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과 작은 자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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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과 작은 자들의 나라
  • 최태선
  • 승인 2022.08.0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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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이사 온 후 외출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우리 집은 4층이다. 일층 현관을 통해 들어오면 65계단을 올라와야 한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려면 83계단을 올라야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오려면 그야말로 숨이 턱에 찬다. 그래도 예전처럼 중간의 주인집을 지날 때 소리를 죽이던 긴장감은 사라졌다. 자유의 대가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더 이상 하체운동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몸이 더 노쇠하여 운동이 아니라 몸을 파괴하는 일이 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평균 네 번을 오르내려야 한다. 매일 계단 오르기 삼백 계단을 하는 셈이다.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더 많이 외출해야 하는 경우는 운동량을 늘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열심히 운동하라는 주님의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은 내가 기왕에 유념해 오던 것이었다. 주님이 나를 쓰실 때를 위해 내가 하는 두 가지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는 독서이다. 다시 두 가지 모두에 힘을 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이런 생각을 해도 실제로는 외출을 잘 하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4층에 고립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고립은 가장 영적인 사건이다. 생각해보면 이사가 내겐 영적인 사건이 된 셈이다. 새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생각이 새삼스럽다는 것 자체가 게으르거나 부족한 내 삶에 대한 성찰이 된다. 늘 최선을 다해 살겠다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삶에 대한 깨달음의 순간이다. 하지만 강박이나 노심초사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은 잔치로서의 삶이다. 주님은 원수가 보는 앞에서도 잔칫상을 차려주신다. 잔치는 즐겨야 한다. 주님이 먹보와 술꾼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을 나는 주님의 잔치를 즐기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앞집은 만민중앙교회의 명패가 붙어있다. 혼자 사시는 여자분인데 가끔씩 앞집에서 크게 틀어놓은 설교가 들려온다. 아래층에는 명성교회의 명패가 붙어있다. 내가 김삼환 목사에 관해 쓴 글들을 혹여라도 보게 된다면 단번에 원수가 될 것이다. 새삼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차려주시는 주님의 잔칫상이라는 표현이 무시무시하게 실감이 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명심해야 할 말씀이 있다. 황금률이다.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안에서 거의 사장된 주님의 말씀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그래서 그들은 원수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원수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은 것이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지 못하는 것이 나다. 선을 행하고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 나다. 나는 나에게 까부는 자를 박살을 내도 잘 만족하지 못한다.

오늘 아침에는 특히 황금률을 실천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되는 조건인 말씀의 “악해도”라는 말씀이 실감난다. 나는 내가 악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식을 하더라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악하다. 나는 방금 쓴 글의 내용처럼 기껏 말씀대로 실천하고도 마음 한 구석에는 후회가 남는 존재이다. 남을 박살냄으로써 통쾌하기를 원한다. 정말 악하다. 이것이 나의 본 모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황금률에 따라야 한다. 내 반사행동이 황금률의 실천이 될 때까지 경성해야 한다. 성서에서 나는 그것을 확인한다.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종으로 있는 이 여러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나는 이 말씀들을 황금률의 실천으로 이해한다. 성서는 가부장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노예제도를 찬성하지 않는다. 여성안수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말씀들이 성서에 있는 것은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가 황금률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주님을 대하듯이 함으로써 남편을 그리스도처럼 만들어야 한다. 종들은 육신의 주인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복종하여 주인을 자매와 형제로 만들어야 한다. 여자는 남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지배하지 않음으로써 남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평등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과 그리스도교의 변질을 확인할 수 있다. 변질된 그리스도교에서는 황금률의 실천인 이 말씀들을 반대로 해석함으로써 아내를 소유물로 전락시키고, 노예제도가 금지된 지금도 약자들을 노예 취급하고, 예수님의 해방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안수를 금지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과 계층과 폭력이 없어야 하는 교회에 그 모든 것들이 다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앙의 자유’이다. 신앙의 자유는 하나님의 승리가 아니라 사탄의 묘수였다. 그러나 이미 가부장제를 부활하고, 힘(돈)과 권력을 당연시하게 된 오늘날 교회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황금률은 어떤 의미일까.

당연히 어리석은 일이고 미친 일이다. 대세가 중요하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황금률이 대세였다. 그것을 행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것이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체화하고 그것은 그들의 삶에서 반사적인 행동으로 드러났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사 후 내게 주어진 상황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 이재록을 이해할 수 없다. 김삼환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추종하는 내 이웃을 멸시하거나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런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주어야 한다.

작은 일이지만 이미 그 실천이 시작되었다. 이사를 오자마자 앞집 여자가 내게 주차 자리를 바꿔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내 자리가 더 편리해보였나 보다. 앞집 여자의 주차 자리에 내 차를 주차시켜 놓았다. 바꾼다는 표시였다.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다시 자리를 바꿔달라는 것이다. 내 주차자리에 차를 주차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얌체라는 생각과 함께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 없이 그러시라고 하였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새삼 주님의 인도하심이 감사하다.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우쭐거리고 싶은 생각도 스쳐지나간다. 주님께서 내게 황금률에 도전하라는 과제를 주신 것이다. 가난해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생각이나 감정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위에 소개한 말씀들을 생각해보라. 왜 성서는 남편과 주인과 남자들에게 황금률을 실천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아내들과 종들과 여자들은 작아진 사람들이다. 황금률은 작아진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행동강령이다.

황금률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큰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란다. 하느님 나라는 작은 자들의 나라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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