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한 시절의 새터 이발관
상태바
궁핍한 시절의 새터 이발관
  • 김선주
  • 승인 2022.09.13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주 칼럼

명절엔 빔을 했습니다. 명절에 새 옷 입는 것을 빔이라 하고, 또 그 옷을 빔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설날에 입는 새 옷을 설빔이라 하고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 했습니다. 명절 전 대목장에서 어머니가 사 오신 빔을 장롱 속에 넣어두고 명절을 기다리는 보름이나 열하루 남짓 동안 새 옷을 입어보고 싶어 안달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옷이 더러워질까봐 어른들은 입어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명절까지 인내하며 참는 그 시간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느낌으로 충만했습니다.

명절 아침에 꺼내 입은 빔은 바지 끝단과 소매 자락을 두세 번 접어야 했습니다. 클 때까지 입으라고, 으레 좀 큰 사이즈를 입히는 게 그 시절 궁색한 살림살이의 관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촌스럽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접어 입었으니까요. 몸에 맞지 않아 헐렁하고 뻣뻣한 새 옷의 느낌이 낯설고 불편했지만 그것은 어른이 되면서 낯선 세계와 부딪치며 적응해야 하는 인생사의 예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세상은 몸에 맞지 않는 새 옷처럼 낯설고 뻣뻣하고 헐렁거리는 불편함입니다. 그래도 새 옷은 깨끗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빔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낯선 세상에 던져진 실존의 부조리에 적응해가는 연습을 했던 것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명절 며칠 전에 할머니 손을 붙잡고 새터 이발관에 갑니다. 진 씨 성을 가진 아저씨는 따뜻하고 자상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발소 장의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진 아저씨는 낯선 남자의 구레나룻에서부터 목젖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검은 수염을 실밥 튿어지는(뜯어지는) 소릴 내며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거칠고 빽빽한 검은 수염을 기관차처럼 힘차게 밀고 가는, 날 선 칼날은 묘한 신비감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잔혹할 수도 있는 힘이 가장 부드러워질 때 나오는 느낌일지도 모릅니다. 얼음처럼 차갑고 이성처럼 빛나는 면도칼을 염치없이 둔해 빠진 말가죽에 슥삭슥삭 문지르면, 가장 둔한 것과 가장 날카로운 것이 상처 내지 않고 서로를 부대끼며 날카로움을 더할 수 있다는 사실도 신비한 느낌을 줍니다. 그것은 물리적 원리를 넘어서는 영적 신비 같은 것입니다.

내 차례가 되면 진 아저씨는 임금님 옥좌처럼 높고 덩치 큰 의자의 팔걸이에 빨래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나를 앉힙니다. 이발소 의자는 키 작은 꼬마가 앉기에 너무 덩치가 크고 위엄이 있었습니다. 진 아저씨가 내 목에 하얀 다우다 보자기를 두르면 나는 쥐구멍에 숨어 목만 내밀고 있는 ‘톰과 제리’의 생쥐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자기 속에 숨겨진 몸의 은밀함과 보자기 밖으로 드러난 머리의 대자적(對自的)인 상황은 매우 이질적이고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몸의 내밀한 감각과 이성의 합리적인 사유가 낯설게 부딪치는 인생의 예비적 경험이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두 가지 감각에 의한 모순 가운데 헤매게 됩니다.

진 아저씨의 바리캉이 재칵재칵 소리를 내며 내 측두엽을 지날 때, 그의 손아귀에서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힘줄이 근육과 관절을 밭갈이하며 역동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귀를 덮은 더벅머리가 시원하게 잘려 나갈 때, 어쩌면 난생처음으로 성적 쾌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짧은 머리카락이 코끝에 걸려 나비처럼 숨을 쉬면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습니다. 진 아저씨는 그런 나의 낌새를 알아채고 바리캉을 잠시 멈추어 줍니다.

나는 착한 아이라서 아저씨가 머리를 깎는 동안 가만히 있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보자기 아래 감추인 내 몸의 어느 구석인가는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손가락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오만 가지 상상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착한 아이 모습과 다른 아이가 보자기 아래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고, 보자기 안에 있는 내가 외치는 소리를 진 아저씨는 알아챘는지도 모릅니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미덕인 것을 진 아저씨는 이미 깨달았던 것일 테지요.

새터 이발관은 낡고 오래된 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빛을 가로막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은 자상하고 따뜻한 아저씨가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면도칼이 있었으며, 둔한 것과 날 선 것이 부딪치며, 상처 내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곳이었습니다. 감이 익어가는 가을빛이 창문으로 가지를 깊게 드리운 새터 이발관, 그곳에서 내 고추가 여물었습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