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로쿠스 곤잘레스, 영화 [미션]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다
상태바
성 로쿠스 곤잘레스, 영화 [미션]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다
  • 브랜든 보트
  • 승인 2022.05.30 1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 로쿠스 곤잘레스 데 산타 크루스-2

시민권의 남용 이외에 특별히 로쿠 곤잘레스 신부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식민지 개척자의 탐욕과 폭력이 그의 복음 선교 능력을 제한시키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억압은 인디언들에게 그리스도와 노예 제도가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간다는 것을 확신시켜주었다. 로쿠스는 초기 사제직 생활을 이런 오해를 극복하는 데에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도움이 되었던 한 가지는 그의 고유한 유산이었다. 로쿠스는 파라과이에서 출생한 원주민이었으므로, 유럽 억압자들의 오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과라니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원주민들은 그를 자기들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겼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은 수많은 인디언들이 그를 친구로 따뜻하게 환영하도록 만들었다.

1603년, 지역주교는 로쿠스를 아순시온 대성전의 주임사제로 임명했다. 이런 일은 보통 큰 명예였으나, 로쿠스의 경우에 강력한 식민지 개척자들은 그가 대토지 위탁소유제도를 반대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그의 부임에 압력을 넣었다. 6년 동안 로쿠스는 위대한 헌신으로 성전에서 봉사하였다. 그렇지만, 주교가 그를 총대리로 임명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자, 로쿠스는 예수회가 고위 성직자 지위를 전형적으로 기피하기 때문에 예수회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회 회원들은 인디언들을 돌보는 데 있어 지도자들이었고 로쿠스는 그의 사명을 수행하는 이상적인 길이라고 여겼다.

 

예수회원들 역시 로쿠스에게 인디언들을 섬기는 혁신적인 전략을 마련해주었다. 부패한 대토지 위탁소유제도에 대한 반대로 예수회 회원들은 작게 축소한 자립적인 공동체, 인디언들의 자연적인 권리를 억압하지 않고 충만하게 하는 일련의 소규모 농장들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은 마을들에는 모든 유럽 정착인들이 배제되고, 예수회 회원들은 수탁자로서, 후견인으로 역할을 하였다 – 주인이나 상관이 아니라. 예수회 회원들은 인디언들에게 그들 자신을 다스리고 정치적 기관들을 운영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인디언들은 읽고, 쓰고, 노래하는 법을 배웠으며, 예술적 능력을 키우도록 격려를 받았다.

작은 마을들은 전형적으로 비옥한 평야나 강 가까이에 세워졌고, 기본 형식을 따랐다. 중앙광장 한쪽에 교회, 사제관, 과부와 고아들을 위한 집, 묘지, 가게, 그리고 작업장이 위치한다. 다른 한쪽에는 인디언들이 사는 집들이 있다. 예수회 회원들은 인디언들에게 집단소유권과 개인소유권의 조합을 소개하였다. 공동체는 함께 주된 곡물을 농작하고 개인적으로 가축을 키우고 개인정원을 가졌다. 각각의 자립형 마을에는 평균 3천 명이 있었고 최고로 많을 때에는 파라과이 전역에서 3만 명에서 5만 명까지 함께 거주하였다.

예수회에 들어간 후, 로쿠스는 이러한 작은 마을들을 세우는데 집중하였다. 1611년, 그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이름을 따른 산 이그나시오 구아주라는 작은 마을 공동체를 세웠는데, 두 강 사이의 비옥한 지역이었다. 예수회 장상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는 이렇게 마을 공동체를 묘사하였다:

“이 작은 마을 근처의 시골 풍경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기후도 훌륭합니다. 다른 마을들처럼 쉽게 병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들은 비옥하고, 넓게 펼쳐있으며, 약 4백 명의 농부들을 계속 바쁘게 할 만큼 큽니다. 물도 땔 나무도 충분합니다. 가까이 있는 숲은 사냥에 기회를 제공하고 온갖 종류의 야생 동물이 풍부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인디언들에게 고향땅에서 그들의 주된 생업이었던 낚시질을 쉽게 잊도록 만듭니다…."

“지난 해 이미 추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올해에도 수확이 좋아서 사람들을 매우 행복하게 만듭니다. 이 마을에는 약 3백 가구가 살고 있고, 근처에 약 4백 가구가 있어서 또다른 마을을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교회와 본당 회관이 우리들의 필요에 따라 세워지고 있습니다. 편안하고 햇볕에 말려 만든 어도비 벽으로 둘러싸인 집들은 삼목나무 대들보로 만들어집니다 – 삼목나무는 이곳에서 매우 흔한 나무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해내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큰 열정과 에너지를 갖고 일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온 힘을 다해서– 손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 다시 말하자면 이 인디언들의 영혼을 담은 성전들을 우리 주님께 지어드리기 위하여 일합니다."

“주일과 축일날, 우리는 미사 중에 설교합니다. 그리고 소년들과 소녀들에게는 똑같은 관심을 갖고 먼저 교리를 설명해 줍니다. 성인들은 남자 약 150명과 똑같은 숫자의 여자들이 그룹으로 나뉘어 배웁니다. 점심 후 곧, 우리는 그들에게 약 2시간 동안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 마을에는 아직도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심고 수확하는 일이 바쁘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은 시간에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달 우리는 세례를 가장 잘 준비한 사람들을 뽑습니다. 올해 세례 받은 어른들이 약 120명쯤 되는데 그중에는 연장자 무당들이 몇 명 있습니다.”

로쿠스는 3년 동안 산 이그나시오 작은 마을을 책임 맡아 있었고 나머지 생애를 다른 작은 마을들을 세우는데 보냈다. 굶주림, 추위, 그리고 피곤과 싸우고, 강을 헤엄쳐 건너며, 늪을 걸어서 건너가고 전염병을 옮기는 벌레들을 피하면서, 로께는 영웅적으로 인디언들을 섬겼다. 그는 인디언들과 함께 살았고, 그들의 음식을 먹었으며 그들의 노동을 나누었다. 그는 인디언들의 존엄성을 증진하였고, 그들의 자기-존중감을 증가시켰으며, 그들의 침범당할 수 없는 권리들을 옹호하였다. 로께의 활동은 매우 탁월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회의론자 볼테르 같은 비-그리스도인들까지 감동하였다;

“파라과이 미션들 … 은 아마도 문명의 최고 수위에 도달하여 젊은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이 미션들에서, 법은 존중받았고 도덕은 순수했으며, 행복한 형제애가 사람들을 한데 결속시켰다. 유용한 예술과 심지어 더 고결한 학문들이 꽃을 피웠으며 어느 곳에나 풍요가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1988년 반포)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권리들들 나열하였는데, 여기에는 집과 노동에 대한 권리, 가족에 대한 권리와 책임 있는 부모가 되는 권리, 공공생활과 정치생활에 참여할 권리, 그리고 양심의 자유와 종교 실천의 권리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또한 다른 모든 권리들을 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권리가 생명에 대한 권리라고 주지한다.

“만일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권리이며 다른 모든 개인의 권리들을 위한 조건인 생명에 대한 권리가 최고의 결정적인 단호함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인간의 권리에 관한 상식적인 외침은, 허위이고 망상에 불과하다.”

지아나 베레타 몰라(1922~1962)는 의사들이 그에게 세 가지 좋지 않은 선택들을 제안했을 때,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그는 이때 아이를 임신한지 두 달이 되었고 의사들은 그의 자궁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그들은 종양을 제거하려고 해볼 수 있었으나 그럴 경우 위험한 합병증이 유발될 수 있었다. 의사들은 자궁절제 수술을 할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 지아나의 생명은 구하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고 다시는 임신할 수 없을 것이었다. 세 번째 선택은 낙태하는 것으로, 미래에 임신이 가능하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죽일 것이었다.

비록 가톨릭의 도덕 가르침이 자궁 절제를 허용하지만, 지아나는 영웅적 덕을 발휘하여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생명을 보호하기로 선택하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분명한 지아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했다: “어려운 분만이 될 것이고 아마도 두 사람 중 한 사람 밖에 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 나는 의사들이 내 아기를 살리기를 바랍니다.”

의사들은 종양을 제거 하였고 6개월 후 지아나는 건강한 애기 소녀에게 생명을 주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분만한지 일주일 후, 지아나는 쓰러졌고 종양과 관계된 합병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겨우 39세였다.

2004년 5월 24일, 요한 바오로 2세는 지아나 몰라를 성인품에 올렸고 생명에 대한 그의 결단을 기념하였다. 지아나의 남편 피에트로와 그들의 딸 로라가 시성식에 참석하였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남편이 자기 부인의 시성식을 목격한 것이다.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