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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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겨울나무
  • 장진희
  • 승인 2022.11.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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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12 - 진도에서:

나는 작은 배 같다는 생각을 가끔 했습니다. 많은 것을 싣고서는 인생을 다 건널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금은보화, 온갖 소중한 것을 바다에 다 던져버리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싣지 않으면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았습니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아플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먹고 자고 숨 쉬는 것 말고는 재미난 것, 뜻 있는 것, 귀한 것 다 버리고 맨몸으로 웅크리고 버텨야 도로 살아나곤 했습니다.

시골에 살다 보면 사람만 이웃이 아닙니다. 매일 그 기운을 같이 하는 주위의 풀과 나무와 바람...이 모두 이웃입니다. 사람 이웃이 희로애락을 겪을 때도 같이 울고 웃고 하게 되는데 겨울이 닥쳐 주위의 풀과 나무들이 꽃과 열매와 이파리를 다 떨어뜨리면, 나도 따라 마음이 허당을 짚은 듯 훵 하니 비어갑니다.

요새 사람들이 잡풀이라고 제초제를 팍팍 뿌려 죽이는 명아주는 봄에 나물을 무쳐먹던 그 여린 대궁이 단 몇 달 사이에 키가 한 길까지 자라 노인 한 몸이 지탱할 지팡이가 될 만큼 단단해집니다. 쑥이랑 다른 모든 풀들도 봄을 지나 여름에서 가을까지 그 티끌만한 씨앗 한 알이 자라 백 배, 천 배의 새끼가 열리도록 살았습니다.

그 몇 달 사이 나무는 그렇게도 많은 이파리와 꽃과 열매를 만들고는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나무는 이제 다정다감했던, 애지중지했던 그 고운 이파리, 알알이 달린 새끼들 다 놓아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몸이 되어 홀로 아래로 아래로, 속으로 속으로, 흙으로, 뿌리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땅 속에서 하늘과 소통하며 겨울을 날 것입니다. 해님은 나무가 쉬도록 비껴서 비춰 줍니다.

하늘 아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 기진하여 달콤한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데, 그 기운이 바람 타고 솔솔 내 뼛속에 스며드는데, 가을 햇살 살살마다 그 소식이 꽂혀 있는데 어찌 사람이라고 여름으로 성성하게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풀이 죽으니 나도 풀죽는 것입니다.

(그 자연스러운 일을...... ‘가을을 탄다’ 하는 사람들은 유난히 그런 기운을 잘 느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가을을 타면 도시 사람들은 제 식대로 ‘우울증’이라 이름 붙입니다. 모든 것을 인력(人力)으로 할 수 있다 하고, 천지간에 가득한 기운조차도 느끼지 말아야 할 만큼 무쇠철판 가슴이 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봄이 오나 겨울이 오나 똑같이 출근해서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 어거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예순 번의 겨울을 맞으면서, 그 기운이 늘 봄으로 넘쳐났던 어린 시절 말고는 언제부터인가 시월이 지나면 특별히 아픈 데도 없이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온갖 세상사가, 심지어 내 코앞에 닥친 일조차 남의 일처럼 여겨지고 몸과 마음이 저절로 틀어박히고 싶어 합니다. 하던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되도록 혼자 있으려 합니다. 밖으로 향하던 기운은 이제 안으로, 뿌리로 몽글어 넣어야 합니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자꾸 나무가 생각납니다. 흙 속 깊이 들어가 있는 나무뿌리가 자꾸 눈에 보입니다. 내 혼도 거기 나무뿌리 어디쯤에 있는 듯합니다. 급기야 내가 한 그루 겨울나무 같습니다.

알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면 여름나무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훨씬 나무 본래 모습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도 이렇듯 안으로 파고들 때가 더 사람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부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촉수를 거두어들이고 겨울 한철, 몸과 마음에 꼭꼭 숨어 있던 하늘에 들어앉아 있노라면 나무처럼 여름에는 무성해질 것도 같습니다.

춥기로 하자면 소한, 대한 지나는 1월이 훨씬 추운데 내 몸은 11월, 12월이 가장 춥다 합니다. 특히 동지까지가 가장 힘든데, 우리 조상들이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동지가 지나면 이제 희망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겉으로 느끼는 온도에 따라 12월부터 2월까지를 겨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24절기 중 입동은 11월 초순입니다. 그때부터 겨울이라 하는 것이 나로서는 훨씬 맞습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김장을 할 때 설 전에 먹을 김치와 설 지나고 먹을 것을 따로 담갔습니다. 설 다음부터는 봄이기 때문에 설 지나고 먹을 김치는 더 짜게 담가야 시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춘이 보통 설 무렵인 것도 이치에 딱 들어맞습니다.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울이 다 갔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꽃이며 이파리는 삼월이 지나서야 피워내겠지만, 꽃이며 이파리가 하루아침에 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니, 천지운행의 때를 알고 봄기운을 감지한 나무는 지금쯤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무는 다시 그 기운을 뿌리에서부터 가지로 올리고 있습니다. 양지쪽 매화나무 꽃몽우리는 연초록 받침 사이로 하얀 속살을 밀어내고 있고, 단풍나무 자태는 가지가지 붉은 연지 어우러져 파스텔 물감처럼 부드러운 사랑으로 번졌습니다.

경칩에 깨어나는 개구리도 이제 곧 몸을 꼼지락거릴 준비를 할 것이고 쑥도 명아주도 기지개를 켜고 있겠지요.

봄.

봄입니다.

우리도 따라 봄이 될 것입니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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