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아랫마을, 이곳에 사람이 있네
상태바
편안한 아랫마을, 이곳에 사람이 있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11.01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봉 칼럼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자주 보게 되는 인터넷신문이 있습니다. <비마이너>, 우리사회 소수자 가운데서도 약자로 분류할 수 있는 홈리스들을 돕고 연대하려는 홈리스행동에서 야학은 빈곤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아무리 진보언론을 표방한다고 해도, 장애인들과 노숙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들은 ‘어쩔 수 없어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불편한 동행일 뿐입니다. 그들의 세계로 진입하려면 <비마이너>의 기사들을 거쳐야 할 듯합니다.

<비마이너>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노부부가 사망하면서 장애인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고, 그 현장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10년에 겨우 만들어진 매체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비마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억압받는 사람이 싸우고 저항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현실은 변화할 힘을 얻습니다. 비마이너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 자신의 몫을 빼앗긴 사람들이 싸우는 그 현장에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비마이너에서는 가장 중요하며, 반드시 세상에 전해져야 할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 머리에 기름을 부을까

요즘 읽은 복음서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어느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었다는 기록입니다.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마르14,3; 마태 26,70)고 합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는 이야기는 이 장면에서만 나옵니다. ‘기름부음을 받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가 ‘그리스도’(Christos)라면, 예수님을 임금으로, 그리스도로 처음 인정한 사람은 이 여인일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입으로 그분을 칭송했지만, 이 여인은 몸으로 그분을 섬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미천한 여종’이라던 여성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진입해 들어왔듯이, 예수님 생애의 막바지에 그분을 ‘그리스도’로 현양시킨 사람은 복음서마저 이름조차 올릴 수 없었던 ‘어떤’ 여인입니다.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고, 그리스도에게 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싶습니다. 그리스도는 사회-정치-종교적 권위를 지닌 자들에게 인정받는 받는 것보다, 차라리 죄인과 창녀, 세리와 아이들과 병자들에게 인정받을 때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을 차지하시면,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두고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태 26,13)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가난한 이들을 두둔하고 품어 안을 것입니다.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해오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등 5개의 반(反)빈곤운동 단체들이 함께 서울 원효로에 얻어 살고 있던 ‘아랫마을’이 건물주의 계약해지 통보로 최근에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이들을 품었지만, 건물주는 이런 단체들을 품을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결국 어렵사리 청파동에서 다른 ‘아랫마을’ 집을 얻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루살렘의 슬럼가였던 하부도시(down-city)처럼, 아랫마을은 태어날 때부터 거처를 얻지 못해 짐승의 거처에서 태어나, 공생활 내내 노숙인처럼 유랑했던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분은 노예처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모든 아랫마을 사람들을 축복했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불편해도 사람이 좋아

노숙인들에게 주거 문제는 가장 절실한 문제입니다. 겨울엔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시에서 주거지원을 하고 있는 쪽방과 고시원은 겨울엔 난방이 안 되고 여름엔 너무 더워서 차라리 노숙하는 게 낫습니다. 창문도 없어서 바람도 햇빛도 드나들지 못하는 폐쇄지옥입니다. 모기와 빈대가 서식하는 방에서 얇은 판자로 막아놓은 벽 너머에서 들리는 잦은 기침소리가 잠을 설치게 합니다. 그런데도 깔끔한 매입임대주택보다 쪽방촌을 더 좋하는 홈리스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말이 새삼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비마이너>에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살다가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갔던 홈리스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이는 2015년에 서울 동자동 9-20 쪽방촌에 살다가 보수공사 때문에 퇴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반발하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와 쪽방상담소의 설득으로 매입임대주택으로 들어갔습니다. “반 토막 난 집에 살다가 막상 깨끗한 집을 보니 모두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쪽방의 두 배는 되는 원룸에, 화장실과 싱크대도 방 안에 있어 편리해 보였습니다.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8만 원, 어디 가서 이 가격으로는 못 구할 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20년 동안 거주가 보장된다는 점이 안심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사 이튿날부터 바로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쳤다고 합니다. 임대주택은 사내 외곽에 있어서 예전처럼 무료급식을 받으려면 1시간가량 이동해서 예전에 살던 동자동까지 가야합니다. 그곳에서 마을밥상 식도락을 이용하거나 인근의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병원도 너무 멀리 있습니다. 서울의료원은 한 달에 한 번, 은평 정신병원도 한 달에 한 번, 영등포 요셉의원은 일주일에 한두 번을 방문해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연고 없는 동네에서 섬처럼 고립된 생활을 하자니 너무 외로웠답니다. 그곳에선 문만 닫으면 누가 죽어나가도 모릅니다. 동자동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는 임대주택에 살다가 죽고서 20일이 지나서야 알려졌습니다.

결국 그이는 입주 두 달 만에 50만 원의 보증금 중 반을 포기하고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쪽방촌은 여전히 바퀴벌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여전히 수급비로 꾸리는 삶은 팍팍하지만 마음만은 편안하다 했습니다. “이웃을 들여다보고, 내가 어려운 순간에 이웃들이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쪽방촌에서도 흙이 있는 곳에선 꽃을 키우고 채소를 가꿉니다. 빈손 부비면서 담배 나눠 피우고, 때로 싸움질도 하지만, 눈 마주칠 사람들이 거기 있어 편안합니다. 그들 사이에서 나도 말 한 마디 주고받으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위도 장마도 태풍도 물러나니, 그들도 이제 조금 사는 게 나아질 것입니다.

 

* 이 글은 <경향잡지> 2022년 10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