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대통령처럼 말하기가 습관되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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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대통령처럼 말하기가 습관되면 어쩌나
  • 박규옥
  • 승인 2022.09.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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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옥 칼럼
사진=박규옥
사진=박규옥

손님이 현금 계산을 할 때 대부분의 계산원은 현금 키를 눌러 튀어나온 서랍을 계산이 다 끝난 뒤에 닫는다. 거의 모든 계산원의 루틴이다.

9,400원 짜리 믹스커피를 사고 만 원을 낸 손님에게 600원의 거스름돈을 내주고 현금통을 닫았다. 600원을 받아든 손님은 그것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현금 계산서를 하겠다고 했고, 나는 손님이 번호를 입력하게 화면을 만들어줬다. 그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손님이 방금 자신이 집어넣었다는 것을 잊고 동전을 꺼내 세더니 400원을 내게 준다. 10,400원을 냈으니 천원짜리로 거슬러 달라는 것이다.

이미 계산이 끝났다, 내가 동전으로 거스름을 주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이 손님이 아니란다. 이 동전은 자기가 낚시터에서 받아왔다면서 너무나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하길래 나는 우선 손님에게 현금계산서를 입력하라고 한 뒤, 확인시켜준다며 CCTV를 되돌려보기로 바꿨다. 화면이 돌아가는 동안 잠깐 기다린 손님에게 동전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 장면을 보여줬다.

손님은 분명 자신이 착각을 했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손님이 대뜸 그걸 보여주려고 사람을 이렇게 세워둔 거냐고 한다. 손님이 착각한 거 같아서 확인시켜 주려고 했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그 얘기를 자기한테 미리 말했어야 뻘쭘하게 서있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 따졌다. 손님이 현금 계산서 입력할 때 그 얘기도 했다고 말하자 자기는 못 들었다며 불쾌해 했다.

이럴 때 장사꾼은 어때야 할까? 애초에 당신이 거스름돈을 받고 안 받았다고 우기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 아니냐, 우기는데 확인시켜 주려면 CCTV 만한 게 어딨냐, 당신 주머니를 뒤져볼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 확인시켜 드릴 테니 기다려 달란 말을 못 들었다니 죄송하다. 이렇게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를 하고 본인이 실수했다는 것을 확인해도 이런 상황을 겪은 손님은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영 발을 끊게 된다.

서비스업이 그래서 힘이 드는 것이다. 말하기는 철저히 손님 위주로 해야 한다. 다 피운 담배 갑을 던지듯 보여주며 담배를 사는 손님이 무례한 것이 아니라 아이스트로픽더블, 켄트더블프레쉬, 클리어피니쉬... 이런 담배 이름이 무례해서 그러는 것이라 이해해야 한다. 덩치큰 초등 고학년이 2+1을 이해 못 해서 매번 5개의 아이스크림을 집어오면 그때마다 369 게임 얘기까지 꺼내 설명하며 서비스로 주는 아이스크림을 챙겨줘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서비스업자의 말하기는 철저하게 소비자 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운 언어여야 하고, 그러는 와중에 작은 실수라도 했을 때는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동네 작은 가게 주인의 서비스 정신이 그런데, 하물며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지도자에게는 더 필요한 덕목 아닐까?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켜진 마이크 앞에서 '이 새끼들', '쪽팔리다' 는 막말을 한 사건으로 연이틀 SNS가 시끄럽다. 정치 초보라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막중한지 모르거나, 알아서 조심한다고 해도 무심결에 튀어나올 정도로 습관이 된 사고 방식이 언어로 표출된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듣는 사람들 기분까지 생각해줄 정도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가 안 된다. 부끄러워할 사람은 이미 그러한 인성을 무수히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찍어준 사람들의 몫이어야지 왜 모두의 부끄러움이란 말인가?

연이은 실수에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 우기면서 듣기 테스트를 시키는 걸 보니 점입가경도 이런 점입가경이 없다.

CCTV까지 보여주며 설명하다가 사소한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손님에게, '이 새끼, 동영상 증거까지 보여주며 확인시켜 주니 쪽 팔리겠지!' 생각하다 깜짝 놀랐다. 그 잘난 대통령님이 내 언어 생활에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 듯 하다. 이러다 대통령처럼 말하기가 습관되면 어쩌나 싶어 조심하게 되다니!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친절한 점주로 거듭날 것 같은데... 어쩐지 하나도 기쁘지가 않다.

 

박규옥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십여 년간 학원에서 국어 논술을 가르치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문학 석사를 거쳐 문예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3년여 시간 동안 심혈을 쏟아 중국 기업 조사와 관련된 사업체를 운영하다 돌연 접고 편의점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운영하며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일이 바코드 찍은 일보다 체면치레는 될지 몰라도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하던 일을 과감하게 접었다. 이제는 작은 가게에서 시간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단순한 노동을 하며 산다. 지금은 경기도 분당, 오피스텔이 있는 한적한 동네에서 GS25 편의점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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