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나라, 가톨릭과 개신교를 하나로 만드는 용광로
상태바
하느님나라, 가톨릭과 개신교를 하나로 만드는 용광로
  • 최태선
  • 승인 2022.08.15 16: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사진출처=flickr.com
사진출처=flickr.com

마태오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드린다. 마태복음에는 다른 복음에서 말하는 하느님 나라가 하늘나라로 불려진다. 여러 설이 있지만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읽거나 부르지 못한다. 그래서 히브리어의 기록된 하느님의 이름은 자음만 알 수 있을 뿐 모음을 알지 못한다. 하느님의 이름의 정확한 발음을 아예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오는 하느님 나라를 하늘나라로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를 마태오가 쓴 것일까. 이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자. 마태오 역시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마태가 예수의 제자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마태오의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오는 세리였다. 예수님은 세리인 마태오를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며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마태오는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 다른 제자들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마태오의 경우는 다르다. 마태오는 세리였다. 세리인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이 심각한 오점을 남기는 일이었다. 유대의 어떤 랍비도 자신의 제자로 세리를 선택하지 않았음은 물론 아무리 세리가 과거를 청산하고 제자 되기를 청해도 그것은 허락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세리라는 직업에 대한 유대인들의 인식은 확고했다. 세리는 유대인 법정의 증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문 것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시작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금기를 깨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건설의 서막이었다. 하느님 나라는 그런 나라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과장법이 아니었다. 세리는 유대인들의 원수였다. 예수님 자신이 그것을 증명하신 것이다. 여기서 세리의 원수 됨을 설명하지는 않겠다. 세리는 우리나라의 식민지 시절 조선인 순사나 앞잡이보다 더 원수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마태오는 그런 유대인을 위해 준비된 예수님의 제자였다. 세리였던 마태오 역시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변방으로 나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유대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한 걸음 떠나 유대인을 바라볼 수 있었던 그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를 썼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법정의 증인도 될 수 없었던 그가 쓴 복음서’의 의미는 마태오의 복음서가 역설적으로 가장 믿을만한 복음서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복음서 여러 곳에서 이런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첫 증인이었다는 사실도 마태오의 경우와 같다. 이렇게 복음은 역설을 통해 진리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신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복음이 지나칠 수 있는 인간이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어떤 경우에도 차별과 혐오와 배제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태오가 예수의 제자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에서 이 점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복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태오를 부르심으로 예수님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단지 예수님뿐일까.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열심당원 시몬과 같은 사람도 있었다. 특히 시몬에게 마태오는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멜팅팟(melting pot, 용광로.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 하나의 동질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단순히 사회적 장벽들을 허무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곳이다.

얼마 전부터 내 글이 가톨릭 매체에 칼럼으로 실리고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것을 바란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의 편집장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내 글을 가톨릭 신자들도 읽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일이 개신교 매체로부터 왔다면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힘과 영향력을 거절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의 경우는 달랐다. 나는 하느님 나라가 멜팅팟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다.

세리 마태오와 유대인들이 복음서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개신교 목사인 나와 가톨릭 신자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불가능은 인간의 일이다. 하느님은 그런 인간의 불가능을 넘어 일하신다. 마태오가 그 증거이며 본보기이다. 어떻게 세리와 유대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마태오를 부르셨고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를 쓰게 하셨다.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다.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들이 함께 모여 하느님 나라 공동체를 이룬다면 그곳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 일 앞에 조건은 없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오를 보시고 그를 부르셨다. 마태오는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다른 제자들이 세리이건 사마리아인이건 이방인이건 노예이건 여자이건 나병환자이건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하느님 나라를 멜팅팟이다. 인간들만의 나라도 아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미사나 예배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해야 한다. 그곳은 멜팅팟이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가 따로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물론 원수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통일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멜팅팟이다. 모든 사람들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곳이다. 그 사람들을 통해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온 우주다. 우리가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지엽적이고 사소한 일들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