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관하여-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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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관하여-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
  • 김혜경
  • 승인 2022.07.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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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의 명화 속 사유와 현실-1

언젠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 내 이야기를 꺼냈고, 한 사람이 나를 걱정해주는 것처럼 말을 했으나 실제 내용은 나를 험담하는 거라고, 그 자리에 함께했던 한 ‘친구’가 전해 주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나는 말을 한 사람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 둘 다 휴대폰에서 지웠다.

라틴어에 ‘콘글루티오(Conglutio)’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글루텐(Glutine), 아교, 접착제라는 뜻의 ‘글루티오(Glutio)’와 ‘함께’ 혹은 ‘~와’라는 뜻의 접두어 ‘콘(Con)’의 합성어다. 그러니까 ‘~와 결합’이라는 뜻이다. 이해하기 쉽게, 곡물류에 함유된 단백질 혼합물의 접착성분인 글루텐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바로 이 글루텐을 없앤 글루텐-프리(Gluten-free) 식품을 떠올려도 좋다. 따라서 이탈리아어로 동사 글루티레(glutire)는 접착제처럼 ‘달라붙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 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예술 작품이 있어 그것을 소개한다.

카라바조 출신의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흔히 ‘카라바조’로 부름)가 그린 <다윗과 골리앗> 초기 버전, 1607년 작(作)이다.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란누쪼 토마소니를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나폴리에서 그린 작품이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과거 프란체스코 델 몬테(Francesco Del Monte) 추기경의 관저(Palazzo Madama)에서 안락하게 지내던 때를 회상하며, 자신과 추기경의 에피쿠로스적 관계를 다윗과 요나탄의 관계로 표현한 걸로 유명하다. 즉, 친구 사이 두터운 우정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지만, 의도적인 아타락시아(ataraxia)보다는 스토아학파에게 이상적 삶인 아파테이아(Apatheia)에 더 가까운 의미이다.

 

카라바조, “다윗과 골리앗”(1607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카라바조, “다윗과 골리앗”(1607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지금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에 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사울의 막사로 와서 모험담을 이야기했을 때 그의 말을 경청한 사람은 사울이 아니라, 그 뒤에 있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었다. 강한 질투심을 느낀 속 좁은 사울 왕과는 달리, 하느님의 길을 충실하게 따르고자 했던 요나탄은 그 순간 다윗의 눈과 마주쳤다. 시선을 멀리 둔 다윗과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요나탄을 카라바조는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앞서 사무엘 상 18장 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골리앗을 죽이러 가겠다고] 이야기를 다 하고 나자, 요나탄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처음부터 요나탄이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있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나중에 요나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 또한 “몹시 슬퍼하며 자신의 옷을 찢고, 저녁때까지 단식하며 애도했다”(사무엘 하 1장)라고 하니, 이들이 서로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다윗과 요나탄의 우정의 주도권은 힘없는 다윗이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자 요나탄에게 있었다. 사무엘 상 20,1-42절은 왕자 요나탄이 다윗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요나탄은 다윗을 정적으로 여기고 얼마든지 외면하고, 아버지 사울의 소원대로 백성들의 마음에서 다윗을 밀어내고 자신의 자기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요나탄은 신분과 나이를 초월하여, 사사건건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 사울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고,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편들어주고 변호해 주었으며, 절대권력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한편, 친구에게 살길을 알려 줌으로써 영원한 벗이 되어 주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정을 끝까지 지키고 지지해 주는 한편, 왕의 자리까지 내어주었다. 시련 속에서 우정의 꽃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보여주는 장엄한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에로스(Eros), 스토르게(Storge, 부모-자식 간 혈육의 사랑), 필리아(Philia, 우정), 아가페(Agape) 등 네 가지로 이야기하곤 한다. 다윗과 요나탄의 관계는 필리아로, 여럿 가운데 어떤 것을 ‘특별히 선호하는’ 걸로 이해되기도 한다. 바로 이 그리스어 필리아의 라틴어 표현이 콘글루티오, ‘결합-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어와 비교해 라틴어 표현이 이들의 우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자들은 하나같이 친구를 사귐에 신중하라고 했다. 교우(交友)의 중요성을 ‘친구는 제2의 자신’,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친구는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모든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인간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다윗과 골리앗”(1609-1610년), 로마의 보르게제 미술관

카라바조가 도망자 신세가 되어 객지를 떠돌 때, 델 몬테 추기경은 그의 살인죄를 탕감해 달라고 교황께 끊임없이 상소문을 올렸다. 모든 사람이 카라바조의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에 돌을 던질 때, 추기경은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영혼이 진정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보았고 그의 인간적인 나약함에 더해 재능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추기경은 교회 안에서 갈릴레오를 도와준 큰 후견인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바로크 시대 초기, 그 위험한 시대에도 예술과 과학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결국 그의 노력으로 카라바조는 죄를 탕감받았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그것을 누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기쁜 소식을 들으러 로마로 들어오는 초입, 헤라클레스 항구에서 그는 또 다른 <다윗과 골리앗>(1609~1610년)이라는 작품 속에 고뇌하던 자신을 두 인물에 자화상으로 남긴 채,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김혜경 세레나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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