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배배知知拜拜-나는 별난 공동주택의 관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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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배배知知拜拜-나는 별난 공동주택의 관리인입니다
  • 심천보
  • 승인 2022.05.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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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보 칼럼

30년 가까이 공동주택에서 살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작고 겸손한 단독주택 ‘하선재’로 옮기고 나서 겨울과 봄 두 계절을 건너는 중입니다. 겨울 동안 집 주변에는 울타리의 사철나무 열매와 남천 열매를 먹으려는 직박구리와 딱새가 날마다 찾아왔고 지붕의 기왓골마다 참새가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동쪽 느티나무 가지에 매달아준 먹이통에는 박새, 딱새, 참새, 찌르레기가 수시로 들락거리고 여름 철새인 후투티가 가끔 마당 잔디밭에 내려 앉아 먹이를 찾곤 하는데 그러려니 했습니다. 마당에 나가면 언제든지 새소리를 들리니 비로소 자연에 온 느낌이 들어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봄이 되니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꽃이 지니 꽃보다 예쁜 잎들이 돋아납니다.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고 수시로 날아드는 새들로 마당은 분주한 가운데 봄날은 바삐 지나갑니다. 가끔 고양이가 새들을 노리고 접근하기도 하고 황조롱이나 새매가 사냥한 새들을 마당 귀퉁이로 물고 오기도 하는 평화 속의 치열한 생존 경쟁도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었습니다. 겨울에 가끔 보이던 후투티가 짝을 찾아 2층 처마끝 모서리에서 새끼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지붕위로 오르지 않고서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절묘한 위치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후투티 육추를 찍기 위해 수많은 사진사들이 진을 치는 경주 황성공원과는 달리 이 곳은 나만 보는 곳에서 새끼를 키우는 중입니다. 이제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가만히 보면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후투티 주변에는 참새가 기왓장마다 새끼를 기르는 중이고 찌르레기도 한편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들은 후투티가 먹이를 물고 자기 집을 드나들 때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가끔 자기 집 가까이 앉기라도 하면 필사적으로 위협 비행을 하고 목소리를 다해 쫒아냅니다.

어느 날은 낮선 후투티가 방문했는데 아마도 둥지를 틀 마땅한 곳을 물색 중인가 봅니다. 그도 후투티 어미에게 호된 공격을 받고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뒤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몇 번이나 찾아왔다가 냉정하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인간세상이나 새들의 세상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제비가 몇 마리 보여서 속으로 반가워했는데 그 다음날부터 현관 출입문 바로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비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 어떤 풍수전문가도 찾기 어려운 가장 안전하고 새끼를 키우기에 최상인 명당인 셈이지만 그곳을 지나야만 출입이 가능한 우리는 두루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제비가 눈여겨 두었다가 집을 이미 짓기 시작한 터이니 우리가 물러서는 것이 마땅한 것 같아 아내와 현관 한 편을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제비는 오래전부터 이른 봄이면 강남(동남아시아·호주·남태평양 등)에서 겨울을 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대표적인 여름 철새입니다. 제비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새입니다. 봄이 오면 지난해 살았던 둥지로 돌아와 둥지를 고치거나 처마 밑에 새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웁니다. 제비의 출현은 봄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지요. 5~6월은 제비들이 집중적으로 새끼를 키우는 시기입니다. 이맘때쯤이면 대부분의 둥지에서는 제비가 부화해 지지배배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조만간 우리 집 현관도 그러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현관을 내어주고 뒷문으로 출입해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비는 빈집에 집을 짓지 않습니다.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처마 밑에 둥지를 틉니다. 사람들도 삼월삼짇날이 가까워지면 제비가 돌아올 줄 알고 둥지를 고쳐주는 풍속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제비는 사람의 곡식을 먹지 않고 하루 400회의 비행으로 1천 마리의 해충을 잡아먹는 농사에 큰 일꾼인 셈이니 기꺼이 처마 밑을 내어주었습니다. 제비는 회귀율이 5퍼센트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한 해에 두 번 새끼를 친다고 하니 무사히 여름을 나고 강남으로 갔다가 내년 봄에도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고대해 봅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우리 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수십 쌍의 참새와 찌르레기와 직박구리 박새와 딱새 그리고 후투티와 제비 산비둘기가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공동주택입니다. 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난다고 ‘새’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요. 하늘의 메시지를 땅에 전하는 전령사로 자유로움의 상징인 새들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집이야말로 진정한 하느님의 선물(하선재)이 아닐는지요. 저는 요즘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찾고 그들을 바라보는 기쁨으로 베토벤 전원교향곡 2악장 끝 장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심천보 안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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