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돌아가자-페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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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돌아가자-페북에 관하여
  • 김선주
  • 승인 2022.09.19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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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은 잡지사로부터 자신의 소설이 거부당한 한 소설가의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이란 허구를 바탕으로 지은 것이지만 현실을 말함으로써 진실을 추구한다. 따라서 소설은 허구냐 진실이냐를 떠나서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의 내적 욕구를 분출하기 위한 문학적 수단이다. 인간은 이야기함으로써 인간이다. 이야기는 인간이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야기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이야기되지 않는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서사의 뼈대가 되는 세 가지 요소로서의 인물, 사건, 배경은 인간과 세계의 토대이다. 세계 창조를 알리는 창세기 1장 1절은 그래서 이야기로 시작된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사건)”

한때 시인이었던 내가 시를 쓰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문학 권력 때문이다.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가 쓴 작품을 발표할 지면(紙面)이 있을 때 작가로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데, 한국 문단의 경우 그 지면을 소수의 문학 권력이 독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곳에도 파벌과 계급이 있어 줄을 세우는 짓들이 횡행한다. 지면이 없는 작가는 입이 틀어막힌 웅변가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시를 포기했다. 대신 산문으로 전향했다.

한때 모 일간지에 2년 가까이 칼럼을 연재했는데 사주(社主)의 심기를 건드리는 논조가 나오자 데스크는 내 칼럼을 중단시켰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담벼락에 낙서하듯이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는, 일기 같은 글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에 대해 담론을 나누고 싶었다. 페이스북은 나에게 지면이 돼 주었다. 신문이나 방송이 독점했던 지면(담벼락)을 내게 새롭게 열어 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담벼락에 낙서를 하듯이. 누군가를 욕하고, 무엇인가를 파헤치며, 내 생각을 말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 견해를 밝힌다. 이 사회를 향해 설교를 한다. 페북은 나의 칼럼을 실어주는 지면이며, 설교를 할 수 있는 강단이며, 사랑과 정의를 선포하는 복음의 연단이며, 내가 숨을 쉬는 통로다.

 

페북에 칼럼을 쓴 지 10년이 되었다. 그런데 페북에 묘한 기운이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포르노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극적인 욕설, 폭로 같은 것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며 반응하면 그에 도취되어 자신도 모르게 하드코어를 향해 간다. 하드코어를 향해 가는 수순은 몇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갈수록 강렬하고 선정적인 말들이 많아진다. 이런 경우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고 논점이 흐려진다. 둘째, 글의 길이가 짧아지고 내용이 단순해진다. 셋째, 좋아요와 친구의 숫자에 민감해진다. 넷째, 페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포스팅의 횟수가 늘어난다.

어떤 이는 선정적인 정치적 단문들을 한두 시간마다 페북에 투척하기도 한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포르노 현상이다. 많은 이들이 페북에서 이 포르노에 감염되어 담론을 버리고 선동과 구호, 폭력과 선정의 미시 언어로 지성을 낭비하는 걸 본다. 그래서 나는 페북에 대한 원칙을 정했다. 하루에 3번 이상 페북에 접속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주일에 한두 번 포스팅한다. 한 가지 테마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로 담론을 나눈다. 견해를 말하거나 누군가를 비판하더라도 합리적 논거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팅은 그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반복되는 패턴을 갖게 됨으로써 식상해질 수 있다. 페북을 창의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되면 반복되는 패턴에 식상한 페친들은 내 포스팅에서 관심이 멀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창의적으로 페북을 활용한다 하더라도 페친이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물처럼 흘러가고, 새로운 물이 흘러오듯 멤버가 교체되기 마련이다. 사이버 공간의 특성이다. 이에 대해 민감해지게 되면 중독현상이라고 봐도 된다.

페북을 하며 손가락에 꼽을 만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내가 먼저 친구를 신청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페친 신청이 들어오면 그 사람의 프로필보다 타임라인을 먼저 본다. 그가 페북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는 것이다. 페북을 담론의 공간으로 사용하는지가 첫 번째 주목하는 점이고, 편협한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가 두 번째 주목하는 점이다. 아무 의미도 없이 페친 숫자 늘리기 위해 하는 친구 신청이나 비즈니스 수단으로 하는 페친 늘리기는 사양한다. 아무리 SNS지만 친구 맺기를 까탈스럽게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페북 10년 만에 페친이 2천 명이 넘었다.

페북을 접을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내 포스팅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는 분들이 있어 이 짓을 끊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갈수록 피곤하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페친을 좀 정리하고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소수의 분들과 경제적으로 페북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젠 SNS에서 육체 없는 사람보다 뼈와 살이 있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사람, 눈빛을 마주하며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진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너무 오래 사람을 안 만났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타자를 만날 때, 가장 인간다워지고 인격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느님도 인간의 몸을 입었을 때, 가장 인간다웠다. 그리고 가장 신다웠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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