는 문화로 다른 사람과 구분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도시를 이루며 살지 않는다. 그들은 특별한 행태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살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그리스에 살든지 그 외의 다른 도시에 살든지, 각각 자신들에 맞는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매일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따라 산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법을 탁월하게 지키며 특출한 모습으로 인정받으며 산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살지만, 외국인처럼 살아간다.” -디오게네스에게 보내는 편지

이 모습이 초기 그리스도교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이 당시 종교박람회와 같았던 로마에서 미움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습과 가르치는 내용이 유대교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했지만 그들에게는 민족이라는 바운더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말의 의미대로 그들은 민족적인 장벽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다른 종교를 거부하는 그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미움과 박해를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소수였던 그리스도교가 주류가 되었다. 로마의 국교가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승리 이전에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망각하게 만드는 첩경이었다. 그리스도교가 주류이며 대세인 종교가 되자 그리스도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의 특성을 정의하는 종교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이해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리스도교가 주류 종교가 되면서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어쩌면 복음이란 최소한 소수의 종교 혹은 박해를 전제로 해야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복음의 내용을 보면 복음은 언제나 소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을 필두로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등등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라. 이들은 주류가 아니다. 이들은 소수이고 팔복이 예언하고 있는 대로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디오게네스의 편지에 나오는 외국인처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팔복의 예언처럼 되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오늘날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란 영원히 개혁의 대상으로서의 교회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는 영원한 개혁의 대상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불완전한 교회 자체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교회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회를 개혁하고 또 개혁해도 교회는 완벽해질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개혁이 아니라 복음에 매진해야 한다. 복음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그들을 외국인처럼 만들었다. 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같은 사회의 사람들에게 외국인처럼 인식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진정성을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개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교회는 잘못된 모습을 바꾸어나갈 것이 아니라 바른 모습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물론 바른 모습이란 복음대로 사는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꾸어나가는 것과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려는 것은 다르다.

성서는 잘못된 그리스도인들을 다루는 방법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치리다. 잘못된 그리스도인들은 말로 교훈하고, 증인들을 불러 교훈한 후에도 듣지 않는다면 그들을 교회에서 추방해야 한다.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교회가 잘못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렇게 잘못된 그리스도인들을 치리할 수 없거나 치리하지 않아 잘못된 교회를 보고 있다. 잘못된 사람들을 그대로 놓아둔 채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라. 루터의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과 무관하지 않았고, 실제로 가톨릭의 반동종교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촉매의 역할을 했지만 가톨릭의 잘못된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지 못했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말하는 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혁을 말하지만 개혁의 대상이 되도록 만든 당사자들을 추방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교회의 개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외국인들의 사회로서의 교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소환되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교회력의 새해를 맞으면서 책을 구입했다. 그 책들 대부분이 초기교회와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책도 구입했다. 역사의 관점이 다양하기에 다양함까지 조망할 수 있는 책들을 선택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난 이천여 년 동안 그리스도교를 견인하고 이끌었던 그리스도교의 케케묵은 먼지들을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먼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떨어지기 이전의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걸림돌은 현존하는 그리스도교와 교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훗날 기독교가 된 예수 운동은 초창기부터 지역과 민족의 경계 없이, 사회 계층과 성별의 구분 없이 대중에게 가르침을 베풀었으며, 이렇게 신자가 된 이들은 예수 운동에 입회한 순간부터 특정한 신념과 행동에 헌신해야 해야 했다. 이 예수 운동은 비록 처음 몇 세기 동안은 작고 보잘것없었을지 모르나 지역을 초월해 꾸준히 성장하며 그 독특함으로 화제의 중심에 놓였고, 비기독교인들이 수시로 표출하는 반감에서 드러나듯이 외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래리 허타도,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이주만 옮김, 이와우 p.247)

이 짧은 내용을 통해서도 우리는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 운동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형교회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차별금지법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는 다시 공고하게 벽을 쌓았다. 그런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위 내용에서 ‘특정한 신념과 행동’이라고 표현한, 복음대로, 혹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삶을 무시하고 있다. 아무리 교회가 커지고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도 하느님의 정의가 드러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에 표출하는 반감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받아야 했던 반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사회로부터 받는 반감은 그야말로 파렴치하고 창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은 외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 반향은 결국 그리스도교의 증가의 원인이 되었다.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까지 매료시켰다. 예수의 가르침은 그와 같은 힘이 있었다. 복음은 폭발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우리 시대에 되살려내자는 것이고, 복음의 폭발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의 초점이 여기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명실상부한(오로지 그리스도를 좇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많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다면 하느님 나라인 교회가 멀지 않을 것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