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온재와 순례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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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재와 순례자의 꿈
  • 문지온
  • 승인 2022.09.19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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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온의 심온재 이야기
오리오 리타 순례자석 (사진=문지온)
오리오 리타 순례자석 (사진=문지온)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혼자 툭 떨어뜨려 놓고 가려니 마음이 안 좋다.”
낮은 대문 앞에서 친구가 말했다. 고흥에 온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고, 겨울 날씨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남도의 햇살이 따가운 오후였다. 안스러움과 걱정이 뒤섞인 친구의 눈빛, 그 앞에서 나는 애써 괜찮은 척하며 물었다.
“언제 다시 올 거야? 한 달쯤 지내보고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집들이를 겸해 축성 미사를 하고 싶은데 그때 와서 함께 해줄 수 있지?”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인 걸 알면서도 염치없이 말했을 때 친구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러겠다 약속하고 마을회관 앞에 주차해 놓았던 차를 타고 떠났다.

친구의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집으로 올라와 키 작은 대문을 열었다. 친구가 있을 때에는 꽉 차고 안정되어 보이던 공간이 휑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똑같은 공간이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언젠가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공간은 그곳을 지배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던 말.

아무리 따뜻한 남도의 날씨라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세 시가 넘으면서 눈에 띄게 햇볕이 사그러들더니 유자나무 언덕을 넘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뼈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다.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아궁이불을 지펴 구들장을 데워놓지 않으면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루 밑에 쌓여있는 장작을 꺼내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 속에 얼기설기 화목을 넣고 마루에 있는 박스를 열었다. 꼭 필요한 책이나 자료만 남기고 나머지는 불쏘시개로 쓸 요량으로. 그러다 그 노트를 발견했다. 7년 전,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 순례길을 걸을 때 날마다 썼던 일기장. 반가왔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우연히 첫사랑의 연인을 만난 것처럼.

그렇잖아도 불을 지피는 동안 읽을 거리가 필요했던 나는 노트 외에 한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쓸모가 다한 노트와 원고뭉치를 들고 부엌으로 돌아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불길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을 확인한 후에 노트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순례길의 추억들이 되살아나면서 그때의 더위와 추위, 비릿한 비 냄새와 숲 속에서 썩어가는 나뭇잎의 냄새까지 생생히 떠올랐다. 그러다 그 편지를 발견했다. 심온재에 깃들도록 나를 초대한 친구에게 썼지만 어쩐 이유에선지 붙이지 않은 편지가 그 안에 있었다. 무어라 썼는지 궁금해서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벗이여. 그대는 ‘집’이란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제일 먼저 주황빛 등불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떠올라요. 구구한 설명이나 표현이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는 곳, 내가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생각나요. 힘들고 지친 걸음으로 돌아가면 따뜻하게 껴안고 “힘들었지? 잘 왔어. 기다리고 있었어.” 부드럽게 속삭여주는 사람이 있는 곳, 그래서 어디론가 떠났을 때 그리워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내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집’의 이미지였어요. 그리고 나는 오늘 오리오 리타에서 그 ‘집’을 찾은 것 같아요.

들판 속에 나지막히 자리잡은 마을 오리오 리타에 도착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성당을 찾아가는 것이었어요. 아무도 없는 성당에 앉아 감실 속의 그분을 바라보며 실컷 울고 싶었거든요.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선이 있는 산 베르나르드(San Bernarde)에서 순례를 시작한지 오늘로 39일째, 몸도 힘들고 지쳤지만 오늘은 유독 회의가 느껴졌거든요. 왜 내가 지금 낯설고 힘든 땅에 서 있는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제 그만 어디든 닻을 내리고 평안하게 살고 싶은데 내 존재의 닻을 내릴 곳이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요.

그래서 감실등 너머에 계신 주님을 응시하며 청하였어요. 제가 지금 어디에 서있으며 어디에 존재의 닻을 내려야 하는지 알려주십사하구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분의 침묵 뿐. 답답한 마음에 배낭을 짊어지고 성당 문을 나섰는데 한 여자분이 제 손을 잡아끌며 무어라 하더라구요. 이탈리아 말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순례자숙소로 안내하겠다는 것 같아 그녀를 따라갔어요.

그리고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발에 야윈 체구의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가다, 네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내 귀를 의심했어요. 그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놀랐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내 집(My house)’가 아니라 ‘네 집(Your home)’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순례자숙소를 ‘내 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멀리 떠났다가 지친 몸과 서러운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온 딸을 맞아주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그녀의 포옹 때문이었을까요? 그녀의 환대는 강한 울림을 갖고 다가왔고,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어요.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있다는 듯이 가만이 등을 쓰다듬어주었어요. 그리고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내 손을 잡고 탁자로 가서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주며 마시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어요. 내 이름을 안 것은 먼저 숙소에 도착한 독일인 수사님 때문이었고, 성당 앞에서 내 손을 잡아끈 여자분은 나를 위해 그녀가 보낸 봉사자였다는 것을요. 그녀의 배려와 환대에 감사하며 물었어요. 왜 “네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느냐구요. 그녀의 대답의 간단하고 명료했어요. “여긴 너를 위한 너의 집이니까!” 순례자숙소는 나와 같은 순례자들이 주인이고, 그녀를 포함하여 숙소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은 모두 순례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뜻 같았어요.

하!, 감탄했어요. 그동안 많은 순례자숙소를 거쳐왔지만 그녀처럼 생각하고 진심으로 환대하는 봉사자는 없었거든요. 말로는 ‘봉사자’인데 행동은 건물관리인처럼 하거나 아주 나쁜 경우엔 순례자를 거지 취급하면서 도네이션을 강요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정확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니 제가 반하지 않겠어요? 그녀를 닮고 싶고 그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어느 작은 알베르게여도 좋고, 한국에 있는 작고 소박한 피정의 집이나 쉼터라도 좋으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존재의 닻을 내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환대하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 날이 올까요? 오기를 기다리며, 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나도 그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그대가 원하는 대로 ‘온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주십사하고.

아!,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편지를 쓴 날짜를 확인했다. 2015년 10월의 첫날에 쓴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때로부터 6년 5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한국의 조용한 피정센터나 쉼터는 아니지만 심온재에서 그때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안고 있었다.

 

오리오 리타 순례자 숙소
오리오 리타 순례자 숙소

순례자의 지팡이에 새겨진 기도는 이루어진다는 순례길의 전설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우연히 겹치는 부분이 있는 사실을 순례자의 전설과 엮어 과대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둘 중에 어느 쪽이라도 상관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심온재에 깃들어있고, 심온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오리오 리타에서 만난 그녀가 나에게 그랬듯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하며 이렇게 말하리라는 것이다. “어서 와! 네 집에 온 것을 환영해!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하고. 겉으로 소리내어 말하든 가만이 혼자 웃으며 속엣말을 하든 내가 담을 수 있는 가장 깊고 큰 진심을 담아서.

 

문지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을 통해 따뜻함에 이른다"는 뜻으로 필명을 문지온으로 정했다. <남은 자들을 위한 800km>(ekfrma, 2016)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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