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보다 복음을 행하는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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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보다 복음을 행하는 기쁨을
  • 최태선
  • 승인 2022.11.0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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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탈럼
사진출처=mywed.com
사진출처=mywed.com

작은 아이는 미혼이다. 만나는 남자가 있다. 그런데 그 집은 믿지 않는 집이며 제사도 드린다. 그리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보면 결혼을 생각하는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느냐 하는 것이다.

대개는 남자가 거짓 약속을 한다. 믿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나가겠다는 약속을 여자의 부모에게 한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에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에 나가는 것이 믿는 것인가. 아니다. 오늘날 교회는 믿으며 나가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곳이다. 하물며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나간다고 믿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는 그런 헛된 약속을 바라지 않는다. 며칠 전 딸에게 복음을 전하는 오직 유일한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복음을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좋아서 스스로 믿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복음에 대해 절대로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 그 방법의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모든 활동에서 ‘주님의 교훈을 말하고 행하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명령과 소망을 결코 잃어버리지 말 것을 가르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놓았다. ‘살인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뺨을 때리는 이에게 다른 쪽 뺨도 내주어라.... 구원의 길의 엄중함을 인내하며 견뎌야 한다.’ 때로는 이런 접근법은 순교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순교자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말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자기들을 처형하는 자들에게 인내를 예시하며, 주님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초기 그리도교의 지도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한 말이다. 그가 한 말에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서술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활동에서 “주님의 교훈을 말하고 행하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선교의 핵심이다. 단순히 주님의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기쁨이 넘쳐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의 수단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행하는 기쁨이다. 물론 여기에도 얼마든지 위선이 존재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그들의 기쁨의 진정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박해였다.

그렇다면 박해가 사라진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행하는 기쁨의 진정성을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가난은 로마 시대의 박해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이 전능함을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체제에서 가난을 실천하고 그 가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일은 이 시대의 순교라고 생각한다.

아내와 딸이 여행을 떠났다. 혼자서 며칠을 보내고 있다. 어제 저녁 나는 밖으로 나갔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 노숙자 선생님이 계시는 자리도 가보았고, 폐지를 모으시는 할머니가 계시는 마트 뒤도 가보았다. 노숙자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보니 그분이 누워계시는 장소의 가게가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아마도 가게의 영업이 끝나면 나타날 것이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는 어둠 속에서 폐지를 정리하고 계셨다.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분은 아직 나를 모르신다. 그래서 이렇게 리어카에 가득 폐지를 싣고 가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팔천 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 하루에 몇 번 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두 번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한 번을 간다고 말했다. 하루벌이가 팔천 원이라는 말이다. 핸드폰에 집어넣어두었던 돈을 꺼내 드리면서 며칠 쉬시거나 마음 편하게 일하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연신 복 많이 받으시라는 축복을 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받는 복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역시 가난이다. 하느님도 복을 주시느라 고민하지 않으실 것 같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저녁에 밖으로 나간 이유는 이분들이 내 형제요 자매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아직 생각만큼 친밀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내 가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내 가족은 언제나 있다. 그것이 가난한 사람이 언제나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의 의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와 똑같이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복음의 삶과 거기에서 오는 기쁨을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가장 먼저 자기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자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소망을 결코 잃어버리지 말 것을 가르쳐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잔등이를 보고 복음을 배운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박해가 필요치 않다. 자녀들은 부모의 믿음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부모의 삶에 있는 기쁨의 진정성을 자녀들은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부모들이 가르친 하나님의 명령과 소망의 발아를 결정한다. 오늘날 청년들이나 주일학교가 위기를 맞은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믿음이 참이라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말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복음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

마음을 보여줄 수는 없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이다. 잘 생각해보라. 우리가 어떻게 다른 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가. 그의 행동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꽃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역시 행동을 통해서이다.

“살인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뺨을 때리는 이에게 다른 쪽 뺨도 내주어라… 구원의 길의 엄중함을 인내하며 견뎌야 한다.” 이런 일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섬겼으며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의 엄중함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드러냈고, 그런 일들을 통해 드러나는 기쁨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의 진정성을 드러냈다. 물론 순교는 더욱 확실한 징표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처형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고, 그런 그들의 모습이 처형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것을 보는 사람들까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 시대의 순교는 가난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가난해질 수 있는가를 상상해보라. 그러나 그 가난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하느님의 샬롬으로 들어가는 문과 하느님께서 더해주시는 모든 것들을 가지게 되는 길이 된다.

지난 십여 년간 나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 돈을 주고 오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느꼈던 기쁨을 나도 느꼈다. 내가 아무리 강조해도 오늘날 사람들은 그 기쁨을 사모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다. 언젠가는 내가 돈을 드리는 노숙자 선생님과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나에 대해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나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내 딸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결혼을 고민하는 만나고 있는 남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일은 쉬워서는 안 된다. 부활은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순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믿는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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