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마음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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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마음은 살아있다
  • 엄문희
  • 승인 2022.07.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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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문희 칼럼
사진=엄문희
사진=엄문희

오래 전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제목은 어떤 이의 이름이었다. 며칠 전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앞에서 야외 상영회가 있어서 새롭게 기억되었다. 그 영화에서 북미지역에 오래 전 부터 살았던 이들의 이름짓기 전통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인식하는 그들의 이름은 삶을 단정 짓지 않았고, 그래서 역동적 가능성과 연민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최후까지 백인에게 항전했던 나바호족 추장의 이름은 [검은 잡초]였다. 어떤 여자의 이름은 그의 남편이 지어주었는데 [그 눈 속에 파란하늘과 하얀 구름]이었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부모나 어른이 일방적으로 짓지 않았다. 대다수 문화권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가 아이의 인생에 바라는 의미를 담는다. 그것은 곧 어른 세계의 욕망이 아이의 이름에 투영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가 자기 의지로 처음 무엇인가를 했을 때, 어떤 독특한 사건이 생길 때,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일로 그 이름을 짓고 바꾸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은 그의 삶에서 얻어지는 셈이다.

[부러진 다리는 멋있어]라는 이름이 있다. 어떤 아이가 높은데서 뛰어내리기 시합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졌는데 실의에 빠진 아이의 용기를 북돋고 회복을 기원하는 의미였다. [머리 맡에 두고 자라]는 늘 물건을 잃어버리는 아이의 이름이다. [늑대 목걸이], [달과 함께 걸어라], [독수리의 날개를 펼쳐서], [행복하게 춤을 춰], 모두 유적을 통해서 실제 확인된 이름이라고 한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12시간 만에 신발을 벗으며 불쑥 내 이름 하나를 지었다. 부서진 마음은 살아있다. 부서진 마음은 살아있다. 

 

엄문희 
혐오와 희생의 시스템으로 파괴되는 세계를 응시하며 국가폭력에 빼앗긴 목소리들의 투쟁을 위해 2016년 부터 강정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며, 여성병역거부자이고, 모든 동물들의 친구다. 1991년 부활절에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전쟁에 동참하는 군종교구와 여성불평등에 질문하며 세례명으로 호명되기를 거부한다. 가톨릭이 전쟁을 묵인하는데 그치지않고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군종교구를 운영하는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여성을 아직도 교회의 부차적인 대상으로 두면서 '생명존중' 언설을 내놓는것에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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