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그 약을 끊어야...이따 쑥뜸기 갖다 드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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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그 약을 끊어야...이따 쑥뜸기 갖다 드릴 테니
  • 장진희
  • 승인 2022.09.13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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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6 - 무주에서: 민간 처방

돌이 아저씨가 며칠 안 보이십니다. 어디가 아프신가 하고 궁금했는데, 어느 날 지나다 보니 마을회관 앞에 힘없이 앉아 계십니다. 돌이 아저씨네 집은 마을회관 바로 옆입니다. 한창 바쁜 농사철이라 그럴 리가 없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굴색이 말이 아닙니다. 까맣게 죽어가고 있는 얼굴입니다.

"아아니! 왜 이러고 계셔요?"
"으응! 아퍼서 그래. 아이고, 고추 약도 해야 쓰고 할 일이 천진디 이라고 있구만, 쯥!"
"어디가 아프셔요?"
"아이, 뭔 놈의 오줌이 금방 누고 뒤돌아서믄 또 매렵고 뒤돌아서믄 또 매렵고, 오줌이나 아니나 소주컵으로 반나도 안 나옴서 하루 종일 이란당게. 그라니 어디 댕길 수가 있어야제..."
"그런데 얼굴색은 왜?..."
"...아, 여글 좀 봐아. 접때 헛간에서 뭐 갖고 나오다 모서리에 찍힌 덴데 이래."

하고 팔소매를 걷어 올려 보여 주는데, 살이 까맣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멍든 자국은 며칠 지나면 도로 새 살로 돌아오는데, 그게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뿐 아니라 온몸이, 한번 다친 데는 다 그렇게 까매진 채로 살아나질 않고 있습니다. 겁이 더럭 납니다.

지난번에 버스 타고 면에 나가는 길에 만났던 일이 생각납니다. 늘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서 진통제 같은 약을 타다 드신답니다. 약이 떨어져서 약 타러 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그때도 물어보았습니다, 언제부터 약을 드셨냐고. 몇 년째 그 약을 잡수시고 있다고 해서 마음에, 양약 오래 먹으면 안 좋을 텐데...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약 독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게 아니면 다른 원인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우선 약을 끊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리 아픈 데 먹는 그 약 아직 드셔요?"
"글제. 그 약 아니면 아퍼서 잠을 못 잔디."
"안 돼요. 무조건 그 약을 끊으셔야 돼요. 이따 집에 있는 쑥뜸기 갖다 드릴 테니 그걸로 아침저녁으로 아픈 데 뜸을 떠보세요. 그리고 지금 신장이 망가져 있는 모양이니, 우선 질경이를 다려 잡수셔야것는디......"
"으응! 빼뿌쟁이! 맞어, 우리 젊어서 오줌소태 걸리믄 그거 캐다 먹었제. 그것이 신장에만 존 것이 아니라 오만 천지에 약 된다고 캐다들 먹었어. 근디 요새는 사방 천지에 약을 해대서 어디 가야 그것이 있으까?"
"아, 질경이야 우리 집 마당에 지천이잖아요? 제초제 안 한다고 그라고 구박하시더니, 우리 집 쪽으로는 약을 안 하니 거기서 캐면 되요."
"으응, 그래."

부지깽이도 덩달아 뛴다는 농사철에 돌이 아저씨가 저러고 계시니 순이 아줌마 혼자 고생이 말이 아니겠습니다. 일 보러 나가다 말고 도로 집으로 돌아와 호미를 찾아 들고 마당으로 밭으로 집 뒤로 돌아다니면서 질경이 한 포대를 캡니다. 마당 수돗가에서 다듬어 잘 씻어 큰 채반에 받쳐 놓습니다. 뿌리째, 꽃째 통째로 깨끗하게 씻긴 질경이입니다.

혼자서 종일 이 밭 저 밭 일하다 지쳐 돌아가는 순이 아줌마, 발걸음이 또 바쁩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저녁 지어 먹으려면 서둘러야 하니까요.

순이 아줌마를 불러 쑥뜸기와 쑥 한 봉지, 손질 해놓은 질경이 한 푸대를 건네줍니다. 그리고 낮에 돌이 아저씨 보았다는 얘기며, 약 때문인 것 같다는 얘기며, 쑥뜸기 사용법을 잘 설명해 줍니다. 질경이는 우선 급한 대로 바로 끓여 잡수게 하고, 나머지는 그늘에 말렸다 계속 쓰시라고 말합니다.

"응! 그래! 그런 거야 우리도 잘 알제...... 고맙네."

순이 아줌마 눈에 눈물이 그렁합니다. 그 눈물을 보니 또 속이 찢어집니다.

그러고는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이른 아침, 논에 오리를 풀어 놓으려고 논가에 지어 놓은 오리장 문을 열어 주고 있는데 순이 아줌마가 다가옵니다. 얼굴색이 환해지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아이고, 논 깨애끗하네. 오리들이 일을 아조 잘하는구만. 올해는 논에서 쌀 좀 솔찮이 얻어 묵겄네에."
"아! 순이 아줌마! 이제 오세요?"
"잉, 쩌기 한나씩 올라온 피는 기양 보이는 대로 논에 들어가 뽑아내. 씨 맺으면 내년에 또 고생인게."
"예! 안 그래도 요새 아침마다 논에 한번씩 들어갔다 나와요."
"잉!...... 글고 고맙네, 고마워. 자네가 울 아저씨 살렸네. 증말 고마워!"

"아! 그럼... 아저씨 좀 괜찮으세요?"
"그래애. 자네가 시키는 대로 아침저녁으로 쑥뜸 뜨고 약은 절대로 안 먹었어. 질경이도 열심히 끓여 멕이고. 거 쑥뜸 그거 신통허데에? 약 안 먹어도 그전처럼 그렇게는 안 아프디야!"
"오줌 누시는 거는요?"
"잽혔어! 인자 괜찮해! 자네들이 울 아저씨 살렸당게!"

으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이따 저녁에 집에 와! 내 작년에 자네한테 얻어간 병아리 다 커서 울 아저씨한테 한 마리 잡어놓으락 했능게..."

고맙다고 한 턱 쓰시겠다니 마다할 리 없습니다. 순이 아줌마는, 쑥뜸기를 그냥 쓰시라고 해도 굳이 새로 사다 달라고 돈을 줍니다. 하긴 우리도 요긴하게 쓰는 것이니 그러기로 합니다.

한 달, 두 달...... 순이 아줌마와 돌이 아저씨는 착한 학생처럼 착실하게 시키는 대로 합니다.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돌이 아저씨 살갗의 검은 멍도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합니다.

돈이 없어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의료보험은 참으로 고마운 제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약을 너무 손쉽게, 함부로 먹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또 몸에 해가 덜한 민간처방, 자연처방의 전통적인 지혜를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위장병에는 무슨 나무가 약이 된다, 간에는 뭐가 좋다...... 시골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시골 아짐 한 분은 암으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내리자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뛰쳐나와 집에 돌아와서는, 산에 다니면서 온갖 약나무를 끊어다 끓여 먹고 나았습니다.

그리고 감기에 들면 생강하고 배하고 파뿌리하고 팍팍 끓여먹고는 금방 털고 일어났고, 기침을 하면 갱엿에 무 즙 내려 먹고 나았고, 기침이 심할 때는 텃밭 한귀퉁이에서 삼년, 오년 묵은 도라지 캐다 끓여 먹고 나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버스 타고 나가 주사 한 방 맞고, 약 한 봉지 지어 와서 해결합니다. 심지어 '닝게루'고 '피로회복제'고 '관절진통제'고 주사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마을 보건소장한테 찾아가 수시로 놔달라고 하는 양반들도 있습니다. 양약과 양의 위주인 보건소에서는 별 개념없이 필요 이상의 주사와 약을 씁니다. 민간처방이나 자연처방을 권하고 병행하려는 보건소장이 경고를 먹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당신들 스스로 의사가 되고 약사가 되어 스스로 혹은 서로들 치료하며 살았던 우리 시골 아짐, 아제들이 이제 약이 되는 풀이고 나무 들을 자꾸 잊어갑니다. 그러다 우리처럼 책 보고 겨우 좀 알게 된 사람이 떠올려주면 그제서야 '아! 맞어! 그랬제'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자꾸 전문가에게만 맡깁니다. 모든 걸 독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무슨무슨 자격증이 아니면 믿지 마라 합니다. 자격증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맙니다.

인류 전체가 휩쓸리고 있는 세태를 아무리 오지, 시골이라고 비껴갈 수 있겠습니까만, 아직도 양약이라면 입에 대지도 않으려는 시골 양반들이 계십니다. 스스로 몸을 자꾸 들여다보고, 느끼고, 아니다 싶으면 산에 가서 약나무를 캐다 달여 먹습니다. 그런 귀한 분들 만나면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 지상에 아직 살아 계실 때 하나라도 더 보고 듣고 배워야 할 텐데......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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