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호 할아버지의 상여소리
상태바
종호 할아버지의 상여소리
  • 장진희
  • 승인 2022.11.15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난이 살려낸 것들 11 - 진도에서: 내 눈을 보세요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연을 잘 만드는 종호 할아버지는 주름살 자글자글한 얼굴이 웃으면 군더더기 살 하나 안 붙어 있는 탈바가지같이 됩니다.

차든 경운기든 오고가는 두 대가 마주 지나갈 수 없는 외길에서 앞서가는 종호 할아버지 경운기를 만나면 바쁜 마음은 한 숨 내려놓고 아예 마음조차 느긋하게 비켜 세워 놓아야 합니다. 아무리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라도 그렇게 천천히 경운기를 모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천천히 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길폭이 조금 넓어져 차를 먼저 보낼 공간을 만들 수 있을 만한 데에 이르러서도 할아버지는 그냥 가시던 대로 가십니다. 성질 급한 젊은 사람들이 경음기를 "빵! 빵!" 울려대도 못 듣는 것인지, 안 듣는 것인지 흔들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마른 요샛것들이라도 할아버지의 경운기 모는 모습을 보며 '동중정(動中靜)'의 예술을 감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을 수 없게끔 마음공부를 단단히 시킵니다.

할아버지는 비슷한 나이의 할머니와 함께 백 살을 바라보는 노모를 모시고 삽니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종호 할아버지는 허리가 굽고 역시 주름살이 쭈글쭈글한 할머니를 여전히 '각시'라고 부릅니다.

언젠가 종호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분이 미역을 매기 위해 우리집 마당에 경운기를 세워놓고 갱번(바닷가)에 다녀오셨습니다. 아직 마을 분들 얼굴을 다 익히지 못해서 같이 온 할머니가 종호 할아버지네 할머니인 줄 알고 실수를 했더니 할아버지 말이 이렇습니다.

"아녀어! 우리 각시는 체나(훨씬) 이삐!"
"아! 예에. 할머니가 얼마나 이쁘시길래 이 할머니보다 더 이쁘실까요?"
"아, 이 함씨는 텍도 없제. 울 각시는 체나 이삐당께!"
"아이고 차암, 이 영감탱이가! 듣는 함씨 기분 나쁘게 인역 함씨만 이삐닥 하네잉!"
"아, 인역이 기분 나쁘등가 말등가 하이간에 울 각시맨치로 이쁜 각시는 없당께!"
"염병 허요! 하이고오, 이거 영감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것나. 아따 누삼네는 조오컷다아! 팔십이 다 돼도 질로 이삐닥 해주는 영감도 있고."

영감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가 서러워하거나 말거나 종호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울 각시'가 최고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북향의 비탈밭에서 한여름에 고추를 따다가 그늘에 앉아 꿀맛 같은 술참(새참)을 오순도순 나눠먹는 영감 할멈 그림이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시키는지 할머니는 곱게 모아 붙인 손으로 이빨 빠진 입을 가리며 '호! 호!' 하고 웃습니다. 그렇게 웃는 '울 각시'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표정이 '행복' 그 자체입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 마음도 잠깐 천국에 듭니다.

할아버지는 소리도 썩 잘하십니다. 갱번에 오실 때나 뒷산에 오실 때면 우리 집 마루에 놓여 있는 장구를 보고는 흥이 도는지 눈이 먼저 웃으시며 장구를 끌어다 한바탕 소리를 하십니다. 이제 나이 들어 기운이 딸리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또 익을 대로 익은 소리 맛이 일품입니다. 장구를 다루는 솜씨가 젊어서는 한 가락 하셨겠습니다.

"굿거리장단은 이라고 쳐야 맛이제!"

가락을 놀면서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아주 천천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고, 아니 '일추임새 이명창'이라고 "조오타!" 소리만 잘하면 할아버지는 흥에 겨워 한정 없이 소리를 하십니다. 동네에서도 흥과 신명이 사라져가는 요즘인데 '젊은 각시'가(? 할아버지에 비하면 한참 젊은 것이 맞습니다) 추임새를 넣어가며 그렇게도 애지중지 소리를 들어주니, 오랜만에 할아버지는 신명이 도는가 봅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할아버지 소리를 아까워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우리 집에 와서 장구를 잡고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나와 할아버지는 무슨 연인이라도 되는 양 반깁니다.

나는 할아버지 하는 말씀을 귀담아 두었다가 놓치는 법이 없이 챙기게 되었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내가 하는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마땅한 돈지갑이 없어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는 안 잊고 있다가 지갑이 생기면 갖다 드리고, 집안에 들어온 지네를 집게로 잡아 소주가 반쯤 찬 소주병에 담가놓았다가 허리 아픈 '울 각시' 드리라고 챙겨드립니다.

또 할아버지는 내가 조개를 캐러 가면 열 일 제쳐두고 갯벌로 따라 들어와 조개가 잘 잡히는 목을 알려주며 함께 조개를 잡습니다. 가을이면 할아버지 집 마당에 붉게 주렁주렁 익어가는 홍시도 챙겨서 감나무가 아직 덜 자란 우리 집에 갖다 줍니다. 초상집에서 할아버지와 만나면 참 다정하게도 술을 따르며 권커니 받거니 합니다. 할아버지와 나는 참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가까운 옆 마을에 초상이 났습니다. 호상입니다. 아침이 되어 동구에서 상여가 나갑니다. 이제 상여소리 하는 사람은 다 돌아가시고 젊은 사람들은 상여소리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이장은 상여 위에 스피커를 매달고 녹음기에 상여소리 테이프를 넣어 틀어놓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상주가 교회에 다닌다고 상여소리 대신 교회 찬송가가 울려 퍼지더니 찬송가가 아니라 상여소리라도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니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발걸음에도 안 맞는 늘어진 찬송가 박자에 맞추어 상여를 메자니 상두꾼들 어깨가 더 무거워 상두꾼들 입에서 "넨장!" 소리가 절로 나왔던 것입니다.

문상객 중에서도 상여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종호 할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종호 아제! 생여소리 쪼깐 해주쑈."
"아이고, 인자 나는 기운이 없어 소리 못 해."
"기운 없다는 양반이 그래, 밤새 윷은 잘만 놉디다!"
"윷이사 기운으로 논당가. 재미로 놀제."
"아이, 저 소리가 뭣이요?! 스피커 빽빽대는 소리 듣고 망자가 저승길이나 제대로 가것소? 그래도 사람 훈짐 있는 소리를 듣고 가야제라우~"
"아따, 못 한당께. 윷 노니라고 눈을 못 붙였드니 기운이 한나도 없어서 못 하것네."

상여소리를 하라느니, 기운 없어 못 하겠다느니 한참 실랑이가 이어집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상여소리로 망자를 보내는 일이 참 심란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훈수를 듭니다.

"할아버지! 그러지 마시고 소리 좀 해주셔요! 망자가 친한 친구람서요. 섭섭해서 어디 좋은 디로 가시것어요?"
"긍께 그건 근디......"
"아이, 그랑께 기운 내서 쪼깐 해부쑈."

사람들 성화에 못 이겨 드디어 종호 할아버지가 상두꾼 옆에 섭니다.

"애~~애~~애애애애야~ 애애~애~~ 애애애야애~~"

종호 할아버지의 상여소리가 시작됩니다. 좋습니다. 제 아무리 잘하는 소리라 해도 녹음 소리는 생음악만 못합니다. 상두꾼들 어깨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상여가 잘 나갑니다. 상여 뒤를 따릅니다. 뒤따르면서 종호 할아버지를 지켜봅니다.

하던 가락이 있어서 상여소리는 잘도 넘어갑니다. 그래도 힘이 들어 그만 두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던 눈이 뒤돌아보는 종호 할아버지 눈과 마주칩니다. 걱정하는 눈빛을 얼른 거두고 응원의 눈빛을 보냅니다. 그 눈빛을 알아챈 종호 할아버지가 한번 씨익 웃습니다. 상여소리에 좀더 힘이 실립니다.

바닷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상여소리 따라 꽃상여가 흔들립니다. 가다가다 상여소리에 힘이 빠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종호 할아버지 얼굴이 '더는 못 하겠다'는 표정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돌아보는 종호 할아버지 눈과 마주칩니다. 검지와 중지를 들어 'V'자를 만들어 흔들어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이쿠! 안되겠구나' 싶은 표정이 됩니다. 도로 상여소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에고! 그러게 기운 좀 애껴 두실 것이지, 어쩌자고 밤새 윷은 놀으셔 가지고.'

원망도 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망자를 테이프 스피커 상여소리로 보내드릴 수는 없잖아요! 힘 내십시오, 힘!' 속으로 힘을 팍팍 줍니다.

종호 할아버지는 가다가다 뒤를 돌아보며 할아버지를 지켜보고 있는 눈을 찾습니다. 그럴 때마다 눈에 힘을 팍팍 주며 웃습니다. 종호 할아버지는 도로 힘이 납니다. 힘이 날 뿐만 아니라 기운이 새록새록 살아나고 흥도 나고 신도 납니다. 상여소리는 무사히 장지까지 잘 이어졌습니다. 종호 할아버지에게 눈으로 환하고 크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할아버지 벌건 얼굴도 환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막 옷을 갈아 입고 있는데 "딸딸딸따알~" 경운기 소리가 납니다. 밖에 나가 보니 종호 할아버지 경운기입니다. 기운이 없어서 소리를 못 하시겠다는 어른이 어느새 기운이 솟아났는지, 경운기 짐칸에 마을 어르신 두 분을 태우고 막걸리 두어 통을 넣은 까만 비닐봉다리를 끈으로 묶어 달고 오셨습니다. 여흥을 어쩌지 못해 뒤풀이를 하러 오신 것입니다.

초상집 뒤풀이가 우리집에서 제대로 벌어졌습니다.
자아! 보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답디다만, 마음을 보내는 눈빛은 팔순 노인 기운도 펄펄 살아나게 한답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기운을 먹어야 살잖아요?

자아! 우리 기운을 차리게요.
우리 서로 이렇게 말해요.

"내 눈을 보세요!"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