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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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필요하다
  • 박규옥
  • 승인 2022.08.0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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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옥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포켓몬빵을 사겠다고 탄천을 건너오는 남자애가 있다. 아직 배송차가 안 왔다고 했더니 기다리겠다며 한 시간을 가게에 머물다 간 적이 있다. 한 시간 동안 이 아이는 이 얘기 저 얘기 하고, 나는 일하느라 잊고 있다가 이 아이가 불쑥 매대에서 머리를 내밀고
"아줌마,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
하면, 깜짝 놀라며
"너 아직 안 갔니?"
하다가 방금 폐기시킨 찹쌀도너츠를 나눠 먹고 그랬다.

며칠 전에는 자기 집이 11 단지에서 5 단지로 이사한 이유를 말해줬다. 자기가 붙박이장 속에서 귀신을 봤다나.
"아줌마가 교회 다니시면 제 얘길 안 믿으시겠지만요."
하길래,
"믿어, 근데 난 아직 못 만나 봐서 만나길 기다리는 중이야."
그랬더니, 이유를 말해달란다.

장화홍련 이야기, 영화 <식스센스> 이야기를 해줬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귀신들의 공통점은 억울해서 간절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라고. 그걸 들어주면 반드시 은혜를 갚는다고. 귀신은 죄 없는 사람은 괴롭히지 않으니까 난 귀신을 만나면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신 부자 되게 해달라고 할 거라고.

무서움과 이익 사이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며칠째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가려고 건물 입구를 들어가면 이상하게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 문이 저절로 열린다. 나란히 두 동인 엘리베이터 중 늘 오른쪽이 그랬다. 며칠째 계속 되니까 누가 나랑 비슷한 시간에 집에 가려고 눌렀다가 옆에 것을 탔나보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누가 오르고 내린 흔적도 없고 두 대 중 한 대가 움직이면 나머지 한 대는 움직이지 않는 방식이라 내 추측이 맞을 리가 없어 보였다.

어젯밤에도 그러니까 갑자기 귀신이 들렸나 싶어 타기가 무서웠다. '기회가 왔다, 귀신을 만나자!' 이왕 열린 문을 두고 돌아나오기 싫어서 그렇게 다짐을 하고 탔다. 거울 속에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면 놀랄까 봐, 거울 속과 천장을 꼼꼼히 들여다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했다. "귀신은 문만 열어놓지 말고 직접 나타나길 바란다. 공포 영화도 직접 나타날 때보다 나타나기 전이 무서운 법, 그만 간보고 직접 나타나줘라. 이제 나도 부자가 돼야할 것 아닌가!"

포켓몬빵을 사러 다니는 애가 귀신을 봤다고 하니까 자동으로 열리는 문에서 귀신을 떠올리는 걸 보면 어릴 때 받은 어머니의 교육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우리 자매들은 독실한 신앙인인 어머니에게 교리(?) 교육을 받았다. 모태신앙인 우리는 어머니에게 배운 식전 기도 같은 정식 기도는 형식적으로 따라하는 수준이었지만 어머니 나름으로 해석한 생활밀착형 교리는 따르지 않으면 큰벌을 받는다고 믿었다. 밥을 남기거나 형제 자매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하느님이 다 보고 기억하고 계시다가 적재적소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벌을 내린다고 믿었다.

살아서 벌을 받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서도 받는다는 것이었는데 그 벌이란 것은, 밥을 먹을 때 흘리거나 남긴 밥을 지옥에서도 계속 먹어야 하는 벌, 형제 자매에게 했던 행동들을 지옥 영혼들에게 계속 되갚음 당하는 벌...등등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무슨 잘못된 일이 있을 때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시련이 내게 생기는 것일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어느 때 누군가에게 준 상처가 이렇게 벌이 돼서 돌아오는가 보다 생각하면 눈앞에 닥친 괴로움은 그렇게 못 받아들일 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꼭 귀신이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나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무서운 어떤 것이 있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죄를 짓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경고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면 귀신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이 무섭다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박규옥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십여 년간 학원에서 국어 논술을 가르치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문학 석사를 거쳐 문예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3년여 시간 동안 심혈을 쏟아 중국 기업 조사와 관련된 사업체를 운영하다 돌연 접고 편의점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운영하며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일이 바코드 찍은 일보다 체면치레는 될지 몰라도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하던 일을 과감하게 접었다. 이제는 작은 가게에서 시간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단순한 노동을 하며 산다. 지금은 경기도 분당, 오피스텔이 있는 한적한 동네에서 GS25 편의점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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