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 한옥을 통째로 주워오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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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 한옥을 통째로 주워오기로 했어요
  • 장진희
  • 승인 2022.07.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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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살려낸 것들 3 - 무주에서

엄청나게 큰 용담댐을 만든다고 진안군의 대여섯 개 면이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대재앙입니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는지, 장독대고 뒤안이고 집안 곳곳에 배어 있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숨결, 몇 대째 허물어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제각과 그 밑에 묻혀 있는 터주의 역사와 사연, 다락 구석에 처박힌 채 잊혀진 할아버지 문서, 칫간 시렁에 얹혀 두터운 먼지 뒤집어쓴 초등학교 때 일기장,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자취...... 그 모든 것이 물에 잠깁니다. 이유도 모르고 들은 소식도 없이 졸지에 물과 함께 가라앉을, 태고 이래로 이 땅에서 생명을 이어온 뭇 생명들까지.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통일이 되면'이라는 희망이라도 있고, 그 마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그곳에 있기는 하니, 수몰민보다는 처지가 나은 편입니다. 형편이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아 물에 잠기지 않은 지대, 새 터에 집을 지었습니다. 면사무소도 우체국도 새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썰렁하기 짝이 없습니다. 손때 묻어 익숙한 대문, 바위이끼 포근히 끼어 있는 꽃밭 가름돌, 담 너머로 그 집 식구들 보일 듯 말 듯 하던 돌담...... 세월의 이끼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이불이었는지, 크고 깨끗하고 좋은 집이 헛헛하기만 합니다.

얻어 살고 있던 남의 집을 비워 줘야 합니다. 시골 내려온 지 2년차인 주제에 집을 짓고자 나섭니다. 돈이 별로 없으니까, 문짝이든 서까래감이든 되는 대로 주워 와야 합니다. 용담댐 수몰예정지를 돌아다닙니다. 지은 지 20년밖에 안된 아담한 네 칸 부연집도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포크레인이 와서 모두 부수고 긁고 치우겠습니다만...... 다행히 그 집을 통째로 주워오기로 합니다. 오랫동안 한옥을 지어온 동네 목수분을 모시고 가서 고스란히 뜯어다 다시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할 수 있으시겠답니다. 그날로 우리는 한 팀이 되어 그 예쁜 집을 옮겨다 짓기 시작했습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하아! 단풍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입니다. 집 지을 터 아래로는 덕유산에서부터 흘러온 개울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집 뜯으러 다니는 길은 가장 아름다운 물들만 모여 금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 나 있습니다. 쉬임없이 열심히도 흘러가는 그 물줄기들의 여정을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그 물줄기들 소리가 들리는 음악이 있어 크게 놀라 제목을 물으니, 스매타나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강'이랍니다. 그 속에는 있었습니다. 샘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아침햇살 쏟아지고 산새들 지지대는 바위계곡을 지나, 우리 집터 아래처럼 아기자기 사람살이와 얽혀 불미나리도 키우고 물고기도 키우는 냇물로 재잘대다, 으와! 거대한 강물이 되어 유유히 흐르는, 그리하여 바다로 흘러가는 물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점점 더 낮은 곳으로, 드디어 바다로! 자유의 품으로! 탱그리의 품으로! 사람살이도 그렇게 흐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일일 것입니다.

정여립이 혁명세상을 꿈꾸며 빨치산 했던, 수백 명 밥을 지어 먹였다는 돌솥이 숨어 있는 천반산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물줄기는 흐릅니다. 절벽 사이사이로 단풍이 기가 막힙니다. 참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물줄기는 절벽단풍 밑을 기어가다가 죽도에서 휘돌아 뜬봉샘에서부터 달려온 물줄기와 상봉합니다. 눈물이 다 날 지경으로 아름다운 그 길을 따라 집을 뜯으러 다녔는데, 이제는 죽도까지 그렇게도 살뜰히 흘러온 물들이 거대한 감옥에 속속 갇히기 시작합니다. 용담댐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지붕을 걷어내어 서까래를 챙기고, 들보며 도리기둥이며 번호 써서 내리고, 흙벽 허물어 기둥 번호 매기고..... 집을 뜯어내는 데 사흘이 걸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구들장을 뜯어냅니다. 구들장 밑 속사정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아궁이며 굄돌 사이사이의 연도며 개자리가 하나하나 드러납니다. 조금이라도 열기를 내보내지 않으려는 꼼꼼하고 단단한 구조입니다. 최소한의 장작으로 밥 짓고 물 덥히고 방 덥히고, 그러고도 오래오래 불을 가두어두려는 지혜를 대하자 가슴이 먹먹하고 뻐근해집니다.

"구들장 고치는 해에는 농사 질 것도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연도 사이에 두텁게 붙어 있는 그을음, 오랜 세월이 까망 윤기를 만들어 숯가루처럼 반짝이는, 기가 막히게 건 거름입니다. 부수입으로 그 까망 그을음 가루들은 푸대자루에 잘 쓸어담습니다.

그렇게 뜯어온 구들장에다 수몰지역 다른 곳에서 뜯어온 구들장 좀 보태 이웃 마을 할아버지가 구들을 놓아 주었습니다. 우리 집 구들은 참 잘 놓아졌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처럼 아궁이에 불 때서 밥을 지어먹지는 않지만, 한겨울에도 해거름에 장작 너덧 개만 넣어 놓으면 다음날 해거름까지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수몰예정지에는 하이에나들이 다닙니다. 고가구며 골동품이며, 심지어 확독까지 촌로들 꼬드겨 몇 푼 던져주고 인사동에 장식품으로 판답니다. 그 다음으로는 고물상 하는 양반들이 또 수몰예정지를 훑고 다닙니다. 헌 문짝이며 비닐하우스 뽈대며 망가진 농기계며...... 하여간 사람 사는 일은 그렇게도 복잡다단, 다정다감합니다. 아직 쓸 만한 호미자루, 낫자루, 금간 항아리며 이 나간 막사발까지, 별것들이 다 재활용됩니다. 마지막으로 구들장을 뜯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잣집 마당 조경용으로 판답니다.

더 늦기 전에 구들장을 확보해야겠습니다. 그전에는 구들돌 캐는 산이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캐는 데가 없다 합니다. 이웃들 손을 모아 앞으로 구들 놓을 사람들 생각해서 구들장을 뜯으러 다닙니다. 한 차, 두 차, 세 차....... 고물 1톤 트럭이 진가를 발휘합니다.

또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되어 구들장을 뜯어내며 처음 그 구들을 놓았을 사람들을 그려봅니다. 장가가서 저금 나와 새 방을 들였다면 그 얼마나 알콩달콩했을 것이며, 새끼들 주렁주렁 득시글거리는 안채 옆으로 사랑채 구들 들일 때 또 얼마나 재미졌겠습니까?

그 구들장 위에 몸 뉘였을 고단한 육신들을 떠올려봅니다. 동녘에 어스름 빛 돌기 시작하면 일어나 왼종일 논으로 밭으로...... 삭신이 쑤시고 에리면 아궁이에 불 지펴 저녁 해먹고 허리를 지지던 구들장. 문풍지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대도 볏집 섞은 흙벽, 자글자글 끓는 구들장 위에서라면 우리네 삭신은 으스스 풀어지고 꼬득꼬득 되살아나 새 아침 또 개운하게 밝아오곤 했지요.

기름값이 비싸져서 요새 시골은 장작보일러, 화목 보일러 신기술 어쩌고 무진 애를 씁니다. 도시의 난방은 제껴두고요. 난방뿐 아니라 도시는 그 자체가 에너지 잡아먹는 귀신이니까요. 그래도 구들처럼 좋은 불기는 본 적이 없습니다. 구들처럼 간편하고 경제적인 온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 좋은 것들을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돈맛' 든 치들이 앞장섰습니다. '경제'가 최우선 가치가 되고, 당연히 욕망을 채우고 편리함을 누리는 것이 최고라고 거들먹거렸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후회하고 말 일을......

오지일수록, 말하자면 해먹고 살 것이 없어 궁색한 곳일수록 아직 구들방 남아 있는 집이 많습니다. 좀 산다 하는 자식들이 있는 집들은 우리나라가 한참 잘나간다고 생각하던 때, 효도 한다고, 부모님들 나무 해다 불 때기 힘드실 거라고, 구들장 뜯어내고 전부 기름보일러로 바꿔드렸습니다.

그러고는 언제부터인가 시골의 부모님들은 기름값 무서워서 보일러는 틀 생각도 못 하시고 엄동설한에 온기 하나 없는 집에서 전자파 찌릿찌릿 나오는 전기장판을 깔고 주무십니다. 그나마 구들장을 뜯어내거나 아궁이와 굴뚝을 메우지 않은 집들이 부럽습니다. 그랬더라면 조금만 손봐서 도로 구들장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삭신을 지질 수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불효는, 죄는, 마음이 나빠서만 짓는 게 아닙디다. 어리석음이 지은 죄! 그 얼마나 무서운가요. 하긴 진짜로 마음이 착한 사람은 어리석을 수가 없습디다만. '경제'를 외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지혜'를 외치는 대통령이 나오면 적극 지지하렵니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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