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 티치아노의 '인간의 세 가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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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티치아노의 '인간의 세 가지 세대'
  • 김혜경
  • 승인 2022.10.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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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의 명화 속 사유와 현실-3

팬데믹에 더해 혹독한 여름을 지낸 탓인지, 가을의 길목에서 유독 ‘나이듦’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은 어린 시절보다는 소위 ‘청춘’이라고 일컫는 시기를 자신의 황금기로 기억하곤 한다. ‘열정’을 처음으로 의식하고, 자신의 ‘에고’에서 벗어나 ‘이타심’을 실천하는 시기라 그럴 것이다.

사랑에 대한 청춘의 열정은 얼마나 거센 광풍인지, 단테는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테스타의 영혼을 통해 잘 이야기해 준다. 『신곡』 <지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애욕에 빠진 사람이 있는 지옥에서 단테에게 에로스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내려주고 있다.

로댕의 <키스>, 가브리엘 단테 로제티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에서부터 차이코프스키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교향시 Op.32>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아리 셰퍼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1835년)만큼 지친 두 남녀의 고통받는 영혼을 그린 작가는 드물다. 에로스가 필리아, 아가페로 성장하지 못하고, 거기에 머무르기만 할 때, 열정은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

작가는 똑같은 그림을 1851년 이후 4개 버전으로 그렸고 1855년 버전이 루브르에 있다. 두 남녀의 몸에는 프란체스카의 남편 조반니가 찌른 칼자국이 남아있다. 두 남녀는 ‘원탁의 기사’에 등장하는 기사 랜슬롯 경(Sir Lancelot)과 왕비 귀네비어(Guinevere)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던 중,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이끌려 키스를 하게 되고 때마침 들어온 프란체스카의 남편 조반니로부터 그 자리에서 칼을 맞고 죽임을 당해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이다.

 

아리 셰퍼(Ary Scheffer),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런던, 월리스 컬렉션(Wallace Collection)
아리 셰퍼(Ary Scheffer),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런던, 월리스 컬렉션(Wallace Collection)

조반니가 잘생긴 동생 파올로를 대신하여 맞선 자리에 나가 프란체스카를 속인 것보다도, 형수를 측은하게 생각해 준 시동생 파올로에게 더 마음이 간 프란체스카에게만 도덕성을 묻고 있다. 일생 처음 한, 두 사람의 키스는 그 길로 죽음에 이르렀고, 프란체스카는 억울하다고 단테에게 하소연한다.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테스타는 간통죄로 색욕에 빠진 자들이 가는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광풍에 휩쓸려 바람결에 날려 다녀야 한다. 끝없는 형벌을 받으며, 프란체스카는 말한다. “고통 중에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하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요…” 그 말을 들은 단테는 그 자리에서 몸서리치며 기절하고 만다.

이렇듯 에로스는 자칫 위험한 사랑이지만, 다른 한편 꼭 필요한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에 눈을 멀게 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타심을 배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티치아노의 ‘사랑의 연작’에 등장하는 에로스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사랑,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를 다룬 ‘사랑의 연작’은 <세 가지 세대>(에로스, 에딤버러 내셔널 갤러리), 〈안드로스 사람들의 바카날리아〉(필리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성모승천〉(아가페, 베네치아, 프라리의 영광을 받으신 성 마리아 성당)이다.

〈세 가지 세대〉에 담긴 에로스를 보자.

 

시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잘 묘사된 이 작품은 스승인 조르조네(Giorgione)한테서 영감을 얻었지만, 조르조네가 노인을 앞에 두었다면 티치아노는 노인과 어린이를 멀리 두고 있다. 노인은 해골을 바라보고 있고, 어린이들은 나무 아래에서 놀다가 잠이 들었다. 노인 세대와 어린 세대는 인생에서 건너뛸 수는 없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티치아노가 집중하고 있는 세대는 청춘의 뜨거운 세대다. 젊은 두 연인이 왼쪽 앞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노인과 어린이들 사이에 넣지 않고 전방에 배치함으로써 ‘에로스 세대’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남성의 피부색은 땅의 색깔, 곧 흙빛이고, 여성은 밝은 하늘빛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하늘은 악기를 연주하다 말고 땅을 향해 키스하려고 눈을 마주한다.

인생 최고의 빛나는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에로스의 순간이고, 에로스는 자연을 포함한 아름다움이 절정기일 때를 말한다.

 

김혜경 세레나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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