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식당, "천 원이면 충분합니다."
상태바
해 뜨는 식당, "천 원이면 충분합니다."
  • 최태선
  • 승인 2022.10.24 2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삼성역 현대백화점 10층에서 딸 내외와 우리 식구가 외식을 했다. 음식을 먹으며 아내가 아이들에게 아빠가 하는 음식이 훨씬 더 맛있다면서 아빠가 이런 음식점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은 검지를 입에 대면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내의 말처럼 식당을 할 건 아니지만 정말 너무도 맛없는 음식을 비싸게 팔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기까지 하다가 그곳엘 들어갈 수 있었다. 손자 녀석 때문에 우리의 메뉴는 이제 제한을 받는다. 큰딸은 녀석이 먹는 국과 생선구이가 있어 그곳으로 장소를 이미 정해 놓고 있었다.

정말 돈이 아까웠다. 물론 그들도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와 고물가 등을 고려하면 생각처럼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영업자들 대부분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집처럼 대기 손님이 있는 경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다. 사실 사람들은 비싼 맛에 그런 곳엘 온다. 10층이라는 경관에 유리한 장소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그곳까지 오느라 그 식당 주인도 오래 고생을 했을 것이다. 식당을 하는 목적은 당연히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이 세상의 흐름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사진출처=푸드로드 동영상 캡처
사진출처=푸드로드 동영상 캡처

그러나 그런 식당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 “해 뜨는 식당” 기사를 보았다. 백반이 천 원이다. 애초에 천 원으로는 음식을 장만할 수 없다. 그러나 가난해진 후 가난의 설음을 알게 된 이전 사장님 할머니가 시작했고,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그 할머니의 막내딸이 그 식당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익을 남기기 위한 식당은 아니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식당 가운데 있는 돈 통에 천 원 짜리를 넣는다. 주인은 그것을 확인도 하지 않는다. 정해지지 않은 자원봉사자들도 오고, 전국에서 후원물품이 택배로 오기도 하고 직접 와서 놓고 가기도 한다.

목적은 배고픈 사람들이 와서 배불리 먹고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해 뜨는 식당은 돈이 목적이 아니다. 천 원을 받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보루이다. 예전에 할머니가 하실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식당을 그리스도인들이 한다면 좋겠다. 교회 교인들이 기본적인 자원봉사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자원봉사를 할 때 그들도 섬겼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많은 목사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목사들은 없을까.

천주교 신부도 청년들을 위한 김치찌개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수사 출신인 분이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노숙자 선생님들을 위한 식당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일들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돈이 모든 것인 세상에서 돈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돈이 주인이 아닌 다른 나라를 보여주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을 보기가 어렵다. 아니 내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복음은 근본적으로 세계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이 간단한 말씀에 세상과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돈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수단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돈이 그런 용도로 이해되고 사용되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가.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가 아닌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내가 하는 말을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개신교는 그럴지 모르지만 가톨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가톨릭이 재물(면벌부를 비롯한)과 통정하여 낳은 사생아이다. 더구나 가톨릭에는 평신도라는 계층이 존재하고 평신도의 역할을 이렇게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saeculum)에 속한 일을 하는 신자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교회의 교사들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그들은 ‘지식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 평신도는 그들의 일을 통해 사회가 기능하게 하는 데 필요한 일을 수행한다.… 그들의 일은 교회에게 중요하다. 그들의 수입이 교회의 필요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그들의 일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길이 어떻게 그들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켜 다른 이들을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앨런 크라이더,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 감광남 옮김, Ivp, p.477-478)

한 가지 사실만을 지적해보자. 평신도들의 일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길이 어떻게 그들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켜 다른 이들을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평신도들은 세상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에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지식을 지닌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며 평신도들은 그들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역행하는 처사이다. 하느님 나라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이며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평신도 이해 역시 가톨릭과 다르지 않다. 무언가 깨달은 평신도들이 걸핏하면 신학교를 기웃거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이 평신도이기 때문에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켜 다른 이들을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상상조차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결과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그리스도교를 구성하고 그리스도교 본연의 역할이 왜곡되고 잠식된 것이다. 단순히 곁가지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본질 자체가 변질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 역시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피해자들이다. 그들이 아무리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려 해도 애초에 그 일이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며 그것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를 깨운다고 평신도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가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는가. 없다. 그들은 돈을 벌어 교회에 갖다 바치기만 하면 된다. 이 얼마나 끔찍한 변질인가. 근본적으로 오늘날 평신도들은 돈이 주인이 아닌 세상을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나는 "해 뜨는 식당"과 같은 식당들이 곳곳에 생기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기꺼이 그분의 종업원이 될 것이다. 목사는 그 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섬길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목사는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늘 말하는 이끌리는 지도자이다.

그렇다. 내가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가 아니라고 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에 따라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세계관의 문제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이 사라졌고, 평신도들은 오히려 그것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하느님 나라의 세계관이 그리스도교와 교회 안에 살아 있다면 한국은 벌써 해가 지지 않는(곳곳에 있는 해 뜨는 식당들에 의해)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