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지킴이, 산골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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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킴이, 산골 돌탑
  • 장진희
  • 승인 2022.09.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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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6 - 무주에서: 산골 돌탑

같은 전라도 땅이라도 남도와 북도, 특히 산골에 사는 사람들과 들에 사는 사람들은 많이 다릅니다. 물론 바닷가 사람들은 또 다르지만요.

곡창 지대인 평야 지방은 물산이 풍부합니다. 그런데 땅이 그렇게도 풍요롭게 내어준 곡식을 탐관오리한테, 친일파한테 두눈 벌겋게 뜨고 다 빼앗기고 정작 자기 새끼들은 굶어죽어 갈 때, 아예 없어서 못 먹는 경우하고는 사람 심성이 달라집니다. 눈깔이 뒤집어지는 것이지요. 속에서 천불이 나구요.

산골은 애초에 빼앗길 것이 없는 땅이라 그렇게 눈이 뒤집어지는 꼴은 덜 당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산골 사람들 심성이 훨씬 순하고 소박합니다. 물론 사람을 낮고 차분하고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산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산골은 가난한 땅입니다. 지금 식으로는 '돈' 될 것이 없는 땅이지요. 그러나 그 가난은 사람들의 마음을 참 순하고 소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길 따라 마을 따라 가다보면 아침저녁으로 집집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내 낀 마을은 낮고 부드럽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참 순하고 선하게 보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이 가진 것 많은 사람들 얼굴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인지.

다른 지역보다 산골 마을에는 '오래된 미래'의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구들이며 지게며 소달구지며... 마을마다 당산나무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 돌탑도 많습니다.

마이산 탑사에 오릅니다. 한 사람의 맨손 힘으로 쌓았다고는 믿기 어려운 돌탑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탑사의 산신당에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할머니 산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할아버지 산신만 그려져 있는 다른 산신각이나 칠성각과는 달리 할아버지 산신과 쪽 찐 머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 산신이 더불어 있습니다.

세상을 '돈'과 '권력' 싸움판으로 만들어놓은 남성들의 시대는 가고 생명을 살리고 보살피는 여성들의 시대가 와야 세상이 살 만하게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아무튼 지금보다는 여자든 남자든 그 안에 든 여성성이 대접을 받아야 세상이 좋아질 것은 확실합니다.

마이산을 동북 쪽에서 보면 말의 귀로 보이거나 암마이, 수마이 한 쌍으로 보이지만 서남 쪽에서 보면 영락없이 어머니의 젖통입니다. 젖퉁이는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천하 만물에게 젖을 물려 살려내고 길러내고자 하는 바람이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몇 십년 전에 이갑용 처사는 그 젖무덤 사이에 톨탑을 쌓았습니다. 돌탑을 쌓으면서 이 처사는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빌고 또 빌었을 것입니다. 내 가족, 내 마을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하늘 아래 모든 기운, 땅 위에 모든 생명, 천지만물을 위해......

진안 마이산 근동 마을에 유난히 돌탑이 많은 것은, 탑사의 탑을 보고 마음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따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탑들 속에 들어 있는 기원으로 보자면 이땅이 지금 이렇게 사납고 험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귀하고 중한 공력이 헛될 리 없습니다.

 

사진출처=alpineclubmokpo.tistory.com
사진출처=alpineclubmokpo.tistory.com

진안문화원에서 발행한 {진안지방의 탑 신앙}(이상훈 편저, 2009.)이라는 책에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마음이 좋아하는 오래된 소식이다.

“진안군 동향면 하향 마을은 2007년 7월 초하룻날에 마을 사람들과 타지에 나간 사람들이 모여 새마을 사업 때 없어졌던 마을 돌탑을 복원하고 마을 공동체의식을 다졌다. 본래 하향 마을에는 2기의 돌탑이 있었다. 새마을 운동 때 1기 돌탑이 제방을 쌓기 위하여 없어졌는데, 그 돌탑을 본래 자리에 복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탑을 복원하게 된 것은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여 마을 사람 사이에 갈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을이 어수선하니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이 논의하던 중에 없어진 탑을 복원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새마을운동 때 많은 마을의 돌탑이 없어졌는데 후에 탑을 복원하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마을에 불상사가 일어난 후에 마을 사람들이 합의에 의하여 탑이 복원된다. 이는 마을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돌탑이 없어짐으로써 오는 정신적 상실감을 마을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없어진 돌탑에서 찾는 것이리라.

아침 일찍부터 돌탑을 쌓는 작업은 시작되었다. '여러니 카페'를 통해 돌탑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접한 타지에 사는 젊은 청년들이 탑 복원에 참여했다. 마을이 활기찼다. 평상시에도 농촌의 모습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복원하고자 하는 위치는 본래 마을 입구로 이곳에는 두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보호수로 지정하면서 느티나무 주변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그래서 탑을 세우고자 하는 장소의 콘크리트는 파헤치고 땅 위에 돌탑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야 땅의 기운(氣運)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돌탑은 일반적으로 기단부, 탑 본체, 탑 윗돌, 내장물 등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기단부를 튼튼히 한 다음 쌓아야 쉽게 무너지지 않게, 제법 커다란 돌을 준비하여 맨 밑바닥에 깐 다음에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서너 단 정도를 둘레돌부터 쌓은 후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돌들로 메운다. 빈 공간이 없이 메워저야 돌탑이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다. 이렇게 돌탑 본체가 한 단 한 단 완성되어간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원통형으로 만들어진다. 안정감을 주기 위하여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혀 만들어진다. 돌탑 본체 안에 내장물을 넣는데 하향마을에서는 항아리 속에 마을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원문을 넣었다. 이는 부적 같은 역할을 하며 마을에서 바라는 바가 잘 기록되어 있다. 묻기 전에 마을 대표가 기원문을 읽으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기원문은 이 마을 출신 성진수 시인이 지었다.

돌아오라 지킴이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땅에 계신 신이시여!
우리 동네 아랫여러니를 지켜주소서!
하향 마을을 복되게 하여 주소서!
예로부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이 마을에
더 많은 풍요와 더욱 큰 영광을 내려 주소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서
몹쓸 재앙과 불신과 질병과 잡귀는 모두 물리쳐 주소서!
무병장수하는 마을이 되게 하여 주시고
더욱 번창하여 길이길이 빛나게 하소서!
오늘 지킴이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드리오니 너그러이 받아 주시고
복과 선은 받아들이고, 화와 악은 물리치소서!
집집마다 창고가 넘치도록 재물을 채워 주시고
현세는 물론, 대대손손 지혜와 용기를 주시어
이 나라의 동량이 되게 하소서!

--서기 이천칠년 칠월 초하루
하향마을 내외주민 모두의 마음을 담아 쓰다
성산, 참샘 성진수

그런 다음 돌탑은 일사천리로 완성되어 갔다. 돌탑을 만들 때 마을사람들은 돌탑에 필요한 돌은 산에 있는 돌로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산의 기운도 받고 마을도 좋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산에서 돌을 구하기가 여의치 못하자 천변에서 경운기, 트랙터, 트럭 등으로 쉴새없이 날라다 세웠다. 실제 돌탑을 세우는 데에는 만만치 않은 양의 돌이 사용된다. 그래서 새마을운동 당시 돌탑의 돌로 제방을 쌓을 정도였다.

돌탑이 거의 완성될 무렵 두 개의 선돌을 올려 놓았다. 이를 탑윗돌이라고 한다. 보기 좋고 음양(陰陽)을 고려하여 세워졌다. 지금은 마을에 살지 않으나 점을 보는 사람이 돌탑을 쌓을 무렵 오게 되었는데, 그 분이 두꺼비를 올려 놓으라고 하여 남아 있는 돌탑과 새로 조성된 돌탑에 올려놓고 서로 마주보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탑은 완성되었다.

돌탑을 쌓는 것은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대표자나 발언권이 강한 사람 주도로 만들어진다. 그때그때 상황에 닥치면 마을 사람들이 의견도 참조가 되지만 마을 대표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마을마다 돌탑이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돌탑이 완성된 후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다. 그리고 제를 준비한다. 제는 기존에 있는 돌탑부터 지냈다. 삼색 실과와 탕, 명태포 그리고 팥죽이 준비되어 지냈다. 제는 점을 보시는 분 주도로 진행되었다. 그분은 돌탑 주변에 소금을 뿌리면서 축원을 하며 진행하였다. 그리고 함께 참여한 아주머니들은 비손을 하며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제가 끝날 무렵 팥죽이 뿌려졌다. 그리고 새로 쌓은 돌탑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제가 진행되었다. 그래도 여기에는 돼지머리가 준비되었고 돌탑을 만들 때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재배를 올렸다. 마을의 안녕을 간절히 빌면서. 마을이 행복해야 타지에 나간 분도 행복할 것이니까!”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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