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과 몸 파는 명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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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과 몸 파는 명자씨
  • 최태선
  • 승인 2022.07.2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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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한국일보
사진출처=한국일보

평생 결혼 하지 않았던 권정생 선생에게는 명자라는 여인이 있었다. 열여섯이면 사랑을 알 나이다. 그들은 그러나 잠시 만났던 것을 인연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명자가 서울로 떠난 것은 늦가을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명자는 어느 윤락가에서 웃음을 파는 여자로 전락해 버렸다고 했다...가엾은 운명에 목이 멘다"(아동문학가 권정생 수기 중에서)

권정생 선생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그의 아픔이 전해져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어느 윤락가에서 웃음을 팔게 되기까지 명자의 삶은 얼마나 팍팍했을까. 반복되는 성폭력과 아무리 해도 살 수 없었던 그녀의 현실이 눈에 선하다. 하느님은 왜 그토록 신실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주시지 않았을까. 평생을 종지기로 산 권정생의 아내가 되게 해주시지 않았을까.

새삼 유대인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나오는 ‘죽음의 나무’가 생각난다. 유대인들은 죽어 심판의 자리에 서기 전 죽음의 나무 앞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자신의 삶에서 억울했던 부분, 부조리했던 부분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달라진 자신의 삶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삶을 재구성해 본 후에 억울하거나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삶을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하나님께 그런 항의를 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최선의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유대인들처럼 인류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민족은 없다. 권정생이나 명자만 삶이 억울한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이들보다 억울하고 부조리한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철회하지 않았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연합군의 미군 병사는 유대인들의 전승이었던 이 찬송가의 가사가 아우슈비츠 가스실 앞 벽에 손톱으로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가스실에 들어가 죽은 유대인들도 그들이 들었던 대로 죽음의 나무 앞에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해보았을 것이다. 그들도 하느님께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입으로만 영원한 삶이 있다고 주장할 뿐 그들의 삶은 전혀 영원한 삶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랴.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다. 오늘도 수많은 교회들에서는 ‘그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찬송으로 부르고 ‘왕이신 나의 하느님’을 눈물을 흘리며 부를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스스로 영원한 삶을 무시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찬양이 공허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명자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라.

“어느 학교 선생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공부가 하고 싶어 야학을 다니곤 했어. 그러다 메리야스 보따리 장수하는 아주머니를 만나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지 않았겠어. 대구와 부산을 기차로 오가며 말이다. 한데 어느 날 물건 떼서 그 아주머니와 기차를 타려다 아주머니 찾느라 기차를 놓치고 말았지 뭐니. 대구 집에 도착한 아주머니가 난리가 났어. 명자 이년이 내 짐을 가지고 도망갔다고... 오갈 데 없는 고아년 거두었더니 도둑년이라고... 내가 밤기차 타고 10시간이나 걸려 뒤늦게 도착했을 때 동네 분들과 나를 흉보고 계시더라고...”( ‘밀알’[1990년]지)

이 상황을 잘 생각해보라. 자신을 보따리 장사 하는 아주머니라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라. 오지 않은 명자를 걱정하기보다 그 아주머니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은 신앙의 삶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이사 온 후 매일,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그분에게 준비했던 돈봉투와 선물을 전해드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젠 통화중이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그분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내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은혜를 갚겠다는 그분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돈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은혜이고 신실함이다. 무엇이 그분의 삶을 그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아마도 고단한 그분의 삶이 그분을 그런 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분이 죽음의 나무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하느님께 항의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그분의 삶과 인격을 우리는 마음대로 무시한다.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고 판단한다. 다른 누구가 아닌 내가 그랬다. 나는 그분이 말로는 은혜를 갚는다고 했지만 자신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바라고 내가 돈 주고 버려야 할 짐들을 버려주었다고 생각했다. 나를 만나 당신이 버려준 짐들에 지불해야 할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고 기뻐할 줄 알았다. 내 생각과 판단이었고 그것은 보따리장수 아주머니가 명자를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나는 교만했고 함부로 판단했고 그분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부끄럽다. 정말 부끄럽다. 그분에게 확인한 적은 없지만 그분은 나보다 더 영원한 삶을 현실로 인식하는 삶을 살고 계시다. 그런 분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했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맞다.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면서 반대로 가난한 사람을 무시했다. 날마다 가난을 예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산다고 떠벌리던 내가 기껏 가난한 분을 만나 그분을 무시했다.

새삼 그분 역시 하느님 학교의 선생님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천사였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나 경성해야 그런 모순의 삶을 줄일 수 있을까. 정말 경성하고 또 경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사람은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지만,
부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따른다.”

그렇다.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내 신앙의 바로미터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일에 실패했다. 또 다시 이 일에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일이 내게 ‘병가지상사’가 되는 것이다.

권정생 선생은 10여 억원에 이르는 전 재산과 매년 1억5000만 여원의 인세를 남한의 가난한 어린이들과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았고, 몸을 파는 여자가 되었던 명자와 같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우리의 신앙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잘 사는 것이 하느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내게 일깨워주신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할머니께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다시는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어떤 인생의 부조리 앞에서도 하느님을 미워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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