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하느님-성부는 침묵하고 성자는 죽었고 성령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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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하느님-성부는 침묵하고 성자는 죽었고 성령은 아직 오지 않았다
  • 문지온
  • 승인 2022.07.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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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온 칼럼

벼랑 끝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검은 학생모에 검은 교복을 입은 소년. 소년이 딛고 서있는 발 아래 바위는 움퍽 패어있고, 무슨 이유에선지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돌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바윗돌 위에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체념한 것일까? 소년의 표정은 담담하고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도 단정하다. 소년의 시선은 앞을 향해 있다. 저 멀리 마주보이는 곳에 자신이 가야할 곳이 있다는 듯.

위태롭게 소년이 서있는 벼랑 아래에는 군데군데 돌무덤이 쌓여 있다. 누군가 낙석들을 일부러 모아 만들어 놓은 듯. 그런데 돌무덤을 이루는 크고 작은 돌들이 이상하다. 그 안에 사람을 품고 있다. 돌멩이 하나하나가 석화된 사람의 유해다. 다시 벼랑 위로 올라와서. 소년의 등 뒤에는 검은 볼펜으로 여러 번 덧입혀서 굵고 진해진 글씨가 써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벼랑 끝의 소년. 그를 만난 것은 막내오빠가 책상 위에 펼쳐놓은 노트에서였다. 그때 나는 중2, 오빠는 고2로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오빠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어쩌자고 내가 볼 수 있도록 노트를 펼쳐 놓았는지 모르겠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강한 충격을 받았고, 언제라도 오빠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커다란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꼈다. 다섯이나 되는 오빠 중에서 가장 많이 싸우면서 자랐지만 제일 친하고 좋아하는 오빠였기 때문이다.

언어로 분명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배운 소년, 뒤로 물러나는 것을 ‘실패와 수치’로 여기고 꾸짖는 환경에서 자라난 소년이 길이 끊어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취하게 되고 취할 수밖에 없는 행동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다행히 오빠는 또래 남자아이라면 한 번쯤 저지를 법한 일탈행동도 없이 순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그 시절을 지났다. 오빠가 그린 ‘벼랑 끝의 소년’도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적어도 코비드-19가 시작되고 당연한 듯 누렸던 일상이 무너지기 전에는.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코비드-19가 내게 입힌 타격은 컸다. 우선 일감이 끊어지면서 경제적으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몸과 마음의 문제가 하나씩 불거져 나왔다. 온 몸이 고장 난 신호를 통증으로 보내왔고, 통증으로 인한 불면의 밤이 이어지면서 급성우울증을 의심할 만큼 깊은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그 정도의 고통은 견딜 수 있었고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에도 겪은 적이 있고 그때마다 글을 쓰거나 도보순례를 하면서 통과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한때 나의 ‘구원’이라고까지 고백했던 글은 쓰고 싶은 갈망조차 생겨나지 않았고, 도보순례는 몸과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떠날 수가 없었다. 고통은 커졌는데 고통을 견디고 넘어서는데 유용했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니 곱절로 힘들고 괴로웠다. 비로소 내가 동반하고 있는 젊은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던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밤마다 자기 전에 선생님이 믿는 신에게 기도해요. 제발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총체적 위기 속에서 생각난 것이 오빠의 그림이었다.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년. 소년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지면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즈음이었다. 토마시 할리크(Thomas Hakik)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읽었던 것은. 지인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재미있었고, 흠뻑 빠져서 읽어 내려갔던 나는 한 문장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성부(聖父)는 침묵하고 성자(聖子)는 죽었고 성령(聖靈)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대목이었다. 아!, 소리가 절로 났다. 지금의 내 상태를 신앙적인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것 같았다. 온전히 이해 받고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희미하지만 희망도 생겨나는 것 같았다.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지금 오고 있는 성령 하느님이 계시다는 데서 오는 희망...!

벼랑 끝에서 기도했다. 앞을 보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거칠지만 간절하게 하느님께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느님, 저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주검으로 이렇게 더 이상 살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알아야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지, 저에게 관심이 있으신지!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징표를 주십시오. 제가 환갑이 되는 날,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당신이 살아계심을 믿고 의심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 도전은 받아들여졌고, 보여주십사 청했던 징표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친구를 통해 주어진 그 표징 앞에서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라고. 원망도 했다. 그렇게 다 보고 다 듣고 계셨으면서 왜 그동안 그토록 침묵하셨냐고. 당신의 침묵 앞에서 내가 얼마나 춥고 외로웠는지 아시냐고. 하느님의 대답이 들려왔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차오른 그 말씀은 예상 밖이었다.

“너는 왜 나를 찾지 않았느냐? 나는 네가 불러주기를,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그분의 이름을 불렀던 순간들, 특히 벼랑 끝에 서있는 젊은 친구들을 위해 쏘아 올렸던 많은 기도들이 생각나서, 억울했고 대들고 싶었다. 그 많은 기도들을 잊으신 거냐고.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올린 기도는 대부분 습관적이었다. 하느님, 당신께서 내 기도를 귀여겨들으시고 내가 동반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만져주실 거란 확고한 믿음도 없었고. 빳빳이 들었던 고개를 수그리고 죄송하다, 말씀드렸다.

그 후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벼랑 끝에 있다. 경제적인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몸도 여전히 고장 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문득문득 깊은 우울과 절망에 빠지긴 하지만 대체로 평화롭다는 것이다. 벼랑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벼랑 끝에도 하느님은 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벼랑 끝의 하느님은 그 어느 곳에서보다 더 연민어린 눈으로 나를 지켜보시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평화다.

 

문지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을 통해 따뜻함에 이른다"는 뜻으로 필명을 문지온으로 정했다. <남은 자들을 위한 800km>(ekfrma, 2016)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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