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식탁에도 꽃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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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식탁에도 꽃병이 필요하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08.30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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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서울역 쪽방촌보다 방세가 저렴하다는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에 고시원 골목이 있습니다. 사법 고시가 없어지면서 고시생이 사라진 이 동네엔 3000원짜리 백반과 3500원짜리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이 있고, 구석마다 자리 잡은 고시원은 15만-20만 원이면 입실할 수 있습니다. 이 동네는 1인 가구 비율이 95%고 고독사 사망자가 전국 1위라 합니다. 명색이 ‘대학동’인데, 청년과 여성은 별로 없고 주로 중장년층과 노인의 비율이 높습니다.

‘사는 게 뭐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올 만한 동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떤 이는 가족과 인연마저 끊어진 채, 어떤 이는 주류 사회에서 떠밀려 나 이곳으로 흘러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랑 맞붙어 싸우는 사람은 없고, 고립된 삶에서 외롭게 버티는 사람들 때문에 ‘대학’(大學)동이 아니라 ‘고독’(孤獨)동이라 불러야 적절할지 모릅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세상의 끝자리로 가는 사람들

이곳에 한 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점심에 식사를 제공하는 공간 ‘해피인’이 있습니다.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뜻에서 ‘인’(in)자가 붙은 거랍니다. 가톨릭계 사단법인 길벗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식사 공간입니다.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권기석 등, 북콤마, 2022)을 읽어 보면, 박보아 해피인 대표는 ‘무료 급식’이란 말을 싫어한다 했습니다. 이곳은 공짜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밥 먹고 얘기하는 공간이라는 입장 때문입니다. “밥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고 밥 때문에 말을 하고 그러다 길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죠. 원래 완전히 단절된 사람들이었거든요. 정부 지원 하나도 없이 정말 기적적으로 운영하고 있죠”(35쪽).

얼마 전에 ‘가톨릭일꾼’ 월례 미사를 대학동에서 봉헌했습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 대학동에 모여드는 독거 중년 남성들을 위한 ‘참 소중한…’이라는 센터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시성을 기념하는 미사를 마련한 것입니다. 사하라사막의 은수자였던 푸코 성인은 “침묵으로 이 세상의 성화를 위해 노력하라. 나를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복음을 위해 새 터전을 마련하되, 입으로 선포하지 말고 표양으로 하며, 너 자신의 실천으로 전하라.”고 했습니다. 푸코 성인은 영적 스승 위블랭 신부가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그대는 가장 끝자리를 차지하라.” 하고 말한 대로 “나 자신은 언제나 끝자리를 찾으며 내 생활은 가장 말째가 되어 가장 비천한 자로 살아가리라.” 하고 다짐했던 분입니다.

숨통이 필요한 그대

이 센터를 맡는 이영우 신부는 교구 허락을 받아, 근처에 원룸을 얻어 삽니다. 지역 주민들처럼 이 신부 또한 대학동의 독거 중년 남성이 된 것입니다. ‘참 소중한…’은 동네 주민의 사랑방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한 끼 식사이기도 하고, 한마디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입니다. 실제 고시원에는 좁은 통로를 두고 다닥다닥 붙은 방마다 사람이 살지만, 서로 아는 체하지 않습니다. 살아온 이력을 묻지 않습니다. 그렇게 곁을 주지 않고 혼자 사는 곳이 고시원입니다.

각박한 삶은 각자도생을 요구하고, 타인의 불행이 행여 내게 옮겨붙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고시원 계단엔 흰 전지에 큼직하게 쓰인 게시문이 있습니다. “방문 열지 마세요. 빈방이라도 열지 마세요. 문을 여는 건 범죄인 거 아시죠? 지금 사는 방만 내 것. 고시원 전체가 내 것은 아닙니다. 어제 열어 본 방에 오늘은 사람이 삽니다. 제발 문을 열지 마세요.” 
나의 생존에 주목할 뿐 타인에 대한 관심을 끄라는 요청 같아 마음이 쓰립니다. 그네들이 타인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덧나지 않게 해 달라는 절박한 호소로 들립니다. ‘참 소중한…’은 그래도 안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숨통 같은 곳같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빈자의 생존기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수없이 보여 주는 ‘빈자의 식탁’에 대해 알려 줍니다. 노량진 컵밥이 가난한 공시생의 유일한 하루 식사라는 것, 그리고 돈 없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을 위한 1000원 식단을 알려 주는 동영상 조회 수가 꽤 높다고 합니다. 어느 유튜버는 ‘라면 끓이는 팁’, ‘밥 말아 먹었을 때 맛있는 라면 1위’, ‘오래 연구한 가성비 식단’을 알려 줍니다. 라면은 면만 건져 먹고 다음 끼니를 위해 국물을 남겨 두고, 이때 물을 먹어 두면 “위 안에서 면이 불어서 포만감이 클 것”이랍니다. 남은 국물에는 5시간 뒤 햇반을 말아 먹습니다.

2021년 개봉한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에 주인공이 혼자 밥을 먹으면서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이 식사하는 ‘먹방’을 틀어 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몸은 혼자이지만, 마음으로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은 ‘안전하게’ 삶을 견디려고 분투합니다.

그러나 이런 눈물겨운 생존기에서 미끄러지는 이도 있습니다. 2021년 7월 어느 날 서른여섯 살 청년이 서울시 용산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주가 되어서야 발견된 이 청년은 처음 노숙할 때 심정을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4/8. 노숙 1일 차. 17:45경. 움직이기 적당한 좋은 날씨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춥다. 노숙자가 된다는 건 … 삶의 거의 막다른 곳 중 하나일 것이다. 겨울에는 어떻게 지낼까? 추운 곳에서? 비 오는 날에는 어떻게 피할까? 젖은 채로? 가만히 누워 있을 때와 움직일 때다르다. 일주일 중 어제 일요일 마지막 밥을 먹었다. 일주일 중 제대로 된 한 끼의 식사. 내가 가진 건 견과류 조금, 물, 셰이크 3봉”(185쪽).

빈자의 자존감

사연이야 알 수 없지만, 이 청년은 추위를 피해 노숙자 일시 보호소에 잠시 몸을 의탁한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곳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2020년 4월 다이어리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1. 식사 챙겨 먹기 2. 약 챙겨 먹기 3. 말실수를 가급적 줄이도록 노력하자 4. 세면, 세수, 샤워, 청소 등 청결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자 5. 하루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자 6. 햇살이 좋은 날은 일광욕을 누려 보도록 하자 7. 실수를 바로잡도록 노력하자 8. 여유가 생기거든 돈이 들지 않더라도 작은 선행을 한 가지라도 해 스스로의 가치를 올리고 자존감을 갖도록 해 보자 9. 상대방이 행동이나 약속을 요구할 때는 하루 이상 생각할 시간을 가져 지킬 수 있는 일인지 신중을 기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아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해 보자”(186쪽).

노동자에게 빵과 장미가 필요하듯이, 지상의 가난한 순례자에게도 따뜻한 밥 한 끼와 더불어 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름한 식탁 위에 풀꽃이라도 올려놓을 줄 아는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경향잡지> 2022년 8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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