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력, 재난에 맞선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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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상력, 재난에 맞선 몸부림
  • 엄문희
  • 승인 2022.07.0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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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문희 칼럼
사진=엄문희
사진=엄문희

새벽에 부서진 강정천을 보고 왔다. 다시는 못 갈 것 같았는데… 넉 달여 만의 일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발표한 날 새벽이기도 했다. 마을의 모든 길을 통제하고 들어온 대형 크레인이 육중한 교각 상판빔을 공중에 띄워 하천 벽에 거는 장면을 쳐다보는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그대로 몸져 누웠다.

‘파상력’이라는 말이 있다. 망가지고 깨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힘, 폐허와 절망을 견디는 힘, 그리고 그 절망의 자리에다 생기를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어려운 때에 친구가 알려준 말이다.

삶을 지탱했던, 믿어 의심치않던 가치가 붕괴되는 이 시대를 김홍중은 ‘파상’의 시대, 즉 꿈이 파괴되는 시대라고 불렀다. 그는 이 세계가 어떻게 망가지고 위기에 빠지는가에 관한 연구, 즉 ‘파상’을 살피는것이 세계를 구축하는 꿈에 관한 연구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새로운 꿈이 태어나는 자리가 바로 그 파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억압의 시대, 참사의 시대, 미래의 분배가 없어진 시대, 재난을 개인의 문제라고 착시하게 만드는 구조적 기만과 상식 체계들이 무기력하게 와해되는 체험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상황, 바로 그 지점이 새로운 꿈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김홍중의 말처럼, 현장에 발 딛고 서서 파국을 목도하는 사회(인간)의 마음과 마음의 폐허로 이뤄진 사회의 고통이 어떻게 미래를 생산하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절망의 자리에서 움직이게 되는 힘, 몸부림 같은 것일까?

우주로 위성을 쏘아올린 것에 국위를 말하며 누가 시키지도 않은 경쟁을 앞질러 수행하는 인류를 보며,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를 두고 지구 끝까지 찾아가 (지구는 둥글어서 끝도 없는데) 엄벌하겠다는, 경찰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 실현되는 것을 보며,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처우 요청에 ‘박멸’이란 말로 응수한 자본권력을 바라보며, 겹겹 모멸감을 느낀다.

지난 주말에 전국 신공항 건설 계획을 저지하려는 친구들, 연구자들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 예정부지를 답사했다. 거기서 수심 수십미터 거센 바다를 메우기 위해 낙동강하구 일대 섬과 산머리를 모두 깍겠다는 토건족들의 상상력과 마주했다.

“우리는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을까?”

지난 겨울에 IPCC 보고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쓴 ‘기후변화 과학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는데,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기후 연구를 할 만큼 다했고 기후 과학의 성과도 쌓일 만큼 쌓였지만 과학의 성과가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음단계 중 하나는 ‘현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더 이상 연구 해봤자 소용 없으니 연구를 중단하자’는 것이었다. 저자들의 절망은 할 다시 뻔한 연구를 하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의 진전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으니 IPCC 보고서를 포함한 모든 기후 연구의 중단하고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주변의 지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운동가로 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위치이동 경로 어딘가에 ‘부서진 마음’과 ‘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몸부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파상력은 두려움이 없는 마음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싸우는 일과 같다. 당도한 재난에 맞선 몸부림. 그 자리에서 미래는 시작될 것이다.

가덕도 답사에 함께 했던 사람들 가운데 몇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을 찾아내 진행하기도 하고, 어떻게 이 전국공항반대 운동을 구체적인 힘을 가진 목소리로 드러나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나는 ‘부서진 마음’의 힘에 주목하며, ‘부서진 미래’를 고발하기 위해 우리가 매우 단단하고 전위적인 개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엄문희 
혐오와 희생의 시스템으로 파괴되는 세계를 응시하며 국가폭력에 빼앗긴 목소리들의 투쟁을 위해 2016년 부터 강정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며, 여성병역거부자이고, 모든 동물들의 친구다. 1991년 부활절에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전쟁에 동참하는 군종교구와 여성불평등에 질문하며 세례명으로 호명되기를 거부한다. 가톨릭이 전쟁을 묵인하는데 그치지않고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군종교구를 운영하는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여성을 아직도 교회의 부차적인 대상으로 두면서 '생명존중' 언설을 내놓는것에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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