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좋은 소식만 기다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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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좋은 소식만 기다리면 됩니다
  • 서영남
  • 승인 2022.10.03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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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양태식(가명) 씨가 동인천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민들레국수집의 제안을 받아서 여인숙에 방을 얻은 것이 7월 초였습니다. 동인천 역 근처의 여인숙 방은 월 25만원 선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천정이 보이는 방, 겉옷을 벗고 잠을 잘 수 있는 방이라는 것만으로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벌레 때문에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기 한 마리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벌레에 물려서 고생을 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5만 원을 더 올려서 월세 30만 원을 주기로 하고 이층에 있는 방으로 옮겼습니다. 

태식 씨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한 지 한 달쯤 지난 후에 세 차례에 걸쳐서 긴급지원금을 받았습니다. 방세를 내고 담배도 사고 소주도 한 잔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없이 돈을 썼더니 담뱃값이 모자랍니다. 할 수 없이 5만 원을 빌려갔습니다. 그리고 수급 신청을 한 지 두 달 반 정도 지나서야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습니다. 태식 씨는 아직 만으로 65세가 되려면 몇 달이 더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활근로를 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내년에 태식 씨가 만 65세가 되기까지 자활근로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면 그냥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낼 수 있습니다. 

태식 씨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서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긴 좋은 데 할 일이 없어서 너무 심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동인천역 광장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면 좋겠다 했습니다. 태식 씨는 돈을 받을 수 없는 일을 왜 하냐고 합니다.

태식 씨가 몇 달을 동인천역 광장에서 노숙을 하다가 민들레국수집의 도움을 받아서 여인숙에 방을 얻고 이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을 눈여겨보던 송경수(가명) 씨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습니다. 자기에게도 방을 얻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경수 씨에게는 몇 번이나 노숙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경수 씨는 요즘은 송현 근린공원 근처에서 잠을 잡니다. 근처에는 송현시장이 있고 또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습니다만 공사가 거의 끝나서 입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빈집 구석 진 곳에 참새둥지 같은 보금자리를 꾸며놓았습니다. 새벽에 시끄러운 것만 빼면 그럭저럭 견딜 만 하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지하상가 구석진 곳이 따뜻해서 지하도에서 지낼 만 하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밥을 먹고 또 하인천역과 월미도 그리고 자유공원 등에서 무료급식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밥을 먹다 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식사하러 왔습니다. 병원에 가자고 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렇게 견디다가 자연적으로 낫게 되었지만 지금도 절룩거립니다. 수급자가 되면 곧바로 다리를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찬 씨가 노숙을 시작했을 때는 다른 손님들과 어울려서 막걸리도 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몇 년 전부터는 술을 먹지 않고도 잘 지냈습니다. 코로나 19 전에는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책도 읽고 독후감 발표도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담배도 피우질 않습니다. 담뱃값이 터무니없이 오른 다음에는 꽁초 주워서 피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도저히 남이 피웠던 꽁초를 입에 대는 것이 무서워서 그냥 피우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담배 생각이 나지 않는답니다. 그러고 보니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꽁초를 줍던 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9월 12일에 경찬 씨는 서산여인숙이 마음에 든다면서 한 달 21만 원에 방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을 이전했습니다. 다행히 주소가 말소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왕래가 없었던 누나 집 주소에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주소를 여인숙으로 이전했습니다.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은 다시 발급받았습니다. 당연히 건강보험료는 미납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일 년 전에 납부된 기록이 있습니다. 아마 누나가 걱정이 되어서 납부한 모양입니다. 고맙긴 하지만 경찬 씨가 긴급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구청에 가서 긴급지원 신청도 했습니다. 다행히 선의를 가진 공무원을 만났습니다. 긴급지원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경수 씨는 오랜 노숙생활로 의사표현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관공서에 봉사자와 함께 다니도록 했습니다. 구청에서 긴급지원 신청서류에 사인을 한 후에 민들레국수집으로 올 때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는데도 불편하다고 혼자 걸어서 왔습니다. 이제는 좋은 소식만 기다리면 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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