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김장, 가난한 이웃들과 나눌 일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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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김장, 가난한 이웃들과 나눌 일만 남아
  • 서영남
  • 승인 2022.12.0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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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 김장은 항상 추운 날입니다. 올해는 한파경보가 내린 12월 초에 김장을 합니다. 추운 날 하는 김장은 힘들어도 훨씬 더 맛있을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첫해인 2003년도에는 갑자기 늘어난 우리 손님들을 대접할 쌀을 구하느라 쩔쩔 매었습니다. 김장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손님들께 다음 해 늦은 봄까지 맛있는 김장김치를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 자유공원 근처에 있는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수도원에 위문공연을 온 자매님이 우리 손님들 대접하라며 성탄선물로 쇠갈비를 반짝이나 주셨습니다. 택시비를 아끼려고 그냥 둘러매고 오다가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탔습니다. 국수집 앞까지 태워다 주신 기사님께서 허름한 민들레국수집을 보시곤 어떤 곳인지 물어봅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곳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차비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너 시간 후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강화도에서 음식점을 하시는 형님이 좋은 일로 식당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올해 담은 김장김치를 전부 국수집에 주겠다는 것입니다. 곧바로 트럭을 빌려서 강화도에 갔습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순무김치까지 한 가득 실어왔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의 김장은 경상북도 봉화 산골에 사는 바오로 형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민들레 식구 서넛이 같이 내려가서 천오백 포기에서 이천 포기 정도의 김장을 했습니다. 유기농 배추를 밭에 가서 직접 뽑았습니다. 밤늦게까지 다듬고 절였습니다. 새벽부터 절인 배추를 맑은 냇물에 헹궜습니다. 봉화성당 수녀님과 자매님들이 승합차를 타고 오송골 깊은 산골까지 오셔서 김치를 버무려주셨습니다. 저녁 무렵에야 그 많던 김장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토굴의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겨져서 저장되었습니다. 다음해 여름까지 매달 두 번씩 청송교도소를 다녀오는 길에 봉화 산골에 들려 김치를 싣고 오곤 했습니다. 

“김치가 제일 맛있어요!”

손님들이 김치가 맛있다고 기뻐합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네 번째 해부터 지금까지는 그냥 저절로 김장을 담그게 되었습니다. 넷째 해에는 봉화에서 김장을 해서 가져오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아예 김장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추가 얼마나 필요한지 물어봅니다. 200포기 정도면 좋겠다고 했는데 320포기를 국수집 앞에 내려놓고 가십니다. 또 어떤 분은 200포기와 무 200개를 내려놓고 가십니다. 어떤 고마운 분은 필요한 고춧가루와 마늘과 생강을 가져다줍니다. 또 어떤 분은 까나리 액젓과 소금을 가져다주십니다. 화수시장의 생선할머니는 싱싱한 새우를 두 상자나 그냥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들레 식구들이 배추 절이는 일을 거들어줍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지나가시다가 거들어 주십니다.  어느새 그 많은 배추를 다 절여 놓았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김장 쓰레기를 치우는 것을 거들어 줍니다. 김장하는 날은 비가 내립니다.  노련한 아가다 자매님이 어느 틈에 천막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동네의 새마을부녀회들도 비옷을 입고 절인 배추를 씻고, 나르고, 양념을 다듬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오늘 김장은 배추 520포기, 무 300개, 쪽파 20단, 갓 20단, 대파 15단입니다.  국수집 주변의 민들레의 집 식구들도 김장을 거들어주기 위해 모였습니다. 식사하러 오셨던 우리 VIP 손님 몇 분도 쪽파 다듬는 것을 거들어주십니다. 생선 노점상을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싱싱한 대구를 열 마리나 주시면서 매운탕을 끓여 김장하는 분들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동네 약방 어르신께서는 뜨끈한 쌍화탕을 직접 오셔서 나눠주십니다.  민들레국수집의 김장이 아니라 동네 김장을 하는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김장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200포기를 담아도 저장해 둘 곳이 모자랄 텐데 520포기나 담았으니 김치가 넘쳐납니다. 김장을 반으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민들레국수집에서 VIP 손님이 먹을 김치입니다. 하나는 김장을 못 담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이 가득 담겨 버무려진 맛있는 김치가 차곡차곡 창고에 저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장도 못한 가정에 나눠 줄 김치도 비닐 봉투에 잘 담아 나눠 드렸습니다. 서른 가구도 넘게 가져다드렸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에게도 필요한 만큼씩 나눠드렸습니다. 그 많던 김치가 자기 있을 자리로 잘 나뉘어졌습니다.

올해는 아주 조금만 김장을 하려고 했습니다. 100포기만 담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마누엘 수녀님의 소개로 고마운 분이 배추 500포기 무 500개를 보내주셨습니다. 장봉도에 계신 분이 트럭에 배추 400포기 무 100개를 싣고 오셨습니다. 또 직접 농사지은 배추 40포기와 무를 싣고 오신 분이 계십니다. 동네에 배추와 무를 나눴습니다. 남은 김장거리는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목요일과 금요일에 김장을 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에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몇 분이 오셔서 김장을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김장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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