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영성체, 아이에게 억지로 받게 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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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영성체, 아이에게 억지로 받게 해도 좋을까
  • 이슬
  • 승인 2022.07.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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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이야기
그림=이슬
그림=이슬

작은 아이도 어느 새 자라 첫영성체를 받았다. 열 살이 되면 성당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영성체를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한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교리 공부를 하고, 주요 기도문을 외우며 신부님과 면담을 하고 첫 고백성사를 보게 된다. 그렇게 그 시간들을 잘 보내고 나면 마침내 첫 영성체를 받는다.

왜 꼭 그 나이여야 하는 건지 명확하게 말해주는 이는 없지만 내 나름대로 열 살은 아직 순수함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른으로 가려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가장 영특하고 신비로운 나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알려주는 것 그대로 의심 없이 흡수하면서 제 나름대로 현상을 제법 잘 이해 해 갔다. 때로는 내 설명이 막히는 어떤 부분에서도 오히려 반대로 자기가 이해한 것을 풀어 놓는데, 참 그럴 듯 하다고 저절로 끄덕여졌다.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벌써 두 해 째 가정교리를 병행해서 하기로 결정 되었다는데, 아이 혼자 해나가길 바라만 보기보다 매주 토요일 한 시간씩 6개월 동안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공부 해 가는 것은 참 좋은 결정 같았다. 아이와 가정에서 함께 공부하려면 부모도 따로 부모교육을 받는다. 아이들 보다 한 주 먼저 교육 받고 받은 내용을 그 주에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다. 미리 부모와 가정교리를 한 아이들은 다시 같은 교리를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내용을 보충하고 이해한다.

많은 인원이다 보니 부모들은 그룹으로 모아지고 부모들의 교사는 이전 해에 첫 영성체를 받은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매 주 한 분씩 오셔서 수고해 주셨다. 교리 책의 주제에 따라 함께 공부하는데, 주로 정답이 없는 답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로 함께 풀어 놓는 방식이 부모교육의 방식이었다. 매주 다른 주제로 교리를 시작하지만 어떤 주제로 시작하든 모든 부모님들의 관심사는 하나인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까.

이곳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만 그 속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조금은 멀찌감치 떨어져 그려지는 풍경들을 보고 듣는다. 성당 입구에는 코로나 전에 활발하게 카페를 운영 했던 듯이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린이 미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날은 첫 영성체와 세례 받을 친구들의 신청 날이기도 해서 그런지 공간이 북적였다. 말동무도 없이 낯선 곳에 혼자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색해지고 지루해질 쯤에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로 그러려고 한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몰래 엿듣게 되어버렸다.

두 엄마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엄마가 다른 엄마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어갔다. 그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어렸을 적에 세례를 받았고 성당을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종교를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시댁을 만나게 되면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웠고 점점 더 멀어져 가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몇 번이고 아이가 세례 받게 하고자 했지만 그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제법 커버린 아이는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듯 했는데 아이는 왜 아빠도 믿지 않는 종교를 본인은 믿어야 하는지, 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엄마의 강요로 해야 되는지 물음을 던진 것 같았다. 그 엄마 안에 오래 된 어떤 죄책감 비슷한 것이 이번 신청 일에 여기까지 와 있게 했지만 거부하는 아이를 두고 마음 안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심하게 이는 것 같았다.

"가끔 그런 생각도 했어요. 부모가 믿어 왔다는 이유로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종교를 정해 주는 게 맞는 걸까. 아이가 다 자란 후에 스스로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고 결정하게 하는 게 맞는 건 아닐까 하고요. 아이가 왜 가야 하느냐고 하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분명 작은 소리의 대화였는데도 한 엄마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내 귀로 선명하게 들려와 내 가슴도 요란하게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매우 긴장되고 곤두세워져서는 더 통화를 이어가기 위해 창가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네 알아요. 무슨 말인지 아는 데요 어머니, 제가 믿음이 없고 잘 모르는데 어떻게 애한테 계속 그렇게 하라고만 할 수 있냐고요....." 세대를 이어 손주에게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을 전하고픈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가닿으려 하면 할 수록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데 이미 생각이 커버린 아이까지 설득하기에 며느리는 고달파 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엄마들의 고충이 그대로 닿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사랑의 하느님을 전하고 소개하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싸우고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전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값진 것이기에 그러겠냐고 어렵게 얻을수록 더 큰 축복이 있는 거라고 그렇게 두루뭉술하고 그냥 하는 말 같은 것은 싫다. 부모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니 아이를 이끌어줄 역량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생각조차 별일 아닌 것처럼 남들처럼 무작정 그냥 하라고 하면 되는 것이라 여길 수 없었다. 신앙교육을 하지 않는 것처럼 학교나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있냐는 권위 있는 이들의 야단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를 지치게 한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음에도 새 공동체 안에 들기도 전에 아이와 나는 도태 된 인간처럼 주눅 들고 비교되며 죄책감 비슷함을 가지게 된다. 아이에게 내 사랑의 하느님을 전하려는데 아주 작은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큰 아이가 첫 영성체를 받을 때에 나도 그랬었다. 그 동안 어린이 미사 참석도 주일 학교도 잘 했었고 아는 얼굴들도 익혀서 전혀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고집과 주장이 강한 큰 아이는 도리어 첫영성체를 받기로 할 때에 강하게 거부를 했다. 어떤 말로 사정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것을 엄마 때문에 억지로 갔던 거고 이제부터는 다니지 않을 거라고. 죽고 싶을 만큼 싫다고 말하는데 겨우 이제 열 살 살이에 그런 말을 하니 온 몸이 녹아내리는 듯 했다.

아이가 싫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느냐는 남편 앞에서는 엄마가 하려는 어떤 것도 존중 받지 못하고 부부가 한 마음으로 살지 못하니 아이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바락바락 남편 탓을 했었다. 살살 달래서 일단 데려 가기만 하면 그 다음은 다 괜찮다고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거라는 친정 엄마 앞에서, 나는 이렇게 거부하는 아이를 어떻게 데려갈 수 있냐고  항변했다.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무작정 차에 태워 가는 건 너무 폭력적이라고 너무 힘들다고 바락바락 호소했다. 그날 어린이 미사에 혼자 앉아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던 나를 기억한다. 도무지 정돈될 것 같지 않던 그 상황이 너무 무겁고 사나웠었다. 그때에 나에게, 지금 여기 있는 엄마들에게 잘 못한 게 아니라고 엄마 탓이 아니라고 등을 쓸어 주고싶다.

교회 안에서 스스로를 닦고 단련한 후에 세상 속에서 하느님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라든지, 교회 밖에서 철저히 부딪히고 깨져 가는 거칠은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해 가든지, 아이가 삶으로 진정 하느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고픈 부모의 마음은 하나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어떤 하느님의 이야기도 그 분을 향해 가고자 하는 어떤 길도 그저 곁에서 들어주고 그저 곁에서 응원해 주고 싶다.

그날 혼자서 어린이 미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동네에 사는 필리핀에서 온 벨 언니와 딸 선이를 태우고 함께 돌아왔다. 시무룩한 내 모습을 보면서 벨 언니가 서투른 한국말로 이야기를 꺼냈다. 선이 아빠도 아이가 성당에 가는 걸 이해 해 주지 못 한다고. 그렇지만 필리핀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꼭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배워서 선이 아빠에게 이것만은 하겠다고 했다고. 서투른 한국말 이였지만 그 뜻은 어느 때 보다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말 안에서 선에 대한 벨 언니의 사랑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벨 언니의 무한하고 순수한 믿음이 그대로 느껴지고, 벨 언니의 다부지고 강인한 의지가 보여 나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가슴속에 답답하고 뭉글거리던 복잡한 것들이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앓아와 부풀 때로 부푼 염증 같은 것이 그제서야 조금은 사그라드는 듯 했다. 그 길에서 벨 언니의 목소리를 통하여 전해진 것은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는 가득 찬 위로였다.

 

이슬 비아
세상에 온 의미를 찾아가는 촌스러운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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