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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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는 것
  • 서영남
  • 승인 2022.09.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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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에 새 손님이 찾아오면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슬쩍 말을 붙여봅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손님은 나이가 예순 넷입니다. 내년이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랍니다. 중학교를 나왔고 막노동을 했답니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합니다. 모친과 함께 살았는데 모친이 십여 년이나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비정규직으로 청소 일을 했는데 지난해에 그만 두고 고시원에서 지내가다 돈이 다 떨어져서 몇 달 전부터 동인천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양태식(가명) 씨가 동인천역 근처에서 노숙한지 서너 달 지났을 즈음에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습니다. 지낼 수 있는 방을 얻을 수 있도록 돈을 조금 빌려드리겠다. 손님은 아마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면 될 것 같으니 해보자고 했습니다. 수급자가 되면 그때부터 조금씩 갚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보증금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여인숙이 월 20만에서 25만 원 정도, 고시원은 20만에서 30만 원 정도, 모텔은 25만에서 35만 원 정도인데 있고 싶은 곳을 정하면 수급이 나올 때까지 도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양태식 씨는 여인숙이 자기에게는 좋다고 합니다.  

동인천역 근처의 여인숙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몇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방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 명수여인숙에 방을 하나 구했습니다. 침대 하나 그리고 샤워실은 있지만 화장실은 공용입니다. 선풍기가 하나 있습니다. 요금은 선불로 한 달에 25만원입니다. 몇 달 동안 노숙을 했던 태식 씨는 별다른 살림살이가 없어도 곧바로 침대에 누워 쉴 수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오후 3시쯤 민들레국수집으로 와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후 3시쯤 다시 민들레국수집에 온 태식 씨는 짊어지고 온 배낭에서 빨랫감을 잔뜩 내어놓았습니다. 노숙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빨래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빨아서 말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면도구와 몇 장의 수건 그리고 속옷을 챙겨드렸습니다. 내일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주민등록 이전을 하고 주민등록을 살린 후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자고 했습니다.

양태식(가명) 씨는 몇 달 만에야 천정이 보이는 자기만의 방에서 잠자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기 한 마리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합니다. 노숙할 때는 모기에 물려도 물린 줄 몰랐다고 합니다.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이 말소가 된 줄 알았는데 살아 있습니다. 여인숙 주소로 주소 이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무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구청에 가서 긴급지원을 신청했습니다. 

여인숙에서 며칠을 지낸 후에 태식 씨가 그냥 놀면 심심하다고 합니다. 막노동을 나가고 싶다고 합니다.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했고 지금은 심사 중인데 막노동을 하고 수입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곤란한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에 막노동을 한 것이 수입으로 잡히면 그것보다 몇 배나 많은 금액이 수급비에서 삭감되기 때문입니다. 일하러 나가기 전에 먼저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막노동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라  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 다녀오더니 제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료하게 그냥 놀기로 했습니다. 용돈이 필요하니까 막노동을 나가려고 한 것인데 일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면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돈 한 푼 없이 지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용돈을 조금 드리면서 나중에 수급비가 나오면 갚으라고 했습니다.

태식 씨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긴급복지지원금이 나왔습니다. 여인숙 방세를 제 날짜에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남은 것은 용돈으로 썼습니다. 수급 신청을 한 지 두 달이 되어갈 때쯤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와서 식사를 하던 태식 씨는 아무래도 자기는 기초생활수급이 떨어진 것 같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다시 거리로 나가야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왜냐면 자기 능력으로는 도저히 여인숙 방세를 내면서 살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태식 씨에게 그렇게 걱정만 하지 말고 식사 후에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서 담당자에게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9월초에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며칠 후에 구청 공무원이 태식 씨가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해서 확인을 한 후에 결정될 것이라고 합니다. 노숙하던 사람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 너무 어렵습니다. 좁은 문입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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